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8) 영국 런던 "돈트북스"
2017년 12월 25일(월) 00:00 가가
'여행자를 위한 문화공간' 타임 머신 타고 중세 도서관 온 듯
지난 1990년 문을 연 돈트북스는 중세시대의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불리고 있다.
영국 런던의 말리본 하이스트리트는 서울 신사동 가로수 길을 떠올리게 한다. 각양각색의 디자인 숍과 쇼핑몰, 레스토랑, 카페, 패션숍이 밀집된 거리는 늘 사람들의 발길로 활기가 넘친다. 특히 셜롬 홈즈 박물관과 마담 루소 전시관, 리젠트 공원이 인접해 있어 관광객들 사이에는 꼭 한번 가봐야 할 명소다.
하지만 근래 말리본 하이스트리트의 핫플레이스는 누가 뭐래도 ‘돈트북스’(Daunt Books·말리본 하이스트리트 83-84가)다. 영국의 유력신문인 데일리텔레그래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가디언이 ‘세계 10대 서점’으로 선정할 만큼 런던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돈트북스는 올해로 문을 연 지 불과 27년밖에 안됐지만 영국 특유의 클래식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아름다운 녹색과 진한 갈색의 떡갈나무로 마감된 건물 외관이 주변의 트렌디한 숍과는 다른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돈트북스는 지난 1910년 영국 에드워드 왕조 시대에 설립된 고서점 ‘프랜시스 에드워드’를 리모델링했다.
돈트북스를 방문하던 날,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쇼윈도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표지가 전면에 보이도록 일본작가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책 20권을 배치한 디스플레이가 신기했다. 마치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갤러리의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는 것 같았다.
서점에 들어서자 또 한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밖에서 볼 때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는데 실내는 예상보다 넓고 깊었다. 무엇보다 은은한 나무향과 고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의 도서관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여행자들을 위한 서점’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서점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1층은 주로 신간과 어린이 서적을, 지하층과 2층은 고서적과 여행서적으로 꾸며졌다. 서점의 중앙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아치형 천장과 복도식 계단이 자리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천장을 뚫고 햇살이 비치는 2층 서가에서 책을 들춰보는 고객들의 모습은 돈트북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돈트북스는 은행가 출신인 제임스 돈트(James Daunt·54)가 세운 영국의 대표적인 독립서점이다. 캠브리즈 대학 출신인 그는 JP모간에서 투자상담가로 4년간 일했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평소 여행을 즐겼던 그는 대학시절 역사와 예술 등에 관한 책을 가까이하는 등 인문학적 소양이 깊었다. 금융맨으로 잘나가던 그는 26살 되던 해 과감히 직장을 걷어치우고 지금의 자리에 동네서점을 열었다.
그의 ‘돈트북스 프로젝트’는 런던 사회에 큰 화제를 낳았다. 온라인 서점과 워터스톤즈(Waterstones) 등의 대형서점에 밀려 동네서점들이 쇠락해가는 상황에서 돈벌이가 안 되는 서점을 열겠다는 건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 동기인 변호사 출신의 브렛 울스튼크로프트(Brett Wolstencroft·54)를 영입해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평소 독서를 즐기던 브렛은 호기심에 끌려 파트타임으로 참여했는데, 서점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현재는 돈트북스의 총괄매니저를 맡고 있다.
돈트북스는 주위의 우려를 뒤로하고 개점 5년 만에 매출 14억 원을 기록하는 대박을 냈다. 지난 2010년에는 98억 원의 매출과 동시에 5명 안팎이었던 직원이 40명으로 늘었다. 당시 런던의 동네서점들이 일주일 사이에 6개가 문을 닫는 등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돈트북스의 성과는 기적에 가까웠다. 단일 점포로 시작했던 돈트북스는 1990년대 말 런던 북쪽의 하버스탁 힐, 벨시제공원, 햄스테드, 첼시, 칩사이드, 켄티시타운 등 9개 지점으로 늘었다.
