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주변에 답답한 일이 있어 사주를 보러갔다. 그동안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사주, 토정비결, 타로점 등으로 오지 않은 내일을 미리 들여다보는 일을 꺼렸는데, 참 심란하긴 했었나 보다. 때마침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선, 스승, 독서, 기도, 명상, 자기 사주 알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친구의 조언도 등 떠밀었다. 사실, 자기 사주를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를 아는 것이 아닐까.

자기를 알기가 힘들다는 것을 실감할수록 자신을 그리는 화가가 더욱 위대해 보인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신의 얼굴을 그렸고 내면까지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의 화폭을 탄생시킨 빈센트 반 고흐, 80점이 넘는 자화상으로 자서전을 남긴 렘브란트 등 자화상과 함께 떠오르는 화가들의 사연이 더 극적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 사랑했던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노먼 로크웰(1894∼1978)의 ‘세 명이 있는 자화상’(1960년 작)은 작가가 자화상을 작업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보통사람들이 자신을 생각하는 시선을 유머스럽게 보여주는 그림인 것 같다. 화면 앞에는 뒷모습만 보인 채 거울을 들여다보는 인물이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을 캔버스에 옮기고 있는데 캔버스 속 인물의 표정이 더 밝고, 파이프를 문 모습도 한결 근사해지고, 쓰고 있던 안경은 아예 사라졌다. 안경 쓴 꺼벙한 인상이 멋진 인물로 미화된 것을 보며 때로 우리들 자신도 스스로를 가장 좋았던 시절의 모습으로 이상화시키곤 하는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화면 오른쪽에는 작가가 존경했던 뒤러, 렘브란트, 반 고흐, 피카소의 자화상이 원작과 똑같이 그려져 붙여져 있다. 화가들의 여러 자화상을 보면서 나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담은 자화상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광주비엔날레광주폴리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