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를 만난다.

오랜만에 떠나는 남해로의 캠핑 여행이 기대반 설렘 반이다. 남해대교를 건너 울창한 가로수길이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오랜만에 와보는 남해는 여기저기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는 아련한 낭만을 주었는데 오래된 구수한 풍경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캠핑할 즐거움을 망치기는 했지만 독일마을 아래 물건리에서 텐트를 친다. 친구 가족과 같이 온 터라 당일은 준비하고 오랜만에 회포를 풀겸 준비한 음식에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얘기들을 주고 받는다.

새벽부터 몰아친 비바람에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독일마을로 향했다. 연휴 기간이어서 그런지 아침부터 수많은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밀린 차량에 긴 시간이 흐른뒤에야 마을 산책에 나설 수 있었다.

독일 마을은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를 하다 은퇴한 교포들을 위해 군이 삼동면 물건리에 독일풍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교포들은 독일에서 건축자재를 들여와 독일건축 양식으로 빨간 지붕에 하얀 벽으로 된 주택을 지었다. 물건항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적지 않은 가구가 있으며 지금도 공사 중인 건물이 몇 채가 보인다.

이국적인 풍경에 사람들이 많이 찿는 남해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으나 현지 주민들은 생존권 보장이라는 띠를 두르고 밝지 않은 표정들이다. 하긴 동네에 밀려드는 차량으로 마음대로 외출하기도 어렵고 집에서 생활하기도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장통처럼 시끄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마을 뒤쪽에는 지난해 6월 문을 연 남해파독전시관이 있다.

바로 옆에는 원예예술촌이 있는데 원예전문가 20여명이 집과 정원을 개별적 작품으로 조성해 이룬 마을이다. 아름다운 유럽풍의 집들을 전시해 놓은 것처럼 꾸며져 있으며, 조각정원, 풀꽃지붕 등 이미지와 각각의 테마를 잘 살려 실제 원예인들이 가꾸며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름 모를 갖가지 화려하고 예쁜 꽃들과 나무들의 정원들로 잘 가꾸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연신 사진을 찍어대느라 바쁘다. 사이사이에 예쁜 카페와 찻집들이 있어서 쉬어가며 돌아봐도 괜찮은 장소인 것 같다.

미국마을은 새로 조성된 마을인데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미조항으로 자리를 옮긴다. 미조항은 멸치축제가 한창이라 동네가 잔치분위기였다. 여느 축제와 마찬가지로 무대공연과 주변으로 먹거리가 즐비하다. 대한민국 축제는 색깔이 없고 이름만 다른 판박이 축제라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멸치축제인 만큼 쌈밥을 먹었다. 갓 잡은 싱싱한 멸치와 양파, 풋고추, 미나리를 함께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또 초장으로 버무린 멸치회와 우거지, 통멸치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멸치탕을 곁들여 정신없이 맛있게 먹어본다.

멸치잡이를 마친 여러 척의 배에서는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멸치털이 작업을 온 힘을 다해 시연하며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햇살에 반짝거리며 하늘로 튕겨지는 멸치떼와 갈매기들의 풍경이 축제의 분위를 한층 고조시킨다.

가천 다랭이 마을로 마지막 코스를 잡는다. 다랭이 마을은 남면 홍현리 가천마을 앞 바닷가 비탈 급경사지에 계단처럼 층층이 조성된 논이다. 구불구불하게 생긴 논이 바다에 닿는 곳까지 100여층을 이룬다. 주민들이 한 뼘의 땅도 놀리지 않고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아 농사를 짓는지 보여 주는 농업 현장이다.

바닷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생긴 것으로 꼽히는 암수 미륵바위가 있으며, 다랭이논과 탁 트인 바다가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만들고 있다. 다랭이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이 된다는 건 그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주차장이 따로 없어 최대한 한적한 곳으로 차를 대고 구경을 하는 것이 좋겠다.

피곤했지만 빠듯한 일정의 여행을 마치고 지는 노을을 보며 집으로 향하는 길이 즐겁다.



*강남구

-개인전 26회, 단체·초대전 500여회

-대한민국 미술대전·광주시 미술대전 등 심사위원 역임. 현 한국미협, 한국전업작가회 회원.

-정부미술은행·국립현대미술관 아트뱅크·서울시립미술관·광주시립미술관 등 작품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