“풀을 뽑는데 는 반드시 그 뿌리를 제거하여야 하며, 적을 치는데 는 반드시 그 우두머리를 잡아야 하므로, 우리는 마땅히 군사를 거두어 먼저 북상(北上), 곧바로 경성의 왜적을 토벌하자.”

문열공 건재 김천일(1537∼1593) 선생은 1592년 음력 5월 16일 나주공관에서 송제민, 양산용, 양산숙, 임환, 이광주, 서정후 등과 함께 창의(倡義=의병을 일으킴)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6월 3일, 출병한다. 호남 최초의 의병부대이다. 선생은 수원과 강화도, 한강 연안 등지에 거점을 두고 활약했다. 선조는 창의사(倡義使) 칭호를 내렸다. 이후 부대는 후퇴하는 왜군을 추격하며 남하했다. 그러나 의병을 일으킨 지 14개월 후인 1593년 음력 6월 29일, 공은 처절한 ‘진주성 제2차 전투’에서 순절했다. 선생은 의병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재 이항의 학문을 잇는 성리학자였고, 선정을 베푼 문신이었다. ‘전라도 천년’을 맞아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선 건재 선생의 ‘의’(義) 정신이 주목을 받고 있다.



◇‘호남관문’ 진주성서 순절=“호남은 나라의 근본이고, 진주는 호남의 보장(保障=막아 보호해 주는 곳)이다. 호남은 진주에 매우 가까우니, 진주가 없으면 호남이 없다. 성을 비우고 적을 피하여 그 마음을 즐겁게 함은 계책이 아니다.”

의병장 건재 김천일 장군은 6월 14일 군사 300명을 거느리고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먼저 호남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진주를 지켜 전라도를 방어하기 위함이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는 고사와 같이 진주와 호남은 밀접한 관계였다. 경상병사 최경회와 충청병사 황진, 복수장 고종후, 김해부사 이종인, 사천현감 장윤 등이 군사를 이끌고 입성했다. 그러나 10만여 명의 왜군이 20일부터 진주성을 겹겹이 에워쌌다. 명나라 군대나 홍의장군 곽재우를 비롯한 많은 의병부대들이 적들의 위세에 눌려 진주성을 구원하러 오지 않았다.

진주성은 천연 요새였다. 남쪽은 남강이, 서북쪽은 물을 채운 해자(垓子)를 갖췄다. 물을 등진 배수진(背水陣)이기도 했다. 적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동문뿐이었다 그러나 왜군들은 예상했던 동문뿐만 아니라 서북쪽 해자 물을 빼낸 후 흙을 메우고 공격해 왔다. 군사들과 의병들은 대포를 쏘는 한편 끓는 물과 뜨거운 불, 화살, 돌팔매로 적을 물리쳤다. 밖으로 구원을 요청했으나 달려오는 군사가 없었다.

왜군들은 동문 밖에 흙산을 쌓고 조총을 성내로 퍼부었다. 또한 적은 사륜거에 쇠가죽을 씌운 공성무기로 성벽까지 밀고 들어와 성벽을 무너뜨리러 시도하기도 했다. 연일 큰 비가 내리며 활과 화살이 풀어졌다. 포위를 당한 이후로 날마다 비가 내렸다.

28일 충청병사 황진, 사천현감 장윤이 탄환에 맞아 숨졌다. 항전 9일째인 6월 29일 진주성이 함락됐다. 성안의 화약과 돌, 탄알, 화살이 다 떨어졌다. 대나무와 몽둥이로 대항했다. 미시(오후 1∼3시)에 동문이 무너졌다. 서북문으로도 왜군들이 육박해 들어왔다.

군관 조인호가 울며 말했다. “주장(主將)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공이 대답했다. “나의 죽음은 의병을 일으키던 날에 결정된 것이니, 오히려 지금이 늦은 것이다. 다만 너희들은 집을 버리고 나를 따라 신고(辛苦)를 겪은 지 2년에 마침내 여기에 이르게 됨은 가히 슬픈 일이다.”

