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생각’] 긴 설렘과 오랜 기다림
2017년 10월 19일(목) 00:00 가가
태풍 ‘란’에 발목이 잡혔다. 일본 전설에 나오는 야쿠시마 삼나무를 찾아보기로 했던 답사 일정 전체를 취소하게 됐다. 깊어 가는 가을에 찾아온 태풍이 마침 야쿠시마 지역을 지나는 바람에 교통이 막혔다. 지난봄에 일정을 조정하고, 긴 설렘을 간직한 채 오래 기다렸던 일정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풍이 잦은 지역이라는 걸 모른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태풍은 예년에 비해 좀 늦었다. 예측을 완전히 벗어났다.
답사가 예정됐던 조몬삼나무는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의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던 야쿠시마 섬의 산꼭대기에 있는 큰 나무다. 일본인들은 이 나무를 조몬 시대부터 살았던 삼나무라 해서, ‘조몬스기’라고 부른다. 나무의 나이는 공식적으로는 7200년이라 하지만, 일본인들은 흔히 8000년 된 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과학적인 조사에 따르면 대략 2500년 전후의 수령으로 추정된다. 실제 수령이야 어떻든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이 삼나무는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나무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나무다.
크고 오래된 나무를 찾아보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돌아보면 나무를 찾아다니는 모든 길이 그렇다. 한 그루의 나무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적어도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봄에 돋아나는 새 순의 상태를 살피는 걸 시작으로, 꽃 모양과 꽃송이의 숫자를 헤아려야 한다. 꽃 지고 여름 되면, 여물어 가는 열매의 상태를 살펴야 하며, 가을에는 잎 위에 오르는 단풍의 상태를 톺아 봐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온 잎을 떨군 겨울의 상태까지, 계절마다 다르게 드러나는 나무의 모든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게다가 나무에 따라서는 해거리도 하기 때문에 이듬해에도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서 관찰해야 한다. 결국 이태 정도를 살펴봐야 겨우 한 그루의 나무를 ‘좀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무를 찾아가려면 때를 잘 맞추어야 한다. 기상도를 꼼꼼히 살펴야 하고, 또 현지 사정도 돌아보아야 한다.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단풍 예상 일지를 참고하기는 하지만, 그건 평균적인 예상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찾아보아야 할 나무의 단풍 시기는 기상청의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긴 설렘과 오랜 기다림 끝에 곱게 물들었을 단풍을 기대하고 나무를 찾아가지만, 아직 단풍이 덜 들었을 경우도 있다.
수백 년을 살아온 큰 나무들의 경우는 더 그렇다. 나뭇잎에 단풍이 들려면 나무가 제 몸 안에 머금고 있던 물을 모두 덜어내야 한다. 부피가 큰 나무일수록 몸 안의 물을 덜어내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결국 기상청의 단풍 예상 시기를 훨씬 지나서야 겨우 단풍 빛깔이 올라온다. 대략 5백 년 정도 된 큰 나무들의 경우, 평균적인 젊은 나무에 비해 열흘이나 보름 정도 늦은 편이다. 그 와중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단풍이 제대로 들기 전에 낙엽이 되어 떨어질 수도 있다. 한 해 내내 손꼽아 기다리던 단풍 든 모습을 관찰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봄꽃 답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개나리 벚꽃 예상도를 참고해 현장을 찾아가지만, 단풍이 그런 것처럼 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꽃이 채 피어나지 않을 경우도 있고, 때마침 봄비가 장하게 내리기라도 한다면 애써 피어난 꽃들이 낙화를 서두르곤 한다. 꽃이든 단풍이든 다시 또 삼백예순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한다. 나무를 보는 건 결국 그리움을 쌓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나무의 생명을 수학에서처럼 정확히 예측하고 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살아 있는 생명은 어떤 생명체이든 주변의 여러 요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곁에 있는 다른 생명들의 조건에 따라 상황은 늘 달라진다. 달리 말하면 나무는 여느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바람과 별을 따라 살아가는 생명체다.
어떤 대상을 온전히 만나기 위해 긴 설렘과 오랜 기다림을 수반해야 하는 건 꼭 나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터. 사람도 마찬가지다. 간절한 그리움으로, 긴 설렘과 오랜 기다림을 쌓은 뒤에야 누군가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법이지 싶다. 진정한 만남은 그때 비로소 결실을 이루리라.
<나무 칼럼니스트〉
그러나 과학적인 조사에 따르면 대략 2500년 전후의 수령으로 추정된다. 실제 수령이야 어떻든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이 삼나무는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나무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나무다.
크고 오래된 나무를 찾아보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돌아보면 나무를 찾아다니는 모든 길이 그렇다. 한 그루의 나무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적어도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백 년을 살아온 큰 나무들의 경우는 더 그렇다. 나뭇잎에 단풍이 들려면 나무가 제 몸 안에 머금고 있던 물을 모두 덜어내야 한다. 부피가 큰 나무일수록 몸 안의 물을 덜어내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결국 기상청의 단풍 예상 시기를 훨씬 지나서야 겨우 단풍 빛깔이 올라온다. 대략 5백 년 정도 된 큰 나무들의 경우, 평균적인 젊은 나무에 비해 열흘이나 보름 정도 늦은 편이다. 그 와중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단풍이 제대로 들기 전에 낙엽이 되어 떨어질 수도 있다. 한 해 내내 손꼽아 기다리던 단풍 든 모습을 관찰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봄꽃 답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개나리 벚꽃 예상도를 참고해 현장을 찾아가지만, 단풍이 그런 것처럼 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꽃이 채 피어나지 않을 경우도 있고, 때마침 봄비가 장하게 내리기라도 한다면 애써 피어난 꽃들이 낙화를 서두르곤 한다. 꽃이든 단풍이든 다시 또 삼백예순날을 손꼽아 기다려야 한다. 나무를 보는 건 결국 그리움을 쌓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나무의 생명을 수학에서처럼 정확히 예측하고 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살아 있는 생명은 어떤 생명체이든 주변의 여러 요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곁에 있는 다른 생명들의 조건에 따라 상황은 늘 달라진다. 달리 말하면 나무는 여느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하늘과 바람과 별을 따라 살아가는 생명체다.
어떤 대상을 온전히 만나기 위해 긴 설렘과 오랜 기다림을 수반해야 하는 건 꼭 나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터. 사람도 마찬가지다. 간절한 그리움으로, 긴 설렘과 오랜 기다림을 쌓은 뒤에야 누군가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법이지 싶다. 진정한 만남은 그때 비로소 결실을 이루리라.
<나무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