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일 정유년 신년의 설렘을 가득 안고 일상에서 탈출해 인도차이나 여행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내가 탄 여객기가 전날 밤 서울 동생집에서 본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 속 기종과 같은 ‘에어버스 320기’였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지 4시간 반 만에 하노이 공항에 바퀴를 내렸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베트남의 이미지는 월남전, 그리고 한국과 결혼을 많이 한 사돈나라였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오갔다. 월남전은 미국이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명 아래 인도차이나 적화의 도미노를 막고자 한국과 함께 한 전쟁이 우리들의 시각이었지만 베트남인들은 남북 통일전쟁으로 부르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을 몰아낸 베트남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으며, 그 중심엔 호치민이라는 국민적 영웅이 있었다. 그는 독신으로 청빈하게 살면서 죽을 때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고 알려진다. 오늘날 우리나라 위정자들의 호사와는 참으로 비교됐다.

하노이에서 버스로 4시간 동안 달려서 한국의 봄 날씨처럼 기후가 온화하고 기암괴석이 가득한 하롱베이에 도착했다. 유람선 선상파티와 보트를 즐기면서 그간 도시생활 시름을 떨쳐버릴 만큼 이틀을 만끽했다.

이번 인도차이나 여행의 핵심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이다.

시엠립 공항에서 캄보디아 입국수속을 마친 다음 훈센총리 조카가 운영한다는 멋진 파라다이스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앙코르 유적의 돌을 가져다가 정원에 쌓아 놓을 만큼 권력자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앙코르 유적지는 5∼9세기 인도차이나 중앙부를 지배한 크메르 제국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오늘날에는 베트남군과 크메르루지군의 전화로 인한 훼손과 약탈이 심각해 유네스코에 의해 복원과 발굴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석상에 파고들어 계속된 복원사업에도 불구하고 붕괴는 진행되고 있어 언제 관람객들의 출입을 통제할지 모른다는 소문도 수년 전부터 나돌았다.

나는 거대한 돌을 코끼리와 수로를 통해 운반한 것은 물론 모든 석상에 정교하게 조각돼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전사들과 하인들의 얼굴 표정 하나 하나 다르게 표현한 것은 엄청난 미의식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툼레이더’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나무뿌리들이 휘감은 석상들을 배경으로 뛰어 오르는 장면이 교차됐다.

슬픈 역사를 지녔음에도 이곳 사람들은 친절한 미소가 일품이다. 삶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이곳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전통시장을 찾았다. 한결같이 친절하고 앙코르 석상들의 미소와 같아 피로에 지친 우리 여행객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숱한 굴곡의 역사를 지닌 이 나라는 프랑스 식민지와 해방전쟁 그리고 킬링필드를 겪으며 자국의 제품공장이 하나도 없고 오직 천연자연 광물과 농산물을 기반으로 살고 있는 세계 대표적 빈국이다. 전대미문의 독재자 크메르루즈 군의 폴포트가 700만 인구 중 200만의 도시 지식인들을 청소(?)한 이유로 오늘날 사회적 경제적 동력을 상실했다.

톤레삽 호수로 가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연꽃 농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군데군데 한국의 유명한 ‘밥퍼목사’가 밥을 주는 교회도 보이고, 병원, 도서관 등 한글이 보여서 반가웠는데 곳곳에 한국인들의 선행이 느껴진다. 조그만 애들이 재잘거리며 줄지어 학교에 가는 모습도 보이고, 수원시에서 협찬한 ‘수원학교’ 간판도 훌쩍 지나간다.

비가 와서 호숫가 집집마다 물이 넘치면 고무보트가 있어서 그대로 옮겨 타고 별 걱정 없이 낙천적으로 살아간다. 물이 들어오면 호수가 되고 물이 빠지면 밭이 되는 그야말로 오토매틱 자연이다.

톤레삽 호수 선착장에 버스가 도착했다. 3백만 명이 모여 사는 이곳은 세계 3대 호수이며 최고의 어획량을 자랑하는데 배가 지나가면 물고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선착장에서 30여분간 녹물이 뚝뚝 떨어지는 철선을 타고 가는 동안 5∼6세 정도의 아이가 내 등을 토닥토닥 안마해주며 ‘원달라’를 요구한다. 잠시 후 또 다른 관광객의 등에 붙어 안마를 하며 열심히 비즈니스를 한다.

우리 일행들은 2인용 작은 카누로 옮겨 타고 맹그로브 숲이 있는 호수로 노를 저어 갔다. 나는 물속에 나무가 썩지 않고 살고 있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정글 카누 투어는 아마존 강과 제일 유사한 한 곳이라고 한다. 수백 년을 자란 맹그로브 나무 근처에는 선상족들이 살고 있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과거사로 인해 좋은 감정이 아니다. 선상족들은 훈센 총리에게 쫓겨난 베트남인으로 국적도 없이 쓰러져가는 나무집에서 시뻘건 황토물을 식수로 음용하며 200여종의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고 있다. 이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면서 육지에 내려다 놓으면 멀미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곳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캄보디아 내에서도 1순위라고 한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의 가치 기준은 무엇일까? 스스로 삶에서 만족 없이 욕심이 과해서 불행해지는 것은 아닐까. 나름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곳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고 나의 행복지수는 과연 얼마일까 자문해 보았다.

내가 그들을 불행하게 보는 것은 내 관점일 뿐이다. 내가 상대를 보고 판단하는 것, 상대가 나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남이 봐주는 허영도 행복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우리네도 많다. 진정한 행복은 겉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실종된 정의를 찾기 위해 매주 토요일이면 금남로에 촛불을 들고 모이는 광주시민들이 새해에는 행복해졌으면 한다.



*최재영

-조선대 미술대학 회화과, 윔블던 아트칼리지(아트런던 UNIV.) 졸업.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런던, 버지니아 등 개인전 22회

-한국미술대전·경기미술대전·광주시미술대전·전남미술대전, 전국무등미술대전 등 심사·운영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