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 아침 뭐 먹지?’

퇴근길에 늘상 떠올리는 생각입니다.

작년 2월 광주로 발령이 나 주중에 관사에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혼자 살기에 도전하는 셈이라, 아침이나 챙겨 먹고 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더랬죠.

빵이나 즉석 식품에 의존하며 지내다 어느 날 용기를 내 도마를 꺼냈습니다. 감자와 파를 썰고 찌개를 끓여봤습니다.

양념장을 만들어 깻잎 절임에도 도전해 봤습니다. 고적한 빈집을 깨우는 도마 소리에 온몸이 집중되는 건 뜻밖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날 소박한 한 끼를 마주하고부터는 혼자 살기에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주방에서의 새로운 시도도 차츰 늘어났구요.

맛이 없어도 숟가락을 드는 건 오직 제 정성을 긍휼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을 만들어 먹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어쨌든 생존의 수단을 갖췄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마음의 여유를 느낍니다.

컴퓨터 모니터의 여백을 채워 판결문을 완성하는 일 외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창조 행위가 밥상을 차리는 일이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인지 ‘내일 아침 뭐 먹지?’는 어느 순간부터 저에게 걱정보다는 작은 기대가 담긴 명제가 돼버렸습니다.

# 영화 보는 걸 좋아합니다.

여운이 오래 남아 삶과 주변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저의 부족한 경험과 상식의 폭을 넓혀주기도 합니다.

예컨대 ‘동주’가 그런 영화입니다. 시인에 대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을 찾아갑니다.

그 덕에 골목골목 서촌의 매력도 알아갑니다. ‘별 헤는 밤’에서 시인이 되뇌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남자라는 사실, 어렴풋이 제목만 알고 있던 ‘말테의 수기’ 작가이자 독일의 유명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서점에서 그의 유럽 여행기를 발견하고 반갑게 책을 집어듭니다. 릴케를 좋아했던 또 다른 시인, 백석의 시와 생애, 사랑이야기도 나의 세계로 들어옵니다. 나타샤, 당나귀, 대원각, 길상사 등의 키워드가 머릿속에 해시태그 됩니다.

온전히 작품에만 몰입하고 싶어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는 편입니다. 혼자 지내다 보니 가족에게 미안함을 품을 필요가 없어 영화관을 찾는 횟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개봉 예정 영화를 꼼꼼히 검색하고 배우들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는 제 모습에서 영화를 애호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자각합니다.

# 배드민턴에 입문했습니다.

광주법원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해 법원 옆 초등학교 강당에서 일주일 1∼2번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동료 판사, 직원들과 게임도 합니다. 계절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이 배드민턴의 큰 미덕입니다.

함께 땀 흘리는 즐거움이 혼자 지내는 외로움을 밀어낸 듯합니다. 어깨 통증에 침을 맞기도하고, 발목을 접질려 물리 치료를 받으면서도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 귀한 지면에 시시콜콜한 얘기만 늘어놓았습니다. 남이 궁금해 하지도 않을 개인 취향을 괜스레 드러낸 것 같아 민망하군요. 판사들이 먹을 생각, 놀 궁리만 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 살짝 걱정도 됩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가 쓴 ‘이동진 독서법’이라는 책에 마음을 건드리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성취 또는 쾌락은 크고 강렬하지만 일시적이고, 진정한 행복은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에 있는 일들이라고, 즉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며, 습관이 좋은 사람이 결국 행복할 수 있다는 내용이죠. 그 관점에서 행복을 바라본다면, 새로운 습관과 취미를 갖게 된 지난 1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그만 변화와 발전에도 후한 점수를 매기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세 역시 행복에 다가서는 길이라고 평소 생각해 왔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별 대단하지도 않은 ‘나 혼자 살기’를 자랑처럼 떠벌리고 있는 이 호들갑 또한 그런 연유에서입니다.

우리 모두가 소소한 일상에서 저마다 행복한 습관을 만들어나가는 새해, 그 작은 변화에 만족해 하고 스스로를 격려할 줄 아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