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이 좋다고 모두 대학에 가는 건 아니다.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김일성대에 가려면 소학교 때부터 사교육을 해야한다.” “학교교육은 말로만 무상이다. 학교 수업에 필요한 교자재를 개별적으로 챙겨야하고, 교복도 사입어야 한다. 심지어 구리·토끼 가죽 등 돈이 되는 것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북한에도 사교육이 있다. 촌지도 있다. 교수나 교사가 직접 과외를 뛰기도 한다. 우리나라 70∼80년대의 교육현장과 판박이다. 이유는 입시 경쟁이다.



◇북한 입시도 수학이 문제

북한판 입시 경쟁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된다. 북한 상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무용·악기(바이올린·피아노·드럼 등) 연주 등 예술활동은 기본이다. 이를 두고 ‘팔아먹기 좋은 특기’라고 한다. 그래서 북한의 부모들은 예술교육에 특화돼 있는 유치원에 보내려고 애를 쓴다.

교과 경쟁은 소학교(초등학교)때부터 본격화된다. 각 도마다 1곳씩 설치된 기숙학교인 ‘제1중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서다. 우리로 보면 ‘특목고’다.

제1중에 입학하면 노력 동원이 없고 대학 진학이 보장된다. 무엇보다 졸업 후 바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 경제난으로 군대 사정이 열악해지면서 어린 나이에 군대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들의 열망이 높아졌다고 한다.

국어와 수학에 열을 올린다. 교사 출신의 탈북민 A씨는 “당에서는 사상과 체육에 중점을 두지만 부모들은 국어와 수학에 기대를 많이 한다”며 “국어·수학만 잘하면 다른 과목은 중학교에 가서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름난 수학교사를 찾아 그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교사가 운영하는 수학소조에 넣기 위해서다.

극성 부모들 사이에서는 과외도 이뤄진다. 소학교 3학년말부터 학교 밖에서 실력있는 팀 과외를 하는 등 개별적으로 준비한다는 것이다.

과외는 수학에 집중된다. 제1중 입학시험에서 수학과목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교과 시험은 1차로 끝나는데 수학은 3차까지 치른다. 배점 또한 다른 과목은 50점인데 비해 수학은 100점이 만점이다. 수학 실력을 쌓는 것이 제1중 진학의 필수다.

만약 제1중 진학에 실패하더라도 수학공부를 집중적으로 해놓으면 일반 중학교에 가서라도 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거기에까지 포석한 부모의 자식 사랑이다.

일각에서는 과외 열풍을 ‘공교육 붕괴’에서 찾기도 한다. 학교마다 학과목 소조를 운영하고 있지만, 국가 지원이 턱없이 모자라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올 것 없는 학습 소조에 교사들은 형식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학생들의 성적은 오르지 않게 됐다. 그러자 부모들은 자연히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됐다는것이다.

김정원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모들은 사상교육보다 국어·수학 교육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들은 자녀들을 과외활동에 적극 참여시켜 교육 기회의 격차가 발생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수학 과목 등 ‘그룹 과외’를 위해 학부모들이 돈을 모아 과외 선생님의 집을 마련해주는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과외 열풍 근원은 ‘제1중’(톡목고)

중학교(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대학 입시는 당면 과제가 된다.

‘특목고’처럼 학생들을 따로 선발하는 제1중학교는 교과과목 중심의 대학교 입시에 매진한다. 이들의 목표는 중앙대학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이다.

일반중학교는 대학 지망생과 비지망생으로 나눠 선별식 수업을 진행한다. 비진학반 학생들은 졸업하면 군에 입대하는 경우가 많다. 진학과 비진학의 판단은 교사에게 달려있다. 학부모들은 자식의 진학반 배정과 교육, 대학입학 추천 등을 위해 교사에게 뇌물을 바치기도 한다.

북한의 과외 열풍은 ‘제1중’이 주도하고 있다. 제1중 입학은 북한에서 탄탄대로를 걷는 첫걸음이다. ‘제1중’은 대학 진학의 보증수표로 통한다. 이 때문에 과외가 소학교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한만길 한국교육개발원 석좌연구위원은 “제1중을 졸업해야 김일성종합대학 등 중앙대학에 진학하기 용이하고, 중앙대학을 졸업해야 당 간부을 비롯해 지도층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제1중 졸업생들에게 대학 입학을 위한 예비시험(수능시험) 면죄라는 특혜가 주어지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고 한다.

◇교원에겐 과외가 생계 수단

과외 선생은 대학생이 아닌 수준 높은 현직 교원들이다. 과외 수업은 매일 진행하며, 하루 2시간이 보통이다.

북한 교원들은 과외를 생계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공계대학의 경우 교원 절반 정도가 교직과 개인지도를 병행하고 있다. 대도시에서는 개인지도를 받는 학생이 20∼30%정도라고 한다.

과외를 따지 못하는 교원은 곤궁하게 살아가야 한다. 식량배급이 중단되면서 장사·무역·약초 채취·소규모 텃밭 개간 등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탓이다. 이러한 노동에는 학생을 동원하기도 한다.

광주에 거주하는 탈북민 B씨는 “의대에 진학했는데 전공 수업보다 산에 올라 약초 캐는 시간이 더 많았다”고 증언했다.

김 연구위원은 “당과 조직이 더 이상 개인의 생존을 위한 보호막이 되지 못하는 북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대학 진학 욕구로 표현되고 있다”며 “(북한 사회에서) 확대되는 돈의 힘은 공적인 학교제도를 무력화시켜 교육에서의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탈북민 C씨는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 평탄한 길을 걷게 하고 싶은 것은 남이나 북이나 똑같은 것같다”면서 “북한에서도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은 계속 구분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