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처럼 느껴지는 금요일,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듯 분주히 터미널로 들어가 이내 빨간색 버스로 어디론가 사라진다.

버스 하나를 골라서 남쪽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맑은 시골 내음과 서로 봐 달라고 아우성치는 꽃들의 반김으로 눈이 즐거웠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장흥 읍사무소 앞 칠거리였다.

문학과 미술의 만남이 오늘 여행의 주된 테마이다. 알다시피 장흥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문학가들을 배출한 고장이자 산실이고 1번지이다. 문기(文氣)어린 고장의 문학인과 전국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그들의 삶과 현장을 같이 돌고 소통하며 그림으로 표현하는 전시기획이다.

한번 들으면 익히 알 수 있는 장흥 출신 유명 문학인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을 한다니 ‘이런 호강이 다 있나’ 생각했다.

탐진강을 따라 작고하신 이청준 선생님의 묘지와 생가 등을 들러보고 서편제 현장에도 가보았다. 한승원 선생님의 생가와 기념비 그리고 어린 시절의 삶과 추억 등이 있는 곳을 지나가며 예술의 발상과 근원 등을 가슴으로 조심스레 담았다.

깔끔한 옷맵시가 돋보이는 이승우 선생님은 조용하고 조심스런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타 지역에 사시지만 태어난 곳이 바닷가라고 한다. 집 앞에 작은 가슴앓이 섬이 있는데 그 섬에 관심과 애착이 많아서 언젠가는 소설 속에서 빛을 내지 않을까 하고 말씀하신다. 아주 작은 섬인데도 이름과 전설까지 있다하니 이곳에선 명물에 속하는 듯하다.

장흥군 끝자락에 위치한 회진면을 지나가다가 회덕중학교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장흥 출신 문학인의 인물도와 함께 대표작들이 그려져 있었다. 문학의 고장답게 벽화 역시 의미있고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군으로 향했다.

위선환 선생님은 특별히 탐진강에 관한 시를 많이 썼다. 많은 시간을 장흥읍 옆을 휘도는 탐진강에서 보내며 시의 원동력과 발상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그곳에서 잠깐 휴식 겸 화가들의 스케치가 진행됐는데 작은 스케치북에 각기 다양한 개성적 표현으로 장흥의 명소와 기운을 음미 중이었다.

이대흠 선생님은 나와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이곳에서 다시 만나니 기쁨이 두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문학모임의 막내나 다름없어 모든 행사에 앞장섰다. 친절한 설명과 관심어린 행동으로 이번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고맙고 반가운 작가일 것이다.

동백정은 수많은 동백꽃과 오래된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동산인데 앞으로 강이 강단있게 흐르고 있어서 운치가 그만인 정자이다. 그곳을 지나면 만수리가 나오는데 이대흠 선생님의 고향이다. 특별히 내 이름과 비슷해 기억이 남는 고향 이름이었다.

마지막 참여 문학인은 김영남 선생님인데 나와 같은 조였다.

이 분은 일단 입담이 무척 구수해서 한번 듣기 시작하면 이야기 속으로 쉬 빠져들어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서사적 위트와 감각적 유머 그리고 19금을 잘 혼합해 절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마치 미로에 깊이 갇혀 형언하기 어려운 혼란을 주는 것 처럼 느껴졌다.

문학의 원천은 어머니라고 말씀하시며 그래서 탄생한 시 가 ‘아줌마라는 말은’이란 작품이란다.

시의 내용은 저작권이 있으니 간단히 몇 줄 소개하고 책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읽어보길 권해본다.



일단 무겁고 뚱뚱하게 들린다.

아무 옷이나 색깔이 잘 어울리고

치마에 밥풀이 묻어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은 낯설어하지만

골목에서 아이들이 아줌마 하고 부르면

낯익은 얼굴이 뒤돌아본다. 그런 얼굴들이

(중략)

우리 집에서도 아버지가 그렇게 두드린 적 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한번도 터지지 않았다.

아무리 두들겨도 이 세상까지 모두 흡수 해 버리는

포용력 큰 불발탄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들었는데 그게 더욱 인상적으로 남아 비화에 집중해 작업하고 전시를 했다.

시의 탄생 비화를 소개하자면 아버지의 바람에 화가 난 어머니께선 상대방 여인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동네 근처 논두렁으로 밤에 불러냈다. 덩치가 큰 그 여인을 상대하기 힘들어서 친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숨어 있다가 그 여인이 나타나자 숨겨 가지고 온 고춧가루를 얼굴에 뿌려서 혼내줬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내용을 얼마나 맛깔스럽게 말씀하시는지 이 내용을 작품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배기기 힘들었다.

여행의 별미와 마무리는 결국 술이 아닌가. 2박3일간 밤만 되면 술통에 빠졌다가 아침에 다시 회복하고 다시 빠지는 나날이었다. 남도의 밤은 그렇게 아스라한 별구경과 밤바다 그리고 술잔 속으로 돌진했다.



* 박수만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서양화전공 졸업

-개인전 17회, 2016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빛.생명.물질’ 등 다수 단체기획전 참여

-2002년 신세계미술제 대상, 2007년오지호미술 특별상, 중국 북경창작스튜디오 2기 입주작가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