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부터 민간에서 추진돼 오다가 광주시와 전남도가 공동 출자하여 (재)한국학 호남진흥원을 10년 만에 설립하게 되었다. 호남지역 한국학 진흥을 위한 지방 출자·출연기관 설립은 호남 지역민의 오랜 숙원 사업을 풀어냈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

한편으로는 민간의 정책 제안이 지방 정부의 출자·출연 기관 설립으로 귀결된 사례로서의 의미도 크지만 복수의 광역 지방자치단체가 공조하고 협력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시대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국학 호남진흥원이 법인 설립등기를 마치고 원장 채용까지 마침으로써 이제 본격적인 출범식만을 앞두고 있다.

한국학 호남진흥원의 급선무는 호남 지역에 흩어져 있는 기록 문화 유산의 수집·분류·연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기존의 한국학 관련 연구기관으로 ‘한국학 중앙연구원’과 ‘한국국학진흥원’이 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은 왕실과 수도권에 전승되는 한국학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가치 연구, 자료 제공 등의 사업을 전개하면서 전 세계 연구 기관에 한국학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1995년 경북 안동에 설립된 ‘국학진흥원’은 주로 영남권에서 수집한 자료를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키며 수집·보존·연구·교육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와 같은 한국학 연구기관이 그동안 호남 지역에는 없었다.

호남이 빠진 한국학은 온전한 한국학이 아니라는 주장에 따라 한국학 중앙연구원 호남 분원을 설립하자는 시도는 있었으나 무위에 그쳤다.

호남권의 연구기관으로는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조선대 고전연구원,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전북대 전라문화연구소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각 연구기관마다 제한된 과제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데 따르는 한계 때문에 성과를 집적하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며 행정 기관까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허브 기관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단순한 연구 기관을 넘어 보존에서 활용까지 문화·교육 등 각 분야에 호남지역 한국학 성과를 나누고 지역민의 공감을 토대로 민간과 행정의 포괄적 연대를 이끄는 호남지역 한국학 진흥 허브 기관이 그것이다.

그동안 한국학 진흥 기관 설립에 대한 필요성이 줄기차게 이어졌고 민간 영역에서는 지역문화교류 호남재단과 한국학 호남진흥원 설립 준비위원회까지 조직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지난 2014년 광주·전남 상생 과제로 채택해 설립추진단을 꾸려 (재)한국학 호남진흥원 설립 및 운영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시와 도는 일단 광주지방공무원교육원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오는 2021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수장고·연구동·행정동을 갖춘 한국학 호남진흥원을 신축할 계획이다.

시·도는 운영 및 사업 추진비로 올해부터 10억원씩 5년 동안 100억여 원을 출자한다. 올해 사업비로 국비 10억 원이 이미 확보된 상태이다. 한국학 호남진흥원에 전북도가 참여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이렇듯 양 시·도가 행정적 경계가 있음에도 이를 극복하는 상생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에 중앙 부처의 지방 출자·출연 기관 심의 통과 이후 일사불란하게 법인 설립 추진 절차가 진행될 수 있었다. 법인 설립이 이루어지기까지 지속적으로 응원해 준 민간 부분의 노고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상생의 정신 바탕에는 호남 지역민의 동질성이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호남 지역 한국학을 과거에 대한 연구로 편협하게 볼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학문적으로 정돈함으로써 우리가 나아갈 미래를 창대하게 열어갈 수 있는 뿌리 학문이라고 인식함이 바람직하다. 설립 과정에서 민간과 행정의 각 주체들이 보여준 상생 협력의 자세를 조직 운영 과정에서 견지한다면 호남의 미래를 위해 열리는 보물 창고가 바로 (재)한국학 호남진흥원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