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 <8> 독일 라이프치히-김유섭
2017년 09월 14일(목) 00:00 가가
저항과 연대정신, 베를린 장벽 무너뜨리다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표현으로 촛불집회가 열렸던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
19년의 시간을 학생, 작가, 교수로 신분을 바꿔가며 독일에서 보냈다. 그 사이 베를린 장벽이 눈앞에서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 냉전이 끝나고 동구가 무너지는 혼란스런 역사적 과도기 가운데서 보낸 적잖은 시간은 마치 앞 뒤 손바닥처럼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을 갖게 했다.
1990년 겨울 독일 라이프치히의 첫 인상은 짙은 잿빛의 어둡고 음울한 모습이었다. 통일 직후 가 본 첫번째 구 동독의 도시였던 그곳에서 길거리 어디에서든 두껍고 어두운 복장의 사람들이 나를 조용히 주시하던 눈빛들을 잊을 수 없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통일에, 길거리에 나타난 동양의 이방인은 더욱 낯설게 보였으리라. 그로부터 십 여년이 지난 라이프치히는 또 달랐다.
‘예술, 전통, 저항, 혁명, 민주항쟁, 빛.’ 이 단어들은 나의 고향 광주를 상징하고 나에겐 동시에 독일 라이프치히’를 떠오르게 한다.
광주가 한반도 남쪽에 위치하듯 독일 남부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바흐를 비롯해 멘델스존, 슈만, 바그너, 말러 등 수많은 음악가와 대문호 쾨테, 니체가 활동했던 철학, 문학, 예술의 위대한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전후 그 옛 영광은 온 데 없고 암울한 회색빛이 도시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모임과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통제당하고 탄압되던 그 시기에 교회는 그나마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던 장소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직자와 몇몇 젊은 사람들이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표현으로 매주 월요일에 모여 평화의 기도를 올린 것이다. 이 월요 기도모임은 점차 그 참여자가 늘어나 동독 건립 40주년 기념일인 10월 7일에는 4000여명으로 늘어났고, 정권의 거친 탄압으로 200여 명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 사태 후 오히려 더 많은 시민들이 교회 주변으로 몰려와 자유를 외쳤다. 모일 때마다 그 수는 더욱 늘어 몇 주 후에는 당시 라이프치히 시민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12만이 넘는 시민들이 집회에 참석해 자유와 반독재를 외쳤다.
작은 기도 모임에서 시작해 독일 전체로 번진 이 시위는 불과 한 달 후인 11월 9일, 백년 동안 끄떡없을 것이라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1년 후 독일이 통일되는 드라마가 탄생한다.
그래서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독재의 간섭과 폭력으로부터 해방을 요구하던 촛불시위, 1989년 10월 9일의 그 평화적 혁명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10월 9일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빛축제를 연다.
모든 것이 변했다. 통독 후 동독을 지탱해 오던 사회 시스템과 국가 존립 철학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 될 것을 강요받았다. 그 혼돈과 변화의 시대에 물밀 듯 밀려온 자본주의 시스템과 철학은 특히 대학의 전통적인 표현 방식과 작품 철학을 고립시켰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작품을 제작해 온 전통적인 회화 방식에 통일 후 새로운 사회 환경과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철학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시대적 주제와 역사 의식은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라이프치히 스쿨’, ‘라이프치히파’라는 새로운 회화 형식을 낳았으며 이 화풍은 곧 세계 화단의 중심 중 하나가 된다.
전통에 입각한 표현 방식, 자본주의적 사회 환경에 대응한 새로운 철학과 변화와 혁신은 찬란했던 문화와 예술의 도시 라이프치히의 위대함을 오늘날 다시 되살리고 있다.
