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명 뿐이더라도 그 학생이 선생을 필요로 한다면 선생이 있어야 할텐데, 학교 관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구요. 당장에 들어가는 비용만 걱정을 해요. 사실 그들(탈북 학생)이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이보다 10배 아니 100배는 더 들어갈텐데 말이예요.”

북한이탈주민 안수진(여·48)씨는 ‘탈북학생 전담 코디네이터’다. 탈북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돕는 ‘도우미 교사’다. 탈북 학생과 담임 교사, 학교와 탈북민가정 사이에 다리를 놔주고 이야기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A초등학교에 탈북 학생이 있다고 하자. 탈북 어머니와 중국에서 살다 온 이 학생은 한글보다 중국어가 자연스럽다. 한글은 학교에 들어오기 전 1년간 공부방에서 한 게 전부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학생에게 스쿨뱅킹, 예행연습, 컴퍼스를 가져오라고 하면 알아들을까. 알림장에 안내한다고 탈북 어머니가 알까. 모른다. 북한에서는 이런 단어들이 없기 때문이다.

코디네이터는 학교와 탈북 학생의 간극을 좁혀주는 게 업무다. 코디네이터도 탈북민인 까닭에 친밀하다. 부모들도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래서 학생생활 뿐만아니라 교과 성적도 코디네이터와 상담을 할 정도다. 사실 탈북 학생들에게는 담임 교사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선생님이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원한다면…

수진 씨는 비록 계약직 보조교사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그는 교사는 자신의 운명인 것 같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인민학교 교사였기 때문이다.

그는 1969년 러시아와 인접한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났다. 인근에 ‘아오지탄광’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산골이다.

그의 유년시절은 넉넉했다. 아버지가 김책공대를 나온 엘리트였던 덕분이다. 평양에 마물수도 있었지만, ‘부모를 모셔야한다’는 책임감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고향에 있는 한 탄광의 관리직으로 배치됐다. 종업원이 6000명 가량인 이 탄광의 살림을 맡은 실무책임자였다. 어머니는 탄광병원의 간호장이었다.

그는 고등중학교 졸업 후 여군이 되고 싶었다. 제복이 멋있어서다. ‘그들이 나라를 지키고 있기에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가치관도 뚜렷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반대했다. ‘배워야 한다’면서 대학에 가길 원했다. 아버지와 상담한 학교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원대학에 추천했고 합격했다. 군대에 미련이 남아 내심 떨어지기를 고대했지만 합격하고 말았다.

북한 교사는 남한과 다르다. 우선 교원대나 사범대에 가려면 출신성분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400m 달리기·수류탄 던지기 등 국방체력이 임용시험의 주요 과목이기 때문이다.

◇20살에 인민학교 교사로

3년제 교원대를 졸업한 그는 20살에 교단에 섰다. 첫 근무지는 고향에서 50리 떨어진 산골학교였다. 원주민보다 이 곳으로 추방돼 온 이주민들이 더 많은 곳이었다. 부모의 잘못으로 쫓겨온 아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거칠었고 불만투성이었다.

인민학교 교사는 하루 일과를 교실에 걸린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와 지침이 적힌 명제판을 정돈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상화에 먼지가 앉으면 큰일 나는 탓이다.

수진씨는 교사가 즐거웠다고 했다. 보람도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달라졌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때 배급이 뚝 끊긴 것이다. 교사라도 별 수 없었다. 배를 곯고 고단했다. ‘교원은 직업적 혁명가’라는 교시를 들먹이며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강요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탁아소에 아이 둘을 맡기고 학교에 출근하는데 교장이 1분1초도 시간을 어기는 것을 넘어가지 않았다. 2교시 끝난 뒤 중간놀이시간 20분을 이용해 둘째아이 젖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배고픈 아이가 이 시간을 어찌 알겠는가. 제때 젖을 못먹으니 몸이 약하고 칭얼댔다.

교사가 경비도 섰다고 한다. 교자재 도둑을 막기 위해서였다. 젖먹이가 딸린 여교사라도 예외가 없었다. 그는 아이 둘을 안고 메고 날새기로 경비를 섰다. 2시간 간격으로 순찰을 돌았다.

이렇게 아둥바둥 살았다. 어느날 갑자기 교사로서의 회의가 찾아왔다. 제 새끼도 간수하지 못하는데 남의 자식을 어떻게 가르치겠느냐는 회의였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뒀다.

학교를 그만 둔 수진씨는 장마당(시장)에서 술장사를 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받아다가 물을 섞은 뒤 되팔았다. 벌이는 형편 없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많아졌다. 단속이 심해지면서 술장사를 접고 사금 채취에 나갔다. 하루종일 산에서 땅을 팠다. 하지만 마음은 편했다. 교사였던 탓에 장마당에서는 눈치가 보였는데, 산 속에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벌이도 조금은 나아졌다.

◇2번의 도강

북한에서는 생활총화라는 것을 하는데 어느날 여성동맹 생활총화에서 중국에 갔다가 잡혀온 사람을 향해 공개 비판했다. 하지만 뒤에서는 수근댔다. 그 사람이 ‘난놈’(똑똑한 사람)이라고. 누구나 배를 곯는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다. 산골에도 소문은 퍼졌다. 중국은 쌀이 넘쳐나고 밥 먹기가 싫어 돼지에게 준다는 아야기였다.

수진씨는 그 말에 현혹됐다. 중국에 가고 싶었다. 실컷 쌀밥을 먹고 싶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에게서 라디오를 듣게 됐다. 감미로운 음악이었다. 한국에 온 뒤 알게 됐지만 그 노래는 ‘전영록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였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유에 대한 갈망도 커졌다. 그리고 두만강을 건넜다. 2004년 6월이었다. 돈을 벌어 돌아와 그 돈으로 장사를 할 요량이었다. 중국 연길에서 넉달간 식당에서 일을 하며 500위안을 모았다. 북한으로 돌아가려고 두만강변에 나왔다가 붙들렸다. 보위부와 경찰서에서 죽도록 맞았다. 온몸이 멍들고 터졌다. 그래도 든든했다. 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교화소(교도소)로 갔다. 그 곳에서 2년간 콩밥을 먹었다.

교화소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북한을 등졌다. 2006년 11월 두번째로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서 5년간 살았지만 불안했다. 다시 붙들리면 죽음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었다. 한국행을 결심했다. 라오스·태국을 거쳐 2012년 3월 대한민국의 하늘을 맞았다.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직업이 필요했고, 직장을 구하려면 알아야 했다. 그래서 닥치는데로 배웠다. 지금 수진씨의 수중에는 사회복지사 2급, 한국어교원 2급, 중국어 HSK 5급, 인성지도사, 방과후학교 교사 1급, 다원재능상담사, ITQ 자격증이 놓여있다. 통일안보교육 강사와 자유학기제 중국어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때는 중국대표선수단 통역을 맡았다. 양학선·손연재 등 스포츠스타들도 만났다. 북한에 대한 궁금해하는 외국인들도 만났다. “의외로 북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해야 할일 중 하나는 북한 알리기와 통일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순천 글·사진=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