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결혼식을 마치고 유럽(8박 10일)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파리를 거쳐 베니스, 피렌체, 로마에 들러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겨우 열흘 정도 지났을 뿐인데, 내가 정말 유럽에 갔다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꿈처럼 느껴진다.

집 현관에 붙어 있는 에펠탑 모양의 자석,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그림이 그려진 자석 등이 내가 파리와 피렌체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태어나 제일 먼 곳에 가 보았다. 책과 사진, 텔레비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기 때문에 유적지나 문화재는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에펠탑은 웅장했고, 베르사유 궁전은 휘황찬란했으며, 모나리자는 북새통 안에서도 방탄 유리에 싸여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티칸의 산피에트로 대성당은 종교가 없는 내게도 성스러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가이드는 유명한 유적지들을 안내해주며 그 역사와 의미를 연도와 사람 이름까지 콕콕 찍어가며 보고 읽는 것처럼 읊어 주었고, 아내와 나는 ‘아 그렇구나!’하는 감탄사만 내뱉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 맛집이나 또 다른 볼거리, 주의해야 할 점들도 자세히 알려 주었다. 공간적인 배경만 바뀌었을 뿐이지 마치 우리나라에 있는 것처럼 편했다.

가이드가 제 할 일을 마치고 떠난 이후의 시간은 여행자에겐 완전히 낯선 세계가 됐다. 자유롭지만 불편했다. 음식의 경우 메뉴판을 봐도 주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베니스에서는 점원이 추천한 파스타를 먹고 9만 원이나 되는 돈을 내기도 했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파스타였고, 들어보니 다른 여행자들도 그런 바가지를 쓴 경험이 있다고 해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여행지라는 낯선 곳에서 우리는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익숙했던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낯선 곳의 불편함은 일시적이고, 우리는 여행지에서 원래 있던 익숙한 곳으로 돌아오고, 가족과 친구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돌아올 수 있기에 떠나는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재판이라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사람에게 위와 같은 달콤한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든 타인의 부당한 요구를 뿌리치기 위해서든 분쟁의 당사자가 돼 재판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당사자에게 큰 고통이다. 법정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많이 방영되고 있는 덕분에 법률 용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겠지만, 그들 역시 여행지에서의 나처럼 낯선 환경에 놓인 여행자에 불과하다.

그분들에게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길을 잘 알려주는 가이드가 필요하다. 내가 신혼여행에서 만났던 분들과 같은 가이드가 필요하다. 내가 과연 그와 같은 가이드인지 묻게 된다.

개업 초기에는 의뢰인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써야 할 서면은 많고 시간은 없으니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빨리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뢰인의 입장에선 차분하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으로, 내 딴에는 성실하게 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을 미처 다 못해 불만을 갖는 의뢰인이 있기도 했다.

지금은 의뢰인들이 되도록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하고, 이야기가 사건 본질과 너무 동떨어졌을 때에만 제자리로 되돌려 놓으려 하고 있다.

의뢰인들은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고 한 이후 나는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을 뿐인데도 고맙다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내 마음도 홀가분해진다.

신혼여행 때 만났던 가이드를 통해 낯선 곳에서 별다른 불편함 없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워 돌아왔다. 이제 내가 그 분들과 같은 가이드가 돼 낯선 곳에 발을 들여야 하거나 이미 들여놓은 의뢰인들이 불편함 없이 이 세계에서 무사히 웃으며 나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