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4> 통영 '봄날의 책방'
2017년 11월 09일(목) 00:00 가가
슬리퍼 신고 마실 오고 반찬값 아껴 책 사고 … 동네 책방 ‘봄날’ 왔네
통영 ‘봄날의 책방’은 지역 출신 예술인의 삶과 문화자산들을 다룬 다양한 책과 자료를 판매한다. 매월 정기적으로 열리는 북 콘서트. 〈사진제공=남해의 봄날〉
지난 2011년 경남 통영의 한적한 주택가에 출판사가 문을 열었다. ‘남해의 봄날’. 봉수골로 불리는 동네는 오래된 주택들이 많은 데다 용화사 입구까지 이르는 700m 도로 양 옆에 식당들이 늘어서 출판사 입지로는 그리 좋은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남해의 봄날’은 2014년 사무실 옆에 ‘봄날의 책방’과 게스트 하우스 ‘봄날의 집’을 잇따라 오픈했다. 사람 구경하기가 힘든 동네에 책방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봄날의 책방’과 ‘봄날의 집’은 통영의 문화명소로 자리잡았다. 불과 3년 만이다. 책방에는 하루 평균 수십 여명이 방문하고 게스트 하우스에는 지난해에만 2500여 명이 다녀갔다.
‘봄날의 책방’과 ‘봄날의 집’이 각광받을 수 있었던 건 ‘남해의 봄날‘의 후광 때문이다.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정은영(45)대표와 남편 강용상(48·봄날의 집 운영)씨는 ‘지방에서 출판사로 살아남기 힘들다’는 주위의 만류를 뒤로하고 보란 듯이 전국에서 통하는 브랜드로 키워냈다.
그렇다면 그 성공비결은 뭘까. 강씨는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좇아 삶의 새로운 대안을 찾는 사람들의 여정을 콘텐츠로 담은 기획력의 힘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통영에 출판사를 내게 된 계기는 아내의 건강 때문이었어요. 서울에서 스토리텔링과 기업 대행홍보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를 세워 왕성한 활동을 할 무렵, 아내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약 1년간 지방에 내려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죠.”
두 사람은 서울탈출의 최적지를 고르기 위해 3가지 조건을 고려했다. 가능하면 일과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곳.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 그리고 마지막으로 먹을 거리가 신선하고 문화콘텐츠가 풍부한 곳. 이들 기준에 적합한 지역으로 통영과 제주도가 떠올랐고 먼저 통영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통영에 안착한지 6개월이 지난 후 아내 정씨의 건강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낯선 통영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면서 지역의 삶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1년 정도 지낸 후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던 두 사람의 계획은 통영에서 ‘본격적으로’ 살아보기로 마음먹고 비즈니스를 고민했다.
“1년 반이 지난 후 통영에서 터를 잡으려면 뭔가 해야하는데 막상 마땅한 일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서울에서 했던 각자의 경력을 살리기로 의견이 모아졌어요. 아내는 출판사 겸 로컬 스토리텔링 전문회사 ‘남해의 봄날’을, 나는 NGO를 지원하는 콘텐츠와 생태건축회사를 시작했어요.”
특히 출판사 ‘남해의 봄날’은 정씨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5년간 함께 일했던 아내의 동료가 서울살이를 접고 통영예 합류하면서 이들의 로컬 비즈니스는 탄력을 받았다. 정씨는 출간할 책들의 방향성을 정하고 아이템 기획과 저자섭외 등 출판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하지만 지역에서 출판일을 한다는 건 예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출판 관련 인프라가 서울과 파주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다 신생 출판사이다 보니 저자들을 발굴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정씨는 한때 잡지사 기자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자신이 직접 글도 쓰고 지역의 콘텐츠를 기획, 마케팅 하는 로컬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로 차별화했다. 지난 2012년 첫번째 결실인 ‘행복한 열살, 지원이의 영어동화’을 시작으로 ‘그림으로 나눈 대화-화가 전혁림에게 띄우는 아들의 편지’,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등 5년간 25종을 펴내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남해의 봄날’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두 사람은 지역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열기로 한다. 출판사를 통해 평범한 이웃을 만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영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부에게는 스스럼없이 만나서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공간이 책방과 북스테이 개념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마침 사무실 옆의 폐가가 눈에 들어왔다. 강씨는 집 주인을 설득해 구입한 후 산뜻하고 화사한 색감으로 리모델링해 지난 2014년 오픈했다. 책방은 바로 뒷편에 자리하고 있는 통영출신의 거장 전혁림 미술관과 톤을 맞춰 모던한 분위기로 디자인했다. 때문에 전혁림 미술관을 찾은 방문객들은 미술관이 동네로 확장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책방 주변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가꾼 화단과 텃밭들로 인해 목가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책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그림 액자처럼 걸어 놓은 듯 ‘남해의 봄날’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서가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4평 규모의 아담한 책방 내부에는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책과 자료들이 비치돼 마치 박물관을 둘러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봄날의 책방’은 강씨 부부의 바람대로 지역민들의 문화사랑방으로 변신했다. 평일 저녁에는 인근 주택에 사는 주민들이 슬리퍼를 신고 책방으로 마실을 나오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책방 가까이 사는 게 소원이었다는 뒷집 할머니는 반찬값을 아껴 한달에 수십권의 책을 사러 올 정도로 단골이 됐다.
