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 <10> 프랑스 파리- 강운
2017년 10월 19일(목) 00:00 가가
루브르서 뒷골목 갤러리까지 …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의 향기
콩코르드 광장 오벨리스크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은 한 화가가 프랑스 파리에서 머물며 겪은 일인데, 그 주인공이 그리는 주 모티브가 구름이며 내 그림이다. 영화를 보면 구름을 그리는 주인공에게 “아직도 명화를 꿈꾸냐?”고 질문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아무 말 못하고 얼버무리는 장면이 선명히 기억난다.
그때 내 상황과 심리상태로는 아주 리얼하고도 크게 들렸다. 지금도 영화 ‘밤과 낮’을 떠올릴 때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만의 고유 형식으로 사물에서 영혼에 이르는 명화를 그릴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꿈꾸고 있다.
파리 첫 탐방지로 오르세 미술관에 갔다. 천장의 유리 돔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갔을 때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을 비롯한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작가들의 명화들이 날 반겨주었다. 옛 건물의 외형을 보존하면서 이렇게 멋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그들의 문화 안목이 부러웠다.
저녁식사 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파리 시내를 산책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자주 봐선지 이국적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와인 탓인지 종소리만 있으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낭만의 시대를 향해 시간을 넘나드는 로맨스가 시작될 것 같은 밤이었다.
이번 프랑수아즈 리비넥갤러리 개인전 타이틀을 ‘Sky:Touch the air’라고 썼다. 직역하자면 ‘하늘:공기를 만지다’란 뜻으로 대기의 상념을 구상과 추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현지의 반응도 “의도와 비의도, 현상과 개념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대기의 변화에 경의를 표한 작품이라고 평하면서, 관람자 모두를 위대한 황홀에 빠지게 한다”는 격려의 말들을 들었다. 이제 데뷔했으니 구체적인 반응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언젠가 지인 변호사가 사람은 ‘편파적 이해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나도 그 부분에 지혜롭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시장의 벽에 부딪힐 때면 내 순수성과 작품성을 내세우며 어떤 식으로든 심리적 보상을 받으려는 모순적 태도에 직면했다. 하지만 시장 순환의 매개도, 작가가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윤활유도 자본이니 그것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예술가의 삶이 시장의 논리를 뛰어넘는 것도, 거기서 보상을 받는 것도 역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갤러리 요청에도 불구하고 가보지 못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보기 위해 서둘러 파리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에 어느 노부부를 만났는데 부인을 향한 남편의 깊고 인자한 미소와 노환으로 움직임이 둔한 남편을 보살피는 부인의 모습이 섬세하며 따뜻했다. 서로가 조용한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분위기. 평생을 함께 살아도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삶에 쉬이 허락되지 않는 행복을 노부부의 미소와 손길에서 봤다.
파리 곳곳을 다니면서 루브르, 오르세나 오랑주리 퐁피두센터 같은 유명하고 큰 미술관에서 명화들을 실물로 감상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작고 소박한 갤러리들도 각자 개성을 가지고 제법 알차게 전시하고 있는 것 또한 감명 깊었다. ‘예술의 나라’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작품과 전시가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있는 것 같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귀국 탑승구에서 호젓이 50대 이후를 생각해본다. 60에서 75세를 화가 인생의 황금기로 본다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림 그리는 일이 생계 수단에 비중을 뒀다면 60 전후의 삶은 예술가의 본질에 가까운 삶일 것이다. 이 시간 위에 꼭 해야 할 작업이 뭘까? 요즘 생각으론 사물과 그림과의 관계보다는 그리기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회화를 더 회화답게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뭔가 충만함과 허전함이 동시에 깃들었던 시간, 걷기 좋은 문화 관광도시 파리! 고독의 위로라고 하던가, 혼자서 조르쥬무스타키의 노래 ‘나의 고독’을 읊조려본다. 정신없이 작업하며 살 땐 몰랐는데 여행 중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의 부재는 퍽 쓸쓸하다. 사람을 꽃말에 비유하자면 ‘외로움’이 아닐까 한다.
화가로서 상업적인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꼭 그려야할 내용이 뭘까? 자문해본다. 긴 애벌레의 시간을 지내고 난 후, 번데기 숙성의 시간을 통해 나비로 변신하는, 냉정하면서 역동적인 50대는 변신의 시간이자 고독의 위로다.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Sky, Touch the Air’(프랑수아 리블렉 갤러리·파리), ‘Play:Pray’(사비나미술관·서울), ‘물, 공기 그리고 꿈’(포스코 미술관, 서울 외 21회) 등
-그룹전:‘정원사의 시간’(블루메 미술관·파주), ‘2016 중·한 현대미술 20인전’(UCITY ART MUSEUM OF GAFA, 광저우) 등
그때 내 상황과 심리상태로는 아주 리얼하고도 크게 들렸다. 지금도 영화 ‘밤과 낮’을 떠올릴 때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만의 고유 형식으로 사물에서 영혼에 이르는 명화를 그릴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꿈꾸고 있다.
저녁식사 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파리 시내를 산책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자주 봐선지 이국적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와인 탓인지 종소리만 있으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낭만의 시대를 향해 시간을 넘나드는 로맨스가 시작될 것 같은 밤이었다.
갤러리 요청에도 불구하고 가보지 못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보기 위해 서둘러 파리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에 어느 노부부를 만났는데 부인을 향한 남편의 깊고 인자한 미소와 노환으로 움직임이 둔한 남편을 보살피는 부인의 모습이 섬세하며 따뜻했다. 서로가 조용한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분위기. 평생을 함께 살아도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삶에 쉬이 허락되지 않는 행복을 노부부의 미소와 손길에서 봤다.
파리 곳곳을 다니면서 루브르, 오르세나 오랑주리 퐁피두센터 같은 유명하고 큰 미술관에서 명화들을 실물로 감상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작고 소박한 갤러리들도 각자 개성을 가지고 제법 알차게 전시하고 있는 것 또한 감명 깊었다. ‘예술의 나라’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작품과 전시가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있는 것 같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귀국 탑승구에서 호젓이 50대 이후를 생각해본다. 60에서 75세를 화가 인생의 황금기로 본다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림 그리는 일이 생계 수단에 비중을 뒀다면 60 전후의 삶은 예술가의 본질에 가까운 삶일 것이다. 이 시간 위에 꼭 해야 할 작업이 뭘까? 요즘 생각으론 사물과 그림과의 관계보다는 그리기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회화를 더 회화답게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뭔가 충만함과 허전함이 동시에 깃들었던 시간, 걷기 좋은 문화 관광도시 파리! 고독의 위로라고 하던가, 혼자서 조르쥬무스타키의 노래 ‘나의 고독’을 읊조려본다. 정신없이 작업하며 살 땐 몰랐는데 여행 중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의 부재는 퍽 쓸쓸하다. 사람을 꽃말에 비유하자면 ‘외로움’이 아닐까 한다.
화가로서 상업적인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꼭 그려야할 내용이 뭘까? 자문해본다. 긴 애벌레의 시간을 지내고 난 후, 번데기 숙성의 시간을 통해 나비로 변신하는, 냉정하면서 역동적인 50대는 변신의 시간이자 고독의 위로다.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Sky, Touch the Air’(프랑수아 리블렉 갤러리·파리), ‘Play:Pray’(사비나미술관·서울), ‘물, 공기 그리고 꿈’(포스코 미술관, 서울 외 21회) 등
-그룹전:‘정원사의 시간’(블루메 미술관·파주), ‘2016 중·한 현대미술 20인전’(UCITY ART MUSEUM OF GAFA, 광저우)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