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다니는 여행을 꼬집어 말하자면 뭐랄까. 준 배낭여행? 패키지의 편안한 형태와 일반 패키지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자유로운 여행의 형태를 조금 결합했다고나 할까. 뭐 그런 식입니다.

사실 배낭여행의 참 맛은 어느 지역으로 갈 것인지 대략 결정 한 다음, 편도 비행기 표 한 장 딱 준비해서 그냥 날아가는 거죠. 뒷생각 같은 거, 염려, 불안 다 버리고 말입니다.

일단 도착하면 방 잡고 짐 풀고 간단한 가방 하나 꺼내 들고, 편안하게 골목들을 어슬렁거리며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지도를 한 장 구합니다.

그리곤 동네 시장을 찾아가서 쭈빗쭈빗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틈에 섞여 그곳 사람들이 많이 먹는 음식과 더불어 맥주도 한 병 시켜서 느긋한 폼으로 먹고 마시며, ‘자 이제 어디로 갈까’ 지도 펼쳐두고 연구해 보는 재미가 최고긴 한데요.

혼자서는 조금 심심하거나 외로울 수도 있으니까 여행동반자 한 둘 같이 하면 더욱 좋겠지요.

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계획도 세우지 않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아주 오래 전 40명이 넘는 대규모 여행단을 이끌고 북인도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현지 여행사에 연락해 사전 계획을 세우고 예약을 해두거나 하면 좋을텐데 그 땐 아니었죠. 마치 몇몇이서 배낭여행 가는 것처럼 무작정 비행기 비행기를 탔지요.

사람 수가 너무 많은지라 어찌어찌 첫날 묵을 호텔만 예약을 하고 갔는데 픽업해 줄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지겹고 길더군요.

비행기는 새벽녘에 도착했고 공항을 마치고 빠져나와 희미한 가로등 아래 겁먹은 강아지 새끼들 마냥 잔뜩 웅크린 채로 컴컴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지인들이 하나 둘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겁니다. 운전기사인지 짐꾼인지 사람들은 왜 죄다 얼굴들이 새까만지. ‘이’라도 살고 있을 거 같은 멋대로 자란 수염, 부리부리한 눈으로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얼굴들은 너무도 무섭더라고요.

나도 무서웠는데 다른 일행들, 하물며 여자분들은 오죽 했겠어요. 게다가 새벽녘이라 춥기도 했겠지만 캄캄한 곳에서 하이에나처럼 안광을 번득이며 우리들을 노려보는 거 같아 두려움에 서로 붙어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툭 치면서 건드는 겁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면 한 번도 세탁을 해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때꼬장으로 번들번들한 옷을 입고 한 쪽 팔이 없는 채로 콧물이 덕지덕지 붙은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또 다리가 하나 없는 사람, 양 팔이 아예 없는 사람, 한쪽 눈알이 툭 불거져 거의 빠져 나오기 직전인 사람 등등 별별 해괴한 모양새인 사람들이 구걸, 적선을 원하며 턱을 들이미는데 기겁을 하며 자지러지는 거지요.

심장이 약한 사람은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한다더군요.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모한 여행이었어요.

물론 지금은 그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 가지도 않고 사전에 모든 걸 다 준비해기 때문에 패키지처럼 아주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게 한답니다. 세상이 참 좋아졌어요. 여행이 편리, 편안해 진 것이죠. 하지만 모험이 사라진 건 조금 아쉽습니다. 위험이라 함은 여행의 맛 요소에서 아주 중요한 즐거움(?)이기도 하거든요.

한 둘이서 가는 여행도 변수가 아주 많아요. 비 때문에 길이 끊겨 버스에서 날밤을 새거나, 캄캄한 시골길을 걷다 민가에 양해를 구하고 잠을 자는 경우가 생기죠.

가끔 사람들이 물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오지를 어떻게 다니느냐고.

하하 나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거든요. 물론 요즘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어지간한 내용은 동시통역으로 소통이 가능해지기도 했지만 그런 게 없었던 시기에 어떻게 했겠어요?

바로 상형문자! 늘 가지고 다니는 스케치도구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 소통을 하는 것이지요. 이건 화가만의 노하우, 자동열쇠 언어이겠죠. 화가란 하나의 자동소통 언어를 더 가진 족속이에요.

오래 전 여행 때 생닭을 구해 백숙을 한번 끓이려는데 별의 별 몸짓발짓 다 해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그림을 그렸더니 박장대소 손뼉을 치며 재밌어하면서 친절하게 닭 파는 곳까지 데려다 주더군요. 마늘이 필요하면 마늘을 그리면 되고, 커다란 솥이 필요하면 솥을 그리면 되고.

때때로 나는, 내 인생 여행을 잘 하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 봐요. 잘 계획하고 준비해서 원했던 곳을 별 차질 없이 여행하고 있는지를 말이죠.

나와 같이 여행을 시작했던 여러 친구들 중 몇몇은 계획을 잘 세워 원했던 직장을 갖게 된 친구도 있고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글로벌 작가가 돼 있기도 하죠.

그에 반해 난, 딱 비행기표 한 장 구해서 그날그날 계획을 세워 떠도는 그저 그런 인생 여행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자유롭긴 했죠 뭐.

이런 아쉬움 저런 후회들을 뒤로 하고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또 다시 크고 작은 계획을 세우곤 하지요. 나 역시도 아직 남은 여행을 위해서 좀 더 세세한 계획을 세워 실수 없이 여행을 하고자 한답니다.

편안하고 좋은 곳이든 오지든 배낭을 들고 떠난 여행은 언제든지 돌아 올 수 있는 집이 있어 좋은 건데요. 그러나 인생 여행은 한 번 간 길을 다시 되돌아오지 못 하거든요. 여행을 끝내며 참 좋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좀 더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야겠지요? 나이가 들고, 해가 갈수록 마지막 여행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여행의 종국은 또 다른 여행이지 쉼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답니다. 사실 여행은 그 자체가 쉼이지요. 멋진 여행, 멋진 모험, 그리고 쉼을 위해 큰 숨쉬기를 해봅니다.





*김해성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

-쾰른아트페어, All About Ko rea(White Box, Munich, Germany)등 단체전 500여회

-조선대 평생교육원 전담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 선과 색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