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생각’] 나무는 장애물이 아니다
2017년 11월 16일(목) 00:00 가가
도시에서 나무는 ‘장애물’이기 십상이다. 우선 시각 장애인에게 그렇다. 흰 지팡이로 가늠하며 걷다보면 불쑥 나타나는 나무에 부딪치기 일쑤다. 안내견을 동반해도 마찬가지다. 안내견의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서 난데없이 다가오는 나뭇가지가 부딪쳐 살갗이 긁히거나 옷가지가 찢기곤 한다.
시력이 온전한 사람들에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인들에게 특히 그렇다. 울울창창 뻗어난 나뭇가지가 신호등은 물론이고, 손님의 눈길을 끌어야 할 간판까지 가린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바삐 걸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시의 가로수는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장애물이 된 나무는 잘려나갈 운명에 처한다. 둥글게 펼친 곡선의 나뭇가지를 사람의 취향에 맞춰 직선의 사각형으로 잘라내기도 하고, 끝 부분만 겨우 남긴 채 나뭇가지를 통째로 잘라낸다. 그나마 아예 나무를 죽이거나 뿌리째 뽑아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싶다. 참혹한 풍경이라 해도 장애물인 이상, 도시의 나뭇가지는 무참하게 잘리고 베어질 수밖에 없다. 인정사정없다.
도시는 처음에 나무가 살던 자리였다. 사람보다 먼저 자리 잡은 나무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지어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내고 도시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어떤 도시라 해도 나무 없이 살아가는 게 가능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나무를 다시 심었다. 대로에도, 고층 빌딩 곁에도, 아파트 단지 안에도.
도시에 살며 나무가 곁에 있다는 걸 체감하는 건 쉽지 않다. 도시인의 삶이 그렇다. 이른 아침에 잠이 덜 깬 채로 직장에 달려가며 나무를 헤아릴 겨를은 없다. 저녁에도 마찬가지다. 피로에 지친 귀갓길에 나무가 눈에 띄기를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결국 늘 걷는 길에 서 있는 나무가 피운 꽃을 바라보며 생명의 이야기에 눈맞춤하기는 애시당초 글러먹었다. 도시의 삶이 그렇다.
그러나 여유를 갖고 돌아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사람이 평안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건 말 없이 서 있는 나무들이다. 나무 없이는 숨조차 쉬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대관절 나무가 없다면 집이나 가구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목재 기구들은 무엇으로 만든단 말인가.
내 삶이 나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건 둘째 치고라도 바로 내 곁에 나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잠깐의 여유가 절실하다. 도시에서도 나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느끼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단 1분, 아니, 30초 정도면 충분하다. 나무 그늘에 들어서서, 내가 내쉬는 날숨은 나무에게 꼭 필요한 들숨이 되어 나무의 몸을 한 바퀴 돌아 세상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릴 지상의 양식을 만들어낸 뒤 다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를 내뿜는다는 사실을 돌아볼 수만 있으면 된다. 비로소 나무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공생의 생명체임을 느끼는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나는 나무를 살게 하고, 나무는 나를 살게 한다. 나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곧 내가 살아있는 순간이다.
나무를 장애물이라고 이야기했던 시각 장애인과 한 해 내내 나무를 찾아다니며 손으로 코로 귀로 나무를 감각하고 교감하려 애썼던 적이 있다. 장애물이라고는 했지만, 그이는 성의 있게 손으로 나무줄기를 만졌고, 코로 꽃향기를 탐색했으며, 귀로 나무줄기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지나 그는 별다른 도움 없이 나무를 탐색했고 나무에 담긴 기운을 세심히 느꼈다. 그이가 찾아낸 나무의 소리, 나무의 향기, 그건 생명의 기운이었다. 그즈음에 그가 말했다.
“나무를 눈으로 보느냐, 다른 감각으로 느끼느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과 성의’라고 말했다. 관심과 성의를 바탕으로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나무에 다가서느냐는 그냥 다른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도시인들이 나무를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 관심과 성의다.
나무가 아름다운 곳에서는 사람도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무가 죽어가는 곳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 나무는 장애물이 아니다. 말없이 삶의 바탕을 짓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이다. 찬란한 단풍 빛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을 내려놓은 나무 그늘에 들어서서 공생의 이치를 짚어보는 여유가 필요한 즈음이다. 그것이 곧 이 땅에서 더 평안하게 살아갈 지혜를 깨닫는 첫 걸음이지 싶다.
〈나무 칼럼니스트〉
시력이 온전한 사람들에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인들에게 특히 그렇다. 울울창창 뻗어난 나뭇가지가 신호등은 물론이고, 손님의 눈길을 끌어야 할 간판까지 가린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바삐 걸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시의 가로수는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도시는 처음에 나무가 살던 자리였다. 사람보다 먼저 자리 잡은 나무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지어냈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내고 도시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어떤 도시라 해도 나무 없이 살아가는 게 가능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나무를 다시 심었다. 대로에도, 고층 빌딩 곁에도, 아파트 단지 안에도.
내 삶이 나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건 둘째 치고라도 바로 내 곁에 나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잠깐의 여유가 절실하다. 도시에서도 나무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느끼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단 1분, 아니, 30초 정도면 충분하다. 나무 그늘에 들어서서, 내가 내쉬는 날숨은 나무에게 꼭 필요한 들숨이 되어 나무의 몸을 한 바퀴 돌아 세상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릴 지상의 양식을 만들어낸 뒤 다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를 내뿜는다는 사실을 돌아볼 수만 있으면 된다. 비로소 나무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공생의 생명체임을 느끼는 순간이 다가올 것이다. 나는 나무를 살게 하고, 나무는 나를 살게 한다. 나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곧 내가 살아있는 순간이다.
나무를 장애물이라고 이야기했던 시각 장애인과 한 해 내내 나무를 찾아다니며 손으로 코로 귀로 나무를 감각하고 교감하려 애썼던 적이 있다. 장애물이라고는 했지만, 그이는 성의 있게 손으로 나무줄기를 만졌고, 코로 꽃향기를 탐색했으며, 귀로 나무줄기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지나 그는 별다른 도움 없이 나무를 탐색했고 나무에 담긴 기운을 세심히 느꼈다. 그이가 찾아낸 나무의 소리, 나무의 향기, 그건 생명의 기운이었다. 그즈음에 그가 말했다.
“나무를 눈으로 보느냐, 다른 감각으로 느끼느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과 성의’라고 말했다. 관심과 성의를 바탕으로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나무에 다가서느냐는 그냥 다른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도시인들이 나무를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 관심과 성의다.
나무가 아름다운 곳에서는 사람도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무가 죽어가는 곳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 나무는 장애물이 아니다. 말없이 삶의 바탕을 짓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이다. 찬란한 단풍 빛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을 내려놓은 나무 그늘에 들어서서 공생의 이치를 짚어보는 여유가 필요한 즈음이다. 그것이 곧 이 땅에서 더 평안하게 살아갈 지혜를 깨닫는 첫 걸음이지 싶다.
〈나무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