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은 항상 나를 설레게 한다. 한 두번 가본 것도 아닌데 만날 때마다 다른 분위기와 즐거움을 연출해주는 멋진 여자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랄까? 원초적인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제주만의 자연도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모던한 주택과 건물들로 인해 자본의 범주에서 피해 갈 수 없음을 아쉬움으로 남기곤 한다. 그래도 오름과 이름 모를 오래된 숲들은 비교적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아 행복하다.

제주가 가진 여러 유명한 관광지 중 오름은 가장 원초적인 자연미가 많이 남아 있어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오름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그 수도 무려 360개 이상이나 형성돼 있다고 한다. 제주 사람들은 오랜 기간 오름 기슭에 터를 잡고 화전을 일구고 밭농사를 지었으며 목축을 했다. 가옥의 초가지붕을 덮었던 띠와 새를 구할 수 있었던 곳도 오름이어서 오름을 중심으로 많은 촌락이 형성됐다.

오름은 내륙으로 비유하자면 지리산에 가깝다. 편한 것 같지만 무겁고, 화려함 보다는 속 깊고 오랜 기간 봐야 맛을 알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오름에 많은 의지를 했다.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는 전략의 중요한 장소여서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린 곳이다.

4·3 사건 때는 민중 봉기 근거지이자 은신처로 사용해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된 비극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오름 곳곳에는 제사를 지내던 터와 사당의 흔적을 간간이 볼 수 있는데 요즘 말로 쉬운 자연이라는 이야기다. 이것 저것 다 받아주다 보니 한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많은 셈이지만 제주 사람들에게 편한 자연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제주 친구에게 오름이 좋다고 했더니 친구도 오름이 좋단다. 오르기도 편하고 거부감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제주도는 3개 지역으로 나눠진다. 제일 위에는 한라산, 중턱부터는 오름, 다음은 바다다. 오름이 제주도를 다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론이 있을 수 있으나 밭도 논도 거의 오름을 개발해 만든 게 대부분이니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바다를 따라 해안도로가 잘 구성돼 있다. 바다에서 바로 인접한 곳엔 좋은 집들과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어 낡은 옛집들은 많지 않다. 새로 지은 집들의 디자인이 대부분 제주의 분위기에 잘 맞는 것 같아서 그래도 다행스럽다. 지금은 바다에 인접한 땅이나 집들이 비싸다. 하지만 약 20년 전 만해도 해풍과 소금기가 많아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거주도 힘들어 헐값에 구매가 가능했다고 한다. 조건이 맞으면 나중에 작업실을 마련해 볼까하고 가격들을 물어봤지만 엄두도 못냈다. 연예인들이 많이 들어온 뒤 중국인들이 대규모로 투자하는 바람에 땅값이 폭등했다고 한다.

유명하고 언론에 자주 소개된 음식점은 깨끗하기는 하지만 비싸고 맛이 없다. 그래서 주민들이 이용하는 허름한 음식점을 찾았다. 가격도 착하고 맛도 일품이었다. 비결을 물어보니 식당 옆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직접 잡아오거나, 인근 어시장에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고기들을 가져와 냉장을 하지 않고 바로 음식을 하기 때문이란다.

우리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상품성 있는 고기들은 화려하지만 냉동과 해동을 거치다 보면 원래 맛이 떨어져 많은 조미료를 넣어야한다. 이에 비해 상품성은 떨어지지만 신선한 고기들은 소금간만 해도 맛이 좋으니 후자가 훨씬 매력적이다.

3일 정도 지내다 보면 거의 하루 정도는 비가 온다. 또 바람이 많이 불고 습도도 높다. 일탈을 꿈꾸는 나에게는 고립돼 있다는 강박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다양성이 있고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곳이다. 또 오고 싶다.



*백준선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12회, 아트페어 등 그룹전 및 기획전 350여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2회, 광주시전, 무등미술대전 대상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30여회 심사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