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되면서 대학입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예·체능계 실기시험은 내년 1, 2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라 예능계열 입시생들은 실기연습에 열중하면서 긴장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미술대학 실기 시험과제는 예전과는 달라졌지만 한때 석고 데생이 필수였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아그리파, 줄리앙, 브루투스, 비너스 석고상들을 수년에 걸쳐 암기하듯이 그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

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데생을 배우기 위한 모티브로 시작한 ‘아그리파’ 석고상이 로마시대 아우구스투스의 지휘관으로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상대해 승리를 거둔 최고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바로 그 ‘아그리파’ 인 줄은 뒤늦게 알았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BC 63∼BC 12). 카이사르 암살 후 공개된 유언장에는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옥타비아누스(후일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유산상속, 양자, 성까지 물려준 후계자로 지명하는 것과 함께 전투에 서투른 옥타비아누스에게 성실하고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아그리파를 붙여주는 내용도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평생 친구이자, 동지, 협력자로서 완벽한 이인삼각을 발휘했고, 그 덕분에 아우구스투스가 로마를 새로운 궤도에 진입시킨 최초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로마 판테온과 최초의 공중 목욕탕인 아그리파 목욕탕을 건설하기도 했던 아그리파는 언제나 최고의 권력자이자 ‘주인공’인 아우구스투스를 위한 대사업의 기반을 마련했고, 아우구스투스 또한 완벽한 신뢰로 답했다. 눈앞의 이해로 인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는 오늘 우리 사회에 비춰보면 참 부러운 관계이다.

아그리파 석고상을 데생하는 학생의 시점이 되어 선을 나눠보고 명암을 파악하여 양감, 질감, 반사광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가늠해본다. 체격이 건장하고 다부진, 그러면서도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였던 아그리파의 심지 깊은 기개가 곱슬머리와 굳게 다문 입과 눈매에서 느껴진다.

〈광주 비엔날레 광주폴리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