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9) 런던 해처스 서점
2018년 01월 02일(화) 00:00 가가
런던 한복판 300년 한결같이 ‘Book적’
런더너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해처스 서점 내부 .
누구에게나 학창시절의 아려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기자에겐 광주 계림동 헌책방 거리와 삼복서점, 나라서적이 그런 곳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은 아는 사람만 아는 추억의 장소가 됐지만 그 시절만 해도 서점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십 여년 간 만남의 장소로, 또는 마음의 양식을 구하는 쉼터로 함께 해온 이들 서점들은 이제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스마트폰 매장과 패션숍이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때문일까. 오래된 서점이 있는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왠지 모를 씁쓸함과 부러움이 밀려든다.
영국 런던의 해처스 서점(Hatchard’s)를 방문하던 날도 그랬다. 런던의 최대 번화가인 피카달리 서커스에 자리한 해처스는 수백 여년의 역사를 지닌 서점이지만 런더너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였다. 크리스 마스를 앞둔 시기여서인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책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얼핏 보면 책을 파는 서점이 아니라 세일 행사로 바쁜 백화점 같았다.
1797년 영국의 유명 출판업자인 존 해처드(John Hatchard·1769-1849)가 설립한 해처스서점은 규모나 컬렉션에선 여느 서점과 결을 달리한다. 우선, 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게다가 왕실 조달 허가증을 받은 ‘풀 하우스(full house) 소유로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이 서점을 후원한다.
해처스 서점이 영국 왕실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건 설립자인 존 해처드와의 인연 때문이다. 서점 설립 당시 보수주의 성향의 복음주의자였던 해처드는 영국 국교회와 관련된 서적을 출간하면서 자연스럽게 영국 왕실에 서적을 공식 납품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래서인지 서점은 책을 판매하는 가게라기보다는 영국의 전통이 숨쉬는 문화유산이라는 느낌을 준다.
서점에 들어서면 은은한 나무향기가 방문객을 먼저 맞는다. 고풍스런 목재에 새겨진 화려한 영국 왕실문양이 서점의 역사와 품격을 말해주는 듯 하다. 여기에 푹신하게 깔려진 카펫은 대저택의 거실에 있는 것 처럼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제로 1층부터 5층까지 각 층에 마련된 소파에는 책을 읽으며 여유를 즐기는 고객들이 많았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바깥 세상과 달리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습이 방문객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카펫 위에 앉아 한나절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서점의 서가에는 영국 왕실의 역사에서 부터 헨리 8세 등의 일생을 다룬 위인전에서 부터 정치, 소설, 논픽션, 예술, 원예, 어린이 등의 서적이 비치돼 있다. 엘리자베스여왕과 고 다이애나 황태자비, 윌리엄 왕세자 등 우리에게 익숙한 로얄 패밀리 서적은 수백 여종에 달했다. 또한 영국 출신의 대문호인 세익스피어를 주제로 한 서적과 윈스턴 처칠의 일대기를 다룬 컬렉션은 양과 질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각 층의 계단 벽면에는 영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친필 사인과 서점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1815년에 발행된 영수증에서 부터 단골 고객들의 명단과 책 목록, 100년 이상 된 서적, 스페셜 에디션 등 다양하다, 특히 서점 한쪽에는 젊은 시절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진과 자료를 진열한 별도의 코너가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 300년 동안 서점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자료들이.눈길을 끈다. 2∼3층 계단 벽면에 전시된 베티 데이비스, 앤소니 홉킨스, 진저 로저스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흑백 사인회 사진은 박물관에 온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해처스의 매력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서점답게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살린 추천도서 서비스로 국내외 수만 명의 단골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름하여 1대1 맞춤형 구독서비스(Tailored Subscription)다. 마치 몸 치수에 맞춰 옷을 재단하듯 평소 범죄 소설을 탐독하는 독자에겐 관련 신간을, 독서의 세계에 입문한 초보 독자들에게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서적을 제공한다. 그것도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포장해 고객들의 집이나 사무실에 신속하게 배달한다. 특히 요즘 같은 연말연시에는 어느 때보다 해처스 서점의 직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려는 고객들로부터 추천도서 리스트를 보내달라는 문의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서점을 나오는 길, 역동적인 런던의 일상에서 이들 서점이 수백 년 동안 거리를 ‘지켜온’ 비결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는, 바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이었다.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1797년 영국의 유명 출판업자인 존 해처드(John Hatchard·1769-1849)가 설립한 해처스서점은 규모나 컬렉션에선 여느 서점과 결을 달리한다. 우선, 3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게다가 왕실 조달 허가증을 받은 ‘풀 하우스(full house) 소유로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이 서점을 후원한다.
서점의 서가에는 영국 왕실의 역사에서 부터 헨리 8세 등의 일생을 다룬 위인전에서 부터 정치, 소설, 논픽션, 예술, 원예, 어린이 등의 서적이 비치돼 있다. 엘리자베스여왕과 고 다이애나 황태자비, 윌리엄 왕세자 등 우리에게 익숙한 로얄 패밀리 서적은 수백 여종에 달했다. 또한 영국 출신의 대문호인 세익스피어를 주제로 한 서적과 윈스턴 처칠의 일대기를 다룬 컬렉션은 양과 질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각 층의 계단 벽면에는 영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친필 사인과 서점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1815년에 발행된 영수증에서 부터 단골 고객들의 명단과 책 목록, 100년 이상 된 서적, 스페셜 에디션 등 다양하다, 특히 서점 한쪽에는 젊은 시절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진과 자료를 진열한 별도의 코너가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 300년 동안 서점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자료들이.눈길을 끈다. 2∼3층 계단 벽면에 전시된 베티 데이비스, 앤소니 홉킨스, 진저 로저스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흑백 사인회 사진은 박물관에 온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해처스의 매력은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서점답게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살린 추천도서 서비스로 국내외 수만 명의 단골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름하여 1대1 맞춤형 구독서비스(Tailored Subscription)다. 마치 몸 치수에 맞춰 옷을 재단하듯 평소 범죄 소설을 탐독하는 독자에겐 관련 신간을, 독서의 세계에 입문한 초보 독자들에게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서적을 제공한다. 그것도 고급스런 디자인으로 포장해 고객들의 집이나 사무실에 신속하게 배달한다. 특히 요즘 같은 연말연시에는 어느 때보다 해처스 서점의 직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려는 고객들로부터 추천도서 리스트를 보내달라는 문의가 쇄도하기 때문이다.
서점을 나오는 길, 역동적인 런던의 일상에서 이들 서점이 수백 년 동안 거리를 ‘지켜온’ 비결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시대의 변화에 맞추는, 바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이었다.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