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우리 마을 건너편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주거지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물건을 아무렇게나 내 팽개쳐 놓았다. 더구나 이사를 오거나 가는 날에는 버린 물건들이 풍성하게 남아 있어서 소소하게 재미를 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후 마을엔 새로운 풍속도가 그려졌다. 필요한 물품을 당장 사는 게 아니라 거기서 주워오는 것이다. 웬만하면 사지 않고 기다려 보면 뜻밖에 횡재하는 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공짜심리란 전염되는 것 같다. 이웃들이 가져오는 물건들을 보면 구미가 돋기 때문이다. 거기에 나도 동참하기로 했다. 혼자만 고고하게 남아있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서. 그날도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한쪽구석엔 버린 물건들이 빼곡하게 쌓여있는 사이로 동그란 시계가 보였다. 초침이 돌아가지 않는 걸로 보아 고장 난 시계임이 틀림없다. 그러기에 내버렸는지도 모른다.

건전지 약통을 보아하니 약간 녹이 슬었다. 먼지 묻은 겉면을 닦았더니 영락없이 새것이다.

들고 나와 건너편에 있는 시계방에 갔다 시계방주인에게 “누가 시계를 버렸는데 쓸 만해서 주웠소, 어디가 고장 났는지 살펴보시오” 하였더니 다짜고짜로 안경너머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주운물건이나 가지고 다니는 그 몰골이 처량하게 보여서 일까” 아니면 “고칠 수도 없는 쓰레기에 가까운 물건을 들고 오는 가난뱅이 영감쯤으로 여겨서일까”

그의 어이없는 표정에 한참동안 몸 둘 바를 몰랐다. 쓰고 있던 안경을 치켜 올리면서 “지금 시계들은 소모품이어요, 그냥 몇 년 쓰면 바로 버리고 새것 삽니다.”하고 어린 꼬마들에게나 가르치는 몸짓으로 힘을 주며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 “보시오 건전지를 갈아 끼웠더니 가지 않아요” 자기 말을 증명이라도 하 듯 쑥 내 민다. 정말 새 시계처럼 재깍 재깍 잘 돌아갔다.

나는 새 시계를 얻은 기쁨보다 시계방주인의 어두운 표정에 영 마음이 걸렸다. ‘이렇게 약만 갈아 끼우면 쓸 것을 왜 버려“ 혼자서 알듯 말듯 중얼거리면서 ”요즘 세상은 다 일회용이오, 만들 때부터 그렇게 만든다요” 힘이 다 떨어진 목소리로 “세상이 다 변화하는데 나만 지키고 살순 없지요”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이제 삼십 년 동안 지탱해온 시계방을 때려 치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소, 예전사람들은 고쳐 쓰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요즘사람들은 그냥 쓰고 내 팽개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아무 미련없이 헤어져요“ 사람도 물건도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는 것 같았다.

제법 어느 철학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를 듣는 것 같다. 그도 삼십년의 직업전선에서 살다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으리라.

그의 거슬릴 수 없는 심란한 마음에 공감하면서 시계방을 나왔다.

옛 사람들은 물품을 쓰는 것도 중요시 했지만 버리는 것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는 물을 쓰고 버리더라도 용도에 따라 썼다. 깨진 항아리에 쌀을 씻고 난 그 물을 모아 놓았다가 얼굴을 씻거나 행주를 빨았다. 다시 그물을 모았다가 발을 씻거나 걸레를 빨았다. 그렇게 씻은 물도 버리지 않고 모았다가 텃밭에 뿌리거나 마당에 뿌렸다.. 이처럼 철저하게 물은 소비되지만 다시 재생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가정에서의 쓰레기는 남의 집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곳에 묻었다. 자기 집에서 먹는 음식물도 남으면 서로 나누어 먹었다. 길거리에서 먹는 행위는 염치없는 사람으로 여겼고 특히 야외에서 먹을 때는 행위자체를 감추면서 먹었다. 가뭄이 들어 공동샘물도 필요이상은 길러가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배려였다.

시계수리업이 퇴장하는 것은 어쩜 시대변천에 따른 것이다. 내가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계방 주인의 마음속에 품은 아쉬운 마음이 현실화 되어가는 오늘 날의 행태가 두려워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