공은 북쪽을 향해 두 번 절을 마치고 맏아들 상건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기세가 꺾인 왜군은 성을 함락하고도 호남을 넘보지 못하고 철수했다. 선조는 “지금 여러 도가 다 초구(도적의 노략질)를 입었으나 오직 남쪽 일로(一路)가 온전함을 얻었으니, 네가 만일 힘을 쓰지 않았으면 그 누구를 다시 믿으랴”는 내용의 교서를 내렸다.

◇학문 높아 ‘호남 5현’ 꼽혀=건재 선생은 1537년 외가인 나주 흥룡동에서 태어났다. 모친이 출산 이튿날 세상을 떠나고 부친마저 7개월 후 별세했다. 자연 외할아버지(이함) 집에서 자랐다. 19세에 나주를 떠나 정읍 일재 이항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이때 외조부가 객지로 떠나는 것을 말리자 이렇게 말했다.

“글의 스승을 만나기는 쉬우나 사람의 스승을 만나기는 어려우므로 가까운 데를 버리고 그곳으로 가려 하는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염려하지 마옵소서.”

벼슬길에 나아간 때는 37살(1573년)이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유일’(遺逸=아직 등용되지 않아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유능한 사람) 천거를 받았다. 군기시주부를 시작으로 용인현감, 강원도 도사, 경상도 도사, 임실현감, 순창군수, 담양부사를 지내고 나주로 돌아와 극념당(極念堂)을 짓고 후진교육에 힘썼다. 1589년에 한성부 서윤에 재기용됐으나 수원부사를 지내다 파직돼 나주로 귀향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양반에게도 세금과 부역(賦役)을 균등하게 부과하려다 모함을 받아 사헌부 대간의 탄핵을 받은 것이다. 선생의 강직한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벼슬길에서 물러나 나주에서 후학들을 교육하던 건재는 호남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다. 앞서 고경명, 박광옥, 최경회, 정심 등에게도 의병을 일으킬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다. 일재 선생은 그에게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모든 것을 그만 두고 나가 싸워야만 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건재는 학문이 뛰어나 ‘호남 5현’(五賢)중 하나로 손꼽힌다.

◇숙종 때 문렬공 시호 내려=언양 김씨 대종회가 2017년 펴낸 ‘문열공 건재 김천일 선생 전집’에서 김익두·허정주 교수는 간재의 의병활동은 ▲임진왜란 당시 호남 최초의 의병이다 ▲막혀있던 임금 및 조정의 명령이 지방 및 백성들에게 전달되는 통로가 마련됐다 ▲서울경기지역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서울 수복전투를 용이하게 했다 ▲‘2차 진주성 전투’를 통해서 호남을 지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육지와 해상을 두루 겸하고 있다고 의의를 뒀다.

나주시 대호동 동신대옆에는 정렬사(旌烈祠)가 자리하고 있다. 건재선생과 김상건, 양산숙, 임회, 이용제를 함께 배향하고 있다. 매년 기병일인 음력 5월 16일에 추모 제향을 지내고 있다. 숙종 7년(1681년) 영의정에 추서되면서 문렬공(文烈公) 시호와 충신정려가 내려졌다. 본래 서성문밖 월정봉아래 있었으나 나빌레라 문화센터로 옮겨졌다. 고종 8년(1871년)에 철폐됐다가 1984년에 현재 자리로 옮겨 지었다. 유물관에는 ‘나주출사’(出師), ‘독성산성 유진’(留陳), ‘양화진 전투’, ‘진주성 전투’ 등 4개의 대형 전투화를 비롯해 여러 문서들이 전시돼 있다.

나주시 삼영동 운전면허시험장 길목에 자리한 오른쪽 야산에는 건재 선생의 묘소가 있다. 공의 둘째아들 상곤이 적이 물러간 다음 진주성을 찾아 선친의 시신을 찾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촉석루 섬돌 사이에서 부친의 침모(자면서 쓰는 모자)를 찾아 모발과 함께 선산에 모셨다고 한다.

경상병사 최경회가 최후의 날에 죽음을 맹세하는 ‘서사시’(誓死詩)를 지었다.

“촉석루 가운데 세 장사/ 한 잔 술로 웃으며 장강 물 가르키네/ 장강의 물 도도히 흐르나니/ 물결 마르지않으니 우리의 영혼도 죽지 않으리.”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