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새해를 맞이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새해에 인사까지 겹쳐 업무보고 등 정신없이 두 주를 보내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시간. 때마침 윤장현 시장님, 그리고 동료와 영화 ‘1987’을 볼 기회가 생겼다.

연초부터 워낙 뜨거운 이슈가 되어 흥행 질주 중인 영화이고,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시기라 꼭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영화다.

무엇보다 그해 대학 신입생이었던 87학번들, 그리고 그해 태어난 87년생 공직자들이 함께하는 자리라 더욱 기대가 컸다. 각각 다른 경험을 갖고 있는 세대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이 영화를 보며 무엇을 느낄지 무척 궁금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등장인물 중 가슴 깊이 다가온 인물은 박종철 군의 아버지다. 아들의 유해를 강제로 화장한 후 차디찬 임진강 겨울 강물에 띄워 보내며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리며 오열하는 아버지, “잘 가그래이! 철아! 아부지는 아무 할말이 없데이!” 나도 같이 따라 울었다. 이렇게 자식을 보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으로, 동시대를 살았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를 떠나 보내는 길이 결코 편치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시장님과 함께 앉아 있던 안성례 선생님은 영화 보는 내내 소리없이 우셨다. 국가 권력 앞에 맨손으로 맞섰던 뼈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체화하며 사셨던 분이라 영화 장면 하나하나가 가슴에 박히셨을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던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다시 실감하게 된다. ‘탁자를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이 한마디로 평범한 대학생의 죽음이 감춰질 뻔 했다. 하지만, 물고문 질식사를 단순 쇼크 사망 사건으로 감추려는 무지막지한 권력 앞에 정의로운 검사, 의사, 기자, 검시관, 교도관 등 진실을 밝혀내려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으며, 그 중에는 ‘연희’와 같은 보통사람들도 있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실 역사를 바꾼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시민들이 주먹밥과 생수를 나르며 내 가족, 이웃, 친구를 지켜냈던 5·18민주화운동이 그러했고, 87년 6월 항쟁이 그러했다. 지난 겨울 촛불시민 주권혁명도 평범한 국민의 피 흘리지 않는 위대한 혁명이었다. 비뚤어지고 어긋난 세상은 그렇게 국민의 힘에 의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 바르게 세워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었을 때, 한편에서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물음을 던지는 사람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 촛불은 부정부패 정권에 대한 분노를 넘어 ‘상식이 통하고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향한 첫 걸음이었으며, 차디찬 겨울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촛불은 결국 새로운 시민 주권 시대를 열었다.

우리 시는 그 촛불 민심을 행정 안으로 가져와 촛불 행정을 펼쳤다. 매주 지역의 여러 현안들에 대해 관계자들을 초청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때론 아프기도 하고, 때론 같이 눈물도 흘리고, 때론 뜨거운 감동으로 함께하며 시민과 함께하는 행정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늘 고민한다. 투철한 공직 정신은 무엇일까. 그 고민은 영화 속에서도 이어졌다. 정의로운 선배 공직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끝까지 소신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영화가 끝난 후 함께 영화를 본 동료와 차 한잔 하면서 여러 생각을 나눴다. 결론은 ‘1987’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정의의 역사를 지켜내고 계승하기 위해 국민은 늘 깨어있으며, 여전히 촛불 민심은 민생의 현장에서 뜨겁게 타고 있다.

이것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화하며 정진하려는 나를 만들어낼 것이며, 공직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는다. 이번 영화 관람이 단순히 선·후배 공직자 간의 문화 향유를 넘어 시대적 역할과 책임을 공유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는 점에서 그 여운이 꽤 오래 지속할 것 같다. 아울러 ‘광주’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공직자로 살아야 한다는 다짐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