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볼 수 있고/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유안진 작 ‘지란지교를 꿈꾸며’중에서〉

여고 동창회를 다녀왔다. 모처럼 만난 동창들의 수다는 중년의 건강, 자녀들의 진학이나 진로 등으로 가득하고 짐짓 변하지 않은 우정을 확인해보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오랜만에 우정이라는 단어를 꺼내보며 웃음 짓는 우리 세대는 분명 옛날 사람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과학자들은 우정이라는 정신적 유대감은 인간에게만 발견되는 행위이고 과학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정서라고 한다. ‘나에게 이득을 주지 않아도 관계 맺는 그 자체가 좋아서 계속 곁에 두는 존재’가 갈수록 각박해진 현대사회여서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신철(1953∼ )의 작품 ‘기억풀이-조우’(2010년 작)를 처음 마주했을 때 중년 여성들의 동창모임이 연상됐다. 한껏 멋을 부리고 과거의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해 근사하게 연출하고 나섰을 친구들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청산도 출신 신철작가는 “과거 6,70년대 농어촌에서 흔히 있었듯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노동에 바친 어린 날 학급 친구이자 동네 누님들을 그림에서나마 행복하도록 치장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고운 옷, 예쁜 구두, 멋진 가방을 든 그림 속 그들을 촌스럽지만 예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임의대로 작품 감상을 했다가 작가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어린 아이들의 그림 같은 순수함, 단순함, 화려함 속 소박함이 불과 3,40년 전이건만 어느새 아득해진 그 시절들의 저장된 파일을 다시 불러내는 듯 애틋하다. 현재 양평에서 작업하고 있는 화가는 지금까지 32차례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가졌을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해오고 있다.

〈광주비엔날레광주폴리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