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의 상류에 위치한 오늘날의 중국 하남성 낙양(洛陽)은 그야말로 중국땅에서 가장 많은 왕조(주나라, 후한, 위, 서진과 북위, 수때 양재와 무주, 오대 때의 후당 등)를 만들어낸 문화 경제의 국제도시였다.

각 왕조가 이뤄낸 유적이 즐비하고 무엇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문화예술의 꽃을 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고전 시인인 이백과 두보, 백거이가 모두 낙양을 중심으로 예술활동을 했다. 또 유교철학을 담아 만든 주자학이 생겨난 곳도 낙양이다. 현재 중국 땅에서 아홉 왕조의 수도였다면 얼마나 넓고 깊고 화려한 문화유적과 사연이 많겠는가? 여기 지면에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하지만 찬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현재의 낙양은 여행객으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때의 찬란했던 문명이 현재 진행형이 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는 건 정말이지 쓸쓸하고 슬픈 일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유적지인 용문석굴은 수개의 왕조가 대를 이어 만들었다. 한 세대에서 그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온 그 유적에서도 ‘찬란한 영광을 뒤로 한 채 쓸쓸함과 허전함이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 낙양을 느낀다. 문화유산은 그저 박제된 채로 관람하는 골동품이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같이 호흡하고 있어야 윤이 나고 기품과 깊이가 생기는 것이다. 문화유산은 결코 지키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옛 선조처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이 있어야 새로운 가치가 생긴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장소에 수많은 시간과 사연들이 쌓이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역사가 쓰여 졌을 때, 많은 이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을 때 그 장소는 바로 진정한 현재 진행형의 살아있는 유적이 된다.

그러나 도시 낙양의 일상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식당이라는 진불동(眞不同)에서는 음식마저도 찬란했던 시대의 허영만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경문(麗景門)부터의 고시가지는 싸구려 상품으로 왁자지껄 볼품없는 도시의 뒷골목 야시장처럼 변해 있었다. 비단 이곳 뿐 아니다. 어디를 가든 우리나라의 여느 야시장과도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씁쓸한 입맛만 다시다 호텔로 돌아갔다.

여행에서 만나는 도시의 매력은 각 지역의 유적과 자연풍광에서 느낄 수 있다. 또 하나, 매번 여행에서 돌아와 느끼는 거지만 도시의 살아있는 진정한 멋은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는 문화 관련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명의 좋은 예술가가 살고 있는 도시는 아름답고 멋진 도시로 이름을 알릴 수 있다. 더불어 수십 명의 개성있는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고장은 멋진 이름 뿐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그 도시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장소로 오래도록 기억된다.

나는 오늘 예술가로서 어떻게 하면 나와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잠이 든다.

낙양에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나, 김상연은 이 글을 쓴다.



김상연

-전남대학교 미술학과 서양화전공

-중국미술대학 대학원 판화과 졸업

-마이클슐츠갤러리 초대전 (독일 베를린), 일단원공간 초대전(북경 중국), 기당미술관 초대전(서귀포) 등 개인전 다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