구 동독시절의 ‘스타지’, 번역하면 ‘국가안전부’라 불렸던 동독비밀경찰이 국민들을 감시하며 작성했던 ‘블랙리스트’는 저항의 촛불집회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동독이라는 나라는 없어졌다. 예술 본연의 표현과 창조에 대해, 나아가 인간에 대한 규제와 간섭의 ‘블랙리스트’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위정자들과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예술, 전통, 저항, 혁명, 민주항쟁, 빛의 도시’ 광주에서도 민주와 자유, 독재와 그 블랙리스트 등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매년 각성과 경고의 촛불집회, 빛축제가 열린다면 좋겠다.
“예술이란 것은, 이것은 허락되고 이것은 하면 안되고 이런 환경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동독예술이라는 것이 그런 기반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동독예술을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다.”(Jean Hoet·카셀도큐멘타 총감독)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졸업
-독일 베를린국립예술대학교·대학원졸업
-개인전 30여회 (서울, 광주,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베를린예술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1990년 겨울 독일 라이프치히의 첫 인상은 짙은 잿빛의 어둡고 음울한 모습이었다. 통일 직후 가 본 첫번째 구 동독의 도시였던 그곳에서 길거리 어디에서든 두껍고 어두운 복장의 사람들이 나를 조용히 주시하던 눈빛들을 잊을 수 없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통일에, 길거리에 나타난 동양의 이방인은 더욱 낯설게 보였으리라. 그로부터 십 여년이 지난 라이프치히는 또 달랐다.
광주가 한반도 남쪽에 위치하듯 독일 남부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바흐를 비롯해 멘델스존, 슈만, 바그너, 말러 등 수많은 음악가와 대문호 쾨테, 니체가 활동했던 철학, 문학, 예술의 위대한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전후 그 옛 영광은 온 데 없고 암울한 회색빛이 도시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작은 기도 모임에서 시작해 독일 전체로 번진 이 시위는 불과 한 달 후인 11월 9일, 백년 동안 끄떡없을 것이라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1년 후 독일이 통일되는 드라마가 탄생한다.
그래서 라이프치히 시민들은 자유와 민주주의, 독재의 간섭과 폭력으로부터 해방을 요구하던 촛불시위, 1989년 10월 9일의 그 평화적 혁명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10월 9일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빛축제를 연다.
모든 것이 변했다. 통독 후 동독을 지탱해 오던 사회 시스템과 국가 존립 철학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 될 것을 강요받았다. 그 혼돈과 변화의 시대에 물밀 듯 밀려온 자본주의 시스템과 철학은 특히 대학의 전통적인 표현 방식과 작품 철학을 고립시켰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지금껏 작품을 제작해 온 전통적인 회화 방식에 통일 후 새로운 사회 환경과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철학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시대적 주제와 역사 의식은 라이프치히 미술대학을 중심으로 ‘라이프치히 스쿨’, ‘라이프치히파’라는 새로운 회화 형식을 낳았으며 이 화풍은 곧 세계 화단의 중심 중 하나가 된다.
전통에 입각한 표현 방식, 자본주의적 사회 환경에 대응한 새로운 철학과 변화와 혁신은 찬란했던 문화와 예술의 도시 라이프치히의 위대함을 오늘날 다시 되살리고 있다.
구 동독시절의 ‘스타지’, 번역하면 ‘국가안전부’라 불렸던 동독비밀경찰이 국민들을 감시하며 작성했던 ‘블랙리스트’는 저항의 촛불집회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동독이라는 나라는 없어졌다. 예술 본연의 표현과 창조에 대해, 나아가 인간에 대한 규제와 간섭의 ‘블랙리스트’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위정자들과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예술, 전통, 저항, 혁명, 민주항쟁, 빛의 도시’ 광주에서도 민주와 자유, 독재와 그 블랙리스트 등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매년 각성과 경고의 촛불집회, 빛축제가 열린다면 좋겠다.
“예술이란 것은, 이것은 허락되고 이것은 하면 안되고 이런 환경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동독예술이라는 것이 그런 기반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동독예술을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다.”(Jean Hoet·카셀도큐멘타 총감독)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졸업
-독일 베를린국립예술대학교·대학원졸업
-개인전 30여회 (서울, 광주,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베를린예술대학교 조형대학 교수 역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