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부터 몸이 편치 못했던 이유로 여행의 시작부터 힘이 든다. 감기의 뒤끝인 줄 알았는데 거의 한 달이 다 되도록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인천에서 델리를 향해 출발한 비행기 안에서 내내 계속된 기침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민망했다. 공항에 도착,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둘러 본 공항은 예전 2004년의 그곳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 규모나 시설이 이전 공항을 리모델링한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만든 것 같다. 인도의 잠재력을 공항을 보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택시 네 대에 나누어 타고 거의 한 시간가량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오후 7시. 저녁 식사를 위해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로비에 모여 식당에 갔다. 호텔방은 작기도 하지만 눅눅한 기운으로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다. 게다가 뜨거운 물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일행들의 불만도 클 듯하다.

오래전 인도여행 때 왔던 Old Delhi의 그랜드 바자르 중앙에 위치한 호텔인데 십 수 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 모습 그대로 변화는 없어 보인다.

거리는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로 뒤덮여 있고 그 안에 인간과 짐승이 뒤섞여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생수를 한 병 사려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느긋하게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있는 개 한 마리 옆으로 뭔가 작은 움직임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더러운 이불을 뒤집어 쓴 걸인 한 명이 몸이 아픈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누군가 먹다 버린 빵조각을 주워든다. 그리고선 손바닥으로 묻은 흙을 털어내는데 이 비참한 모습이 진짜 현실인가 눈을 의심하게 한다.

그저 살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행동으로만 보일 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은 생각해 볼 수도 없다.

세상은 첨단의 극을 향해 달려가고 인간을 속박했던 온갖 전통적 족쇄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아직 몇몇 곳은 신분제도를 내세워 사회 구성원에게 가혹하다.

바로 인도가 그렇다. 카스트에 따른 인도인의 신분은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이나 귀족), 바이샤(상인), 수드라(피정복민 및 노예, 천민) 등 4개로 구분되며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하는 않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 있다. 불가촉천민은 ‘이들과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이들은 흡사 짐승 취급을 받으면서 가장 천하고 불결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일을 도맡아 한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상층신분 사람들이 접촉을 꺼려 천민들끼리 우물을 따로 쓰고, 도시 생활을 할 경우 한데 모여 산다.

그들 중 상당수는 구걸을 하며 산다. 어느 사회든 가난한 사람, 남의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지만, 인도에서는 자주 눈에 띈다.

가난에 찌들려 거리로 내몰린 이들은 길 한구석, 육교 밑, 횡단보도 옆, 으슥한 공터를 가리지 않고 보잘것없는 짐을 푼다.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따뜻한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 나이의 철부지들까지 길거리를 헤매다가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잠든다. 이러한 인도 걸인 아이들 가운데 다수는 상습 음주자, 마약 투약자, 매독 환자, 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이다.

그렇게 미숙한 나이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망가지고 병든 아이는 아무런 도움 없이 죽어간다.

시티펠리스 입구 근처 온통 쓰레기로 가득한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엎드려 팽개쳐진 사내의 몸뚱이는 온통 파리로 뒤덮여 있다.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언짢기만 하다.

꽤 오랜 시간 관람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도 그 사내는 그 위치에 그대로 있다. 하지만, 그 자세가 조금은 달라져 있어서 죽지는 않았나 보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의 궁전 앞엔 많은 사람이 물건을 사고파는데 주로 곡물과 과일들 그리고 제단에 바치는 향 따위다. 사람들이 먹는 것을 팔기도 하겠지만 가만 들여다보니 동물들에게 줄 먹이를 파는 장사치들 같았다.

줄지은 장사치들 뒤로 넓은 터가 있는 곳에 당도하니 소, 염소, 원숭이며 새 떼가 가득 한곳에 모여 바닥에 흩뿌려진 먹이를 먹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한쪽에서 쓰다 버려진 몽당한 빗자루로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눈치를 봐가며 불안한 눈빛과 바쁜 손놀림으로 곡물을 봉지에 쓸어 담는다.

그 후로 동물들이 먹어야 하는 것을 왜 가져 가냐며 가져가지 못하게 막대를 휘두르는 중년여자와의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데 그 소란스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염소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여 먹이를 먹기 시작하고 능숙한 솜씨로 바나나 껍질을 벗겨낸 원숭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게걸스럽게 한입 베어 문다.

이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며 어리벙벙한 우리 일행들 옆으로 곡물을 짊어진 소년과 소녀가 활짝 웃으며 마치 전쟁에서 승리라도 해 크나큰 노획물을 획득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 김해성 작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

-쾰른아트페어, All About Ko rea(White Box, Munich, Germany)등 단체전 500여회

-조선대 평생교육원 전담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 선과 색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