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 무안- 전현숙
2016년 08월 04일(목) 00:00 가가
나도 환기가 필요해
톱머리해수욕장 나무 그늘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
문득 생각나 찾아가게 된 바다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흔한 파도의 일렁임도 없었다.
뭐든지 고이면 썩는 법이다. 공기조차도 계속 고여 있으면 불쾌하다. 때문에 우리는 매일매일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심지어 한겨울에도.
사람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한 공간에 오랜 시간 머문다면 지친다. 나도 그랬다. 그 어느 공간보다 마냥 작업실이 편하고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들이 좋지만 요즘 개인전 준비로 매일 늦은 밤까지 있다 보니 결국 지쳤다. 노을이 지는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내방처럼 나도 환기가 필요했다.
개인전을 하기에 앞서 전시 공간 체크를 핑계로 무안군 오승우미술관에는 잠시 들렸다가 근처에 있는 바다로 냅다 도망치듯 달려왔다.
사실, 개인적으로 여름바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바다는, 겨울이 좋다.
일단 여름에는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모래사장에서 올라오는 뜨거움과 끈적거리는 바람이 싫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슴이 꽉 막히고 머릿 속이 복잡하면, 끊임없이 펼쳐지는 수평선 너머로 마음의 짐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라면, 온바다를 붉은 황금빛으로 감싸 안은 노을을 보고 싶다면, 어쩌랴. 싫어하는 여름 바다라도 가야지. 그럴때면 가끔 이렇게 톱머리 해수욕장과 조금나루를 찾는다. 광주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가깝고 넓은 백사장 뒤로 곰솔이 숲을 이뤄 해변 경치가 좋고 노을이 아름답다.
미술관장님의 추천으로 처음 가보는 홀통 유원지를 거쳐 톱머리 해수욕장으로 왔다. 바다모양이 톱과 비슷하다하여 ‘톱머리’라 부른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톱 모양인지 헷갈린다. 톱머리 해수욕장과 조금나루,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홀통 유원지. 이 세곳은 서해안 특성상 워낙 조수간만 차가 심해서 간조 때 드러나는 넓은 뻘밭과 그 일대에 보호림으로 지정된 곰솔 방풍림이 조화로운 아름다운 곳이다.
물이 얕아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어 좋고 썰물 때는 갯벌에 바닷게며 고동들도 많아서 아이들 놀잇감이 하나 더 생긴 것은 확실하다. 영광군, 무안군, 함평군 3군에 둘러싸인 홀통 유원지에서는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몇몇 볼 수 있었다. 해수찜을 즐길 수도 있단다.
‘톱머리’라는 소박한 이름만으로도 좋고, 본격적인 피서철이지만 걱정했던 만큼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아 좋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다. 빼곡이 들어선 해송 밑을 그늘 삼아 그 사이로 옹기종기 텐트들이 즐비하다. 어른들은 그늘막이나 텐트 속에서 낮잠을 즐기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소나무 사이 해먹도 걸어놓고 더위를 식힌다. 아이들은 무엇을 잡는지 갯벌에서 열중하고 있다. 가만히 처다 보니 고동을 줍거나 바닷게를 잡느라 바쁘다. 어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모래놀이에 빠져있다. 날도 덥고 말 그대로 폭염날씨다. 이 뙤약볕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더위에 얼굴에는 홍조를 띄우고 땀과 갯벌이 범벅인 얼굴로 즐거워 웃는 아이들이 마냥 이쁘다. 나도 저만큼 아이였을 때가 있었는데…. 이런 여름날이면 동구 밖 큰 개울가에 나가 송사리며 가재를 잡기도 했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놀이에 빠져있다보면 해질녘이 다되곤 했다. 엄마에게 혼날 걱정에 자갈 위에 젖은 옷가지 말려 입고 감쪽같이 집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아셨는지. ‘깊은 물에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걱정했다’며 많이도 혼났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통해 그 시절 나를 추억해 본다.
피부가 따갑다. 나는 시원한 소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의 모래사장과 바다를 바라본다. 썰물로 인해 바다가 멀리에 있다. 조각배도 갯벌 위에 잠시 쉬고 있다. 지금은 썰물 때지만 밀물로 만조가 됐을 땐 섬으로 둘러싸인 호수로 변할 듯하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갯내음이 비릿하다. 이곳에 앉아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세월이 가는지 마는지 바닷물이 들어오든 말든 낮잠 한숨 자고 싶어진다. 졸음이 밀려와 한숨 자고 났더니 그냥 걷고 싶다.
바닷물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고 여유 있게 걷고 싶다면 지금처럼 썰물 때가 좋다. 뜨거운 태양을 등에 지고 오랜만에 백사장을 걸었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수평선과 수직선의 교차가 있고,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 있고 버려지는 것들이 공존한다. 그것들을 인식하며 걷는 내 모습도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일상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작은 일에도 웃음이 난다. 미운사람도 이뻐 보인다. 드넓은 바다는 나의 작은 고민 같은 건 어찌되어도 좋다는 듯 했고 나도 그 순간만큼은 간만에 “바닷물에 신발을 적시면 안돼“ 같은 가벼운 걱정 외에는 고민을 떨쳐버린다.
