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시간.

화실 천장 누수로 정전돼 모든 화구들이 암흑 속으로 꽁꽁 숨어 버린 지 3일째. 건물주인 친구와 상의했더니 천정을 다 뜯어내고 전기 배선 공사도 새로 해야 된다고 하니 암담했다. 이래저래 보름 정도는 꼼짝 못하게 생겼다.

곧 있을 광주아트페어와 비엔날레특별전, 10월 개인전을 앞두고 가뜩이나 바쁜 시점에서 뭐하나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머리가 돌 지경이다.

이럴 땐 문득 어디론가 여행이나 다녀오는 게 상책이다 싶었다. 여건상 해외여행은 어렵고, 내가 평소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인 경남 통영(충무)이 떠올랐다.

언젠가 TV방송에서 아름다운 다도 해안의 맑고 깨끗한 바닷물이 어우러진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며, 식도락을 채워줄 다양한 해산물들을 소개한 걸 본 적 있었다.

어차피 시간을 때워야하는 상황이라 바람도 쐬고, 더위에 지친 몸보신도 하고 오자는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초행길인 관계로 컴퓨터에서 통영에 대한 정보검색도 하고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8시30분에 출발해 2시간20분에 걸쳐 중앙시장 근처 공용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른 점심을 해결 하기 위해 어젯밤 점지해 놓은 시장 안 횟집을 찾았다. 이름도 모르는 다양한 횟감들이 수족관과 대야 안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투박스런 통영 사투리의 생선 파는 아주머니께 여름철 대표 생선인 농어와 광어 그리고 멍게 비빔밥을 푸짐하게 시켜먹었다. 가격 대비 싱싱하고 맛있는 식사에 흡족했다.

통영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굴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대표적인 굴 생산지이기도 하지만 충무김밥도 유명하다. 배 시간에 쫓겨, 제대로 차려진 밥상은 꿈도 못 꾸던 뱃사람들의 한 끼를 든든하게 채워주던 충무김밥은 쉽게 상하지 않으면서도,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간편식으로 완벽한 조합을 자랑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먹기 위해서도 통영을 온다고 하니 나는 온 김에 일석이조.

식사 후 왼쪽 언덕에 있는 동피랑 마을에 올랐다. 이곳은 바닷가 언덕 마을의 담과 벽, 길 등에 온통 그림을 그려 새롭게 태어난 곳으로, 전국적 유명세에 힘입어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여러 갈래 골목길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전문가가 보기엔 엉성한 그림들이지만 키치(kitsch)적인 소박한 맛과 어울려 하늘과 맞닿은 마을들이 마치 동화나라에 온 것 같았다.

예쁜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스케치 한 점을 그렸다.

뜨거운 햇볕이 숨골을 짓누르는 한낮. 동피랑을 내려와서 거북선이 정박해 있는 작은 광장인 ‘문화마당’을 산책을 했다. 이순신장군의 혼이 서린 거북선 3척이 정박에 있는데 승선해서 옛날 수군들의 생활상을 살펴봤다. 장수 복장을 하고 셀카 한컷.

맞은편 언덕에 보이는 ‘남망산 공원’으로 가서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어선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곳은 통영 시민의 오래된 휴식처이자 통영 문화와 역사가 살아있는 장소라고 한다.

내려다보는 해안 포구는 상상했던 것 보다 크고 현대화 돼 있다. 주변 섬들이 둘러 모여 포구를 만들고 그 안으로 크고 작은 배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통영은 역사·문화적으로도 유명하며, 매년 가을에는 다양한 문화예술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생각했던 것 보다 직접 와보니 ‘통영’은 볼거리, 먹거리, 역사가 함께 어울려진 매력적인 곳이다.

빡빡한 도시생활 속 우연이든 필연이든 삶의 현장에서 훌쩍 떠날 기회가 찾아온다면 놓치지 말고 이곳 여름바다의 향기를 지인들과 함께 나누길 권하고 싶다.



* 최재영화가 프로필

-조선대 미술대학 회화과, 윔블던 아트칼리지(아트런던 UNIV.) 졸업.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런던, 버지니아 등 개인전 22회

-한국미술대전·경기미술대전·광주시미술대전·전남미술대전, 전국무등미술대전 등 심사·운영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