성공의 핵심 비결 가운데 하나는 지역사회와의 소통이다. 돈트북스는 온라인 서점과 경쟁하기 위해선 차별화된 영업전략의 필요성을 인식해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평균 근무기간이 10년이 넘을 만큼 돈트북스에 입사한 직원들은 이직률이 높은 온라인과 대형서점에 비해 고객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20여 년이 넘는 장기 근속직원의 경우 단골고객의 독서 취향 등을 꿰뚫어 좋은 신간을 추천하는가 하면 출간 당시 평단이나 독자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책들도 소개한다.
현장성 역시 돈트북스가 추구하는 원칙이다. 직원의 친절한 응대를 받으며 책을 만나는 동네서점이야말로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라는 것이다. 이때 고객들은 직원들이 직접 책을 진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신뢰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여행 서적 전문서점인 돈트북스는 특히 독특한 책 분류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1층 로비 가운데에 걸려 있는 ‘Through to Books Arranged by Country’ 안내문이 말해주듯 장르 별이 아닌 대륙별, 국가별로 나눠져 있다. 보통 서점의 경우 여행 서적과 소설, 시 등의 분야로 구분해 서적을 진열한다면 돈트북스는 각 나라, 또는 대륙의 이름이 적힌 서가 아래에 그 나라와 관련된 소설, 에세이, 여행기, 논픽션 등을 함께 비치해놓는다. 예를 들면 그리스 서가의 경우, 가장 일반적인 그리스 여행지를 소개한 서적에서부터 그리스어 회화서적,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드미트리 카크미(Dmetri Dakmi)의 논픽션 ‘마더랜드’(Matherland), 존 파울스(John Floles) 소설 ‘마거스’(The Magus) 등이 꽂혀 있다. 독자들은 각 나라의 역사와 문학, 철학과 예술 등이 망라된 책의 세계를 통해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브렛 울스튼크로프트는 “출판사의 입김이 좌우되는 대형서점의 매대(賣臺)와 달리 돈트북스는 철저히 직원들의 안목과 단골 고객들의 리뷰(서평)에 의해 꾸며진다”면서 “돈트북스의 멤버십 회원들이 쓴 독후감은 일반 고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귀띔했다.
돈트북스의 단골 고객인 샐리 크로포드(Sally Crowford)는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카페에 들르듯 자주 서점을 찾는다”면서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휴가를 다녀오게 된 것도 서가의 독일 섹션에서 프랑크푸르트의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 요리 등을 다룬 책들을 ‘동시에’ 만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우리가 꿈꾸는 서점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라 독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플랫폼이다. 많은 사람이 서점의 위기를 얘기하지만 독자의 흥미를 자아내는 메뉴를 내놓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20년 전 쇠락의 길에서 기사회생한 런던의 펍(pub)처럼”. 브렛 울스튼크로프트가 전하는 동네서점의 미래다.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근래 말리본 하이스트리트의 핫플레이스는 누가 뭐래도 ‘돈트북스’(Daunt Books·말리본 하이스트리트 83-84가)다. 영국의 유력신문인 데일리텔레그래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가디언이 ‘세계 10대 서점’으로 선정할 만큼 런던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돈트북스를 방문하던 날,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쇼윈도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표지가 전면에 보이도록 일본작가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책 20권을 배치한 디스플레이가 신기했다. 마치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는 갤러리의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는 것 같았다.
돈트북스는 은행가 출신인 제임스 돈트(James Daunt·54)가 세운 영국의 대표적인 독립서점이다. 캠브리즈 대학 출신인 그는 JP모간에서 투자상담가로 4년간 일했지만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평소 여행을 즐겼던 그는 대학시절 역사와 예술 등에 관한 책을 가까이하는 등 인문학적 소양이 깊었다. 금융맨으로 잘나가던 그는 26살 되던 해 과감히 직장을 걷어치우고 지금의 자리에 동네서점을 열었다.