해질녘이 가까워지자 조금나루로 달렸다. 2년전 서울에서 내려온 지인들과 같이 보았던 노을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망졸망 섬들이 많은 서해의 해질녘이다.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고,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섬들을 붉게 물들여서, 하늘땅 그리고 바다가 붉게 물드는 곳. 낮과 밤이 바뀌는 그 묘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일몰을 본다. 그리고 노을 지는 바다를 한참동안 눈에 담는다. 바다는 점점 붉어오는 시간 속으로 잠긴다. 해가 지는 바다는 매우 고요하다.
*전현숙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서양화 전공 졸업.
-개인전 12회. 2010 부산비엔날레 ‘NOW! ASIAN ARTISTS’전 등 다수 단체·기획전.
-2008 신세계미술제 수상. 광주시립미술관 중국 북경 창작스튜디오 1기 입주작가.
뭐든지 고이면 썩는 법이다. 공기조차도 계속 고여 있으면 불쾌하다. 때문에 우리는 매일매일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심지어 한겨울에도.
사람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한 공간에 오랜 시간 머문다면 지친다. 나도 그랬다. 그 어느 공간보다 마냥 작업실이 편하고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들이 좋지만 요즘 개인전 준비로 매일 늦은 밤까지 있다 보니 결국 지쳤다. 노을이 지는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내방처럼 나도 환기가 필요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여름바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바다는, 겨울이 좋다.
일단 여름에는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모래사장에서 올라오는 뜨거움과 끈적거리는 바람이 싫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슴이 꽉 막히고 머릿 속이 복잡하면, 끊임없이 펼쳐지는 수평선 너머로 마음의 짐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라면, 온바다를 붉은 황금빛으로 감싸 안은 노을을 보고 싶다면, 어쩌랴. 싫어하는 여름 바다라도 가야지. 그럴때면 가끔 이렇게 톱머리 해수욕장과 조금나루를 찾는다. 광주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가깝고 넓은 백사장 뒤로 곰솔이 숲을 이뤄 해변 경치가 좋고 노을이 아름답다.
‘톱머리’라는 소박한 이름만으로도 좋고, 본격적인 피서철이지만 걱정했던 만큼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아 좋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다. 빼곡이 들어선 해송 밑을 그늘 삼아 그 사이로 옹기종기 텐트들이 즐비하다. 어른들은 그늘막이나 텐트 속에서 낮잠을 즐기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소나무 사이 해먹도 걸어놓고 더위를 식힌다. 아이들은 무엇을 잡는지 갯벌에서 열중하고 있다. 가만히 처다 보니 고동을 줍거나 바닷게를 잡느라 바쁘다. 어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모래놀이에 빠져있다. 날도 덥고 말 그대로 폭염날씨다. 이 뙤약볕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더위에 얼굴에는 홍조를 띄우고 땀과 갯벌이 범벅인 얼굴로 즐거워 웃는 아이들이 마냥 이쁘다. 나도 저만큼 아이였을 때가 있었는데…. 이런 여름날이면 동구 밖 큰 개울가에 나가 송사리며 가재를 잡기도 했다.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놀이에 빠져있다보면 해질녘이 다되곤 했다. 엄마에게 혼날 걱정에 자갈 위에 젖은 옷가지 말려 입고 감쪽같이 집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아셨는지. ‘깊은 물에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걱정했다’며 많이도 혼났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통해 그 시절 나를 추억해 본다.
피부가 따갑다. 나는 시원한 소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의 모래사장과 바다를 바라본다. 썰물로 인해 바다가 멀리에 있다. 조각배도 갯벌 위에 잠시 쉬고 있다. 지금은 썰물 때지만 밀물로 만조가 됐을 땐 섬으로 둘러싸인 호수로 변할 듯하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갯내음이 비릿하다. 이곳에 앉아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맞으며 세월이 가는지 마는지 바닷물이 들어오든 말든 낮잠 한숨 자고 싶어진다. 졸음이 밀려와 한숨 자고 났더니 그냥 걷고 싶다.
바닷물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고 여유 있게 걷고 싶다면 지금처럼 썰물 때가 좋다. 뜨거운 태양을 등에 지고 오랜만에 백사장을 걸었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수평선과 수직선의 교차가 있고,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 있고 버려지는 것들이 공존한다. 그것들을 인식하며 걷는 내 모습도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일상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작은 일에도 웃음이 난다. 미운사람도 이뻐 보인다. 드넓은 바다는 나의 작은 고민 같은 건 어찌되어도 좋다는 듯 했고 나도 그 순간만큼은 간만에 “바닷물에 신발을 적시면 안돼“ 같은 가벼운 걱정 외에는 고민을 떨쳐버린다.
해질녘이 가까워지자 조금나루로 달렸다. 2년전 서울에서 내려온 지인들과 같이 보았던 노을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망졸망 섬들이 많은 서해의 해질녘이다.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고,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섬들을 붉게 물들여서, 하늘땅 그리고 바다가 붉게 물드는 곳. 낮과 밤이 바뀌는 그 묘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하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일몰을 본다. 그리고 노을 지는 바다를 한참동안 눈에 담는다. 바다는 점점 붉어오는 시간 속으로 잠긴다. 해가 지는 바다는 매우 고요하다.
*전현숙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 서양화 전공 졸업.
-개인전 12회. 2010 부산비엔날레 ‘NOW! ASIAN ARTISTS’전 등 다수 단체·기획전.
-2008 신세계미술제 수상. 광주시립미술관 중국 북경 창작스튜디오 1기 입주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