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에세이, 영화시나리오와 비평 등 전방위적인 글쓰기로 세상을 향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서슴지 않았던 수잔 손택(1933∼2004)은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사방팔방이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인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일종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손택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고통이 곧 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연민을 갖는 것,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JSA 귀순 북한병사가 뉴스의 중심이 되면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미지’가 이렇게 논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지금 우리에겐 간식이나 심지어 사료작물로 취급되고 있지만 어딘가에서 중요한 식량이 되고 있는 옥수수에 주목하게 된 것도 드문 일이다.

옥수수 하면 왠지 지나간 시절에 대한 연민이 떠오른다. 한국 근대 미술의 거장 이인성(1912∼1950)의 ‘어느 가을날’(1934년 작)은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해바라기와 옥수수, 사과나무가 어우러진 붉은 대지, 건강하게 가슴을 드러낸 큰애기와 소년이 서있는 그림이다. 자세히 보면 옥수수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내겐 무슨 까닭에서인지 ‘옥수수’를 생각하면 동시에 연상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 식민시절 조선의 황토색을 드러낸 이 작품은 바삭하게 마른 옥수수줄기가 조국을 잃어 곤궁해지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고 있는 듯 여겨지기 때문일까?

대구에서 태어난 이인성은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고, 1931년 선전에서 특선을 수상하자 그를 아끼는 유지들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도쿄의 미술재료회사의 사환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다이헤이요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화가는 일본 제국미술전람회 입상 등 당시 최고의 서양화가로 명성을 떨쳤었는데 한국전쟁 중 경찰의 총기 사고로 요절해 짧고 굵은 생과 예술업적을 남긴 전설적인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광주폴리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