또한 책방과 함께 문을 연 ‘봄날의 집’은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통영을 찾은 관광객들을 겨냥한 이 곳은 모두 4개의 방에 7명(2인실 3개, 1인실 1개)이 투숙할 수 있는데 휴가철 등 성수기에는 방을 구하기가 힘들다. 고 박경리 선생 등 통영 출신 예술가들을 테마로 한 ‘작가의 방’, 고 전혁림 화백과 아들 전영근 화백의 작품으로 장식된 ‘화가의 방’으로 꾸며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나무 계단을 올라 2층에 가면 ‘장인의 다락방 1, 2’가 나온다. 목가구에 사용하는 금속장식인 두석과 나전장인의 작품을 각각 테마로 삼았다.
강씨는 “투숙객들은 낮에는 통영을 관광하고 밤에는 책방에 들러 책을 고른 후 게스트하우스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며 “책읽는 통영 프로젝트나 통영 출신 예술인들의 문학관 등을 둘러 보는 아트투어, 북 콘서트, 인문학 피크닉 등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발신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영=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성공비결은 뭘까. 강씨는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좇아 삶의 새로운 대안을 찾는 사람들의 여정을 콘텐츠로 담은 기획력의 힘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서울탈출의 최적지를 고르기 위해 3가지 조건을 고려했다. 가능하면 일과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곳.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곳. 그리고 마지막으로 먹을 거리가 신선하고 문화콘텐츠가 풍부한 곳. 이들 기준에 적합한 지역으로 통영과 제주도가 떠올랐고 먼저 통영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1년 반이 지난 후 통영에서 터를 잡으려면 뭔가 해야하는데 막상 마땅한 일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서울에서 했던 각자의 경력을 살리기로 의견이 모아졌어요. 아내는 출판사 겸 로컬 스토리텔링 전문회사 ‘남해의 봄날’을, 나는 NGO를 지원하는 콘텐츠와 생태건축회사를 시작했어요.”
특히 출판사 ‘남해의 봄날’은 정씨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5년간 함께 일했던 아내의 동료가 서울살이를 접고 통영예 합류하면서 이들의 로컬 비즈니스는 탄력을 받았다. 정씨는 출간할 책들의 방향성을 정하고 아이템 기획과 저자섭외 등 출판의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하지만 지역에서 출판일을 한다는 건 예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출판 관련 인프라가 서울과 파주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다 신생 출판사이다 보니 저자들을 발굴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정씨는 한때 잡지사 기자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자신이 직접 글도 쓰고 지역의 콘텐츠를 기획, 마케팅 하는 로컬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로 차별화했다. 지난 2012년 첫번째 결실인 ‘행복한 열살, 지원이의 영어동화’을 시작으로 ‘그림으로 나눈 대화-화가 전혁림에게 띄우는 아들의 편지’,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등 5년간 25종을 펴내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남해의 봄날’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두 사람은 지역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열기로 한다. 출판사를 통해 평범한 이웃을 만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영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부에게는 스스럼없이 만나서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공간이 책방과 북스테이 개념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마침 사무실 옆의 폐가가 눈에 들어왔다. 강씨는 집 주인을 설득해 구입한 후 산뜻하고 화사한 색감으로 리모델링해 지난 2014년 오픈했다. 책방은 바로 뒷편에 자리하고 있는 통영출신의 거장 전혁림 미술관과 톤을 맞춰 모던한 분위기로 디자인했다. 때문에 전혁림 미술관을 찾은 방문객들은 미술관이 동네로 확장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책방 주변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가꾼 화단과 텃밭들로 인해 목가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책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그림 액자처럼 걸어 놓은 듯 ‘남해의 봄날’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서가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4평 규모의 아담한 책방 내부에는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책과 자료들이 비치돼 마치 박물관을 둘러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봄날의 책방’은 강씨 부부의 바람대로 지역민들의 문화사랑방으로 변신했다. 평일 저녁에는 인근 주택에 사는 주민들이 슬리퍼를 신고 책방으로 마실을 나오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책방 가까이 사는 게 소원이었다는 뒷집 할머니는 반찬값을 아껴 한달에 수십권의 책을 사러 올 정도로 단골이 됐다.
또한 책방과 함께 문을 연 ‘봄날의 집’은 전국적인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통영을 찾은 관광객들을 겨냥한 이 곳은 모두 4개의 방에 7명(2인실 3개, 1인실 1개)이 투숙할 수 있는데 휴가철 등 성수기에는 방을 구하기가 힘들다. 고 박경리 선생 등 통영 출신 예술가들을 테마로 한 ‘작가의 방’, 고 전혁림 화백과 아들 전영근 화백의 작품으로 장식된 ‘화가의 방’으로 꾸며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월의 두께가 느껴지는 나무 계단을 올라 2층에 가면 ‘장인의 다락방 1, 2’가 나온다. 목가구에 사용하는 금속장식인 두석과 나전장인의 작품을 각각 테마로 삼았다.
강씨는 “투숙객들은 낮에는 통영을 관광하고 밤에는 책방에 들러 책을 고른 후 게스트하우스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며 “책읽는 통영 프로젝트나 통영 출신 예술인들의 문학관 등을 둘러 보는 아트투어, 북 콘서트, 인문학 피크닉 등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발신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영=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