그의 ‘돈트북스 프로젝트’는 런던 사회에 큰 화제를 낳았다. 온라인 서점과 워터스톤즈(Waterstones) 등의 대형서점에 밀려 동네서점들이 쇠락해가는 상황에서 돈벌이가 안 되는 서점을 열겠다는 건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 동기인 변호사 출신의 브렛 울스튼크로프트(Brett Wolstencroft·54)를 영입해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평소 독서를 즐기던 브렛은 호기심에 끌려 파트타임으로 참여했는데, 서점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현재는 돈트북스의 총괄매니저를 맡고 있다.
돈트북스는 주위의 우려를 뒤로하고 개점 5년 만에 매출 14억 원을 기록하는 대박을 냈다. 지난 2010년에는 98억 원의 매출과 동시에 5명 안팎이었던 직원이 40명으로 늘었다. 당시 런던의 동네서점들이 일주일 사이에 6개가 문을 닫는 등 최악의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돈트북스의 성과는 기적에 가까웠다. 단일 점포로 시작했던 돈트북스는 1990년대 말 런던 북쪽의 하버스탁 힐, 벨시제공원, 햄스테드, 첼시, 칩사이드, 켄티시타운 등 9개 지점으로 늘었다.
성공의 핵심 비결 가운데 하나는 지역사회와의 소통이다. 돈트북스는 온라인 서점과 경쟁하기 위해선 차별화된 영업전략의 필요성을 인식해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평균 근무기간이 10년이 넘을 만큼 돈트북스에 입사한 직원들은 이직률이 높은 온라인과 대형서점에 비해 고객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20여 년이 넘는 장기 근속직원의 경우 단골고객의 독서 취향 등을 꿰뚫어 좋은 신간을 추천하는가 하면 출간 당시 평단이나 독자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책들도 소개한다.
현장성 역시 돈트북스가 추구하는 원칙이다. 직원의 친절한 응대를 받으며 책을 만나는 동네서점이야말로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라는 것이다. 이때 고객들은 직원들이 직접 책을 진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신뢰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여행 서적 전문서점인 돈트북스는 특히 독특한 책 분류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1층 로비 가운데에 걸려 있는 ‘Through to Books Arranged by Country’ 안내문이 말해주듯 장르 별이 아닌 대륙별, 국가별로 나눠져 있다. 보통 서점의 경우 여행 서적과 소설, 시 등의 분야로 구분해 서적을 진열한다면 돈트북스는 각 나라, 또는 대륙의 이름이 적힌 서가 아래에 그 나라와 관련된 소설, 에세이, 여행기, 논픽션 등을 함께 비치해놓는다. 예를 들면 그리스 서가의 경우, 가장 일반적인 그리스 여행지를 소개한 서적에서부터 그리스어 회화서적,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드미트리 카크미(Dmetri Dakmi)의 논픽션 ‘마더랜드’(Matherland), 존 파울스(John Floles) 소설 ‘마거스’(The Magus) 등이 꽂혀 있다. 독자들은 각 나라의 역사와 문학, 철학과 예술 등이 망라된 책의 세계를 통해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브렛 울스튼크로프트는 “출판사의 입김이 좌우되는 대형서점의 매대(賣臺)와 달리 돈트북스는 철저히 직원들의 안목과 단골 고객들의 리뷰(서평)에 의해 꾸며진다”면서 “돈트북스의 멤버십 회원들이 쓴 독후감은 일반 고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귀띔했다.
돈트북스의 단골 고객인 샐리 크로포드(Sally Crowford)는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카페에 들르듯 자주 서점을 찾는다”면서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휴가를 다녀오게 된 것도 서가의 독일 섹션에서 프랑크푸르트의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 요리 등을 다룬 책들을 ‘동시에’ 만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우리가 꿈꾸는 서점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라 독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플랫폼이다. 많은 사람이 서점의 위기를 얘기하지만 독자의 흥미를 자아내는 메뉴를 내놓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20년 전 쇠락의 길에서 기사회생한 런던의 펍(pub)처럼”. 브렛 울스튼크로프트가 전하는 동네서점의 미래다.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