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된 시계 수리점 취재를 며칠 앞둔 날, 손목시계가 딱 멈췄다. 건전지도 교체할 겸 일정을 당겨 가게를 찾았다. 언젠가 지인이 말했었다. “난 이 영감님 돌아가시면 어디서 시계를 고쳐야 될 지 모르겠어요. 정말 조그마한 가게인데 참 열심히 하셔요.”

광주시 동구 장동 아시아문화전당 맞은편에 위치한 ‘용문당’이다. 가게 앞을 수도 없이 지나 다녔을텐데 왜 몰랐을까. 낡은 간판이 걸린 가게 겉모습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가게는 정말 작았다. 밖에서 내 보폭으로 걸어보니 겨우 다섯 걸음이다.

내 인생 첫번째 시계는 빨간 줄의 톰과 제리 만화시계였다. 이후 시계는 항상 나와 함께였다. 오랜 기간 학교 졸업·입학 선물로 인기가 많았던 것도 시계였다. 요즘엔 시계를 수리해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시계줄을 갈거나, 건전지를 교체할 때나 들르는 곳이 시계방이다.

문을 밀고 들어서니 주인 신영태(79)씨가 벽시계 수리에 한창이다. 4평 짜리 가게는 빈틈이 없다. 수천개의 시계가 놓여있는 진열장, 수리를 하는 작업대, 빼곡이 걸린 벽시계, 여기에 한 때 안경점을 했던 터라 각종 안경과 만보기 등 잡화까지 자리한 공간은 정신이 없었다.

우선 시계약부터 넣어달라고 했다. 그는 안경을 쓴 위에 돋보기 안경을 쓰고 그 위에 ‘기스미’라 불리는 시계 수리용 렌즈를 다시 얹은 후 작업을 시작했다. 기스미는 그와 50년을 함께 해온 물건이다.

시계약을 바꾼 신 씨는 분리한 뚜껑 안쪽에 볼펜으로 날짜를 적었다. “어, 그건 왜 그러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건전지 바꾸러 올 때면 ‘시계 약 간 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 닳아졌네요’ 하거든. 손님들과 신용을 위해 꼭 교체한 날짜를 적어둬. 괜한 오해 받기고 싫고.”

신씨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시계약을 교체하러 갈 때마다 딱 내가 하는 말이어서다.

‘용문당’으로 영업 허가를 받은 건 지난 1965년이다. 친구 시계방에 자주 놀러다디던 그는 어느날 점포를 내놓는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에게 부탁해 아예 기술자까지 인수받았다. 시계 문외한이었던 그가 가게를 운영하는 건 힘들었다. 기술자들 때문이었다.

“술도 받아 주고, 돈도 쥐어주고 부모님보다 더 잘 모셨제. 손님은 오는데 출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 사정도 하고, 화도 냈지만 답이 없어. 간이 녹아내릴 지경이었어. 눈에서 눈물이 아니라 피가 나온다니까.”

결국 “내 손으로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주우체국앞 아리랑시계방에서 기술을 배웠다. 그게 30대 초반이었다. 집중력이 강하고, 무슨 일에 빠지면 옆도 안쳐다보는 성격 덕에 그는 기술을 빠르게 습득했다. 롤렉스, 론진, 라도, 브로바, 세이코 등 수많은 시계가 그의 손을 거쳐 새 새명을 얻었다.

수리공을 두 명 두면서 한창 잘 나가던 사업은 기계식 대신 전자식 시계가 출시되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고육지책으로 어깨 너머 안경 공부를 한 후 7년 정도 운영했지만 전문대에 안경광학과가 생기고 전문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만두었다.

전자식 시계와 휴대폰 등장으로 시계를 수리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고, 그만큼 시계점도 사라졌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문당엔 단골 손님이 많다. 조선대, 동구청 등 가게 인근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도 다녀간다. 시계 여러개를 한꺼번에 가지고 오는 이도 있다. 그럴 땐 “살릴 건 살릴 거 죽일 건 죽여서 손님에게 전해준다”고 했다.

취재를 하던 중 30대 초반 여성이 가게를 찾았다. 의외다 싶었더니 인근 광주여고 졸업생이었다. 본인 시계는 건전지를 교체하고 오랫동안 죽어 있던 시계도 고친 후 만족해 돌아갔다. 동구청 직원은 시계 핀을 고치고 갔다.

시계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스위스제 골동 탁상 시계, 버려진 외국 과자 상자로 직접 만든 시계가 눈길을 끈다. 시계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장식을 뽑아내 만든 의자도 멋스럽다. “버리면 쓰레기지만, 다시 만들면 보물”이라 했다. 금색 대형 시계추는 서울 골동품 취급업자들이 만원씩에 사가곤 한다.

씨 말에 따르면 4평 공간엔 시계 5000여개가 있다. 진열장 안에 놓여 있는 건 모두 새 시계다. 각종 상자 속에는 중고 시계가 한 가득이다. 전당포에서 넘어온 시계들이다. 전당포 물품은 6개월간 찾아가지 않으면 처분할 수 있단다. 시계 중간상(나까마)이 100여개 전당포를 돌며 수집한 시계를 한달에 한번 구입한다. 닥스, DKNY 등 브랜드 제품이 눈에 띤다. 진짜라면 700만원을 호가할 롤렉스 시계도 보인다. 구입한 시계를 다시 팔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리 할 때 워낙 다양한 부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입한다. 고장난 시계도 구입하는 이유다. 한쪽엔 시계 버클만 수천개를 모아둔 상자도 있다. 꼭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구경하다 횡재한 사람들도 많다.

“예전에는 시계방에 가면 부속을 바꿔먹는다는 말이 있었어.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야. 시계는 워낙 정교하고 예민해서 딱 제것이 아니면 안돼. 시계 고치러 온 이들과 몇마디만 나눠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어. 수리 부탁하고 나서 좁은 작업장에 딱 달라붙어 이리 저리 간섭하는 사람들이 있어. 행여 뭐 이상한 짓 하나 싶어서. 그럴 땐 내가 의심죄를 적용해버려.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다 분해하고, 괜히 오랜 시간 고쳐 수리비를 왕창 물려 버리지. 반면에 나를 딱 믿고 맡기는 사람들에게는 수리비를 깎아주고, 어떨 땐 그냥 가세요 하기도 해.”

가게 앞은 바로 1980년 5·18의 현장이었다. 총알이 가게 안으로 날아 들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가게 안으로 들어온 총알에 맞아 시계가 ‘팽’ 돌아가고, 유리창에 구멍이 ‘퐁퐁퐁’ 뚫렸제. 바닥을 뻑뻑 기어 도망갔어. 벽시계랑 이런 건 다 두고 진열장에 있는 손목시계들만 쌀 푸대에 담아 도망쳤다니까.”

신씨는 매일 오전 8시 문을 연다. 수리는 오후 5시까지 하지만 문은 오후 7시에 닫는다. 두 시간은 ‘막걸리장’이 선다. 지인들과 아내가 가져다 준 소박한 안주 놓고 막걸리를 마시는 시간이다.

“내가 참 부잡한 성격인데 어떻게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50년을 살았는지 신기해. 친구들도 그렇게 말하고. 이곳에서 딸 넷, 아들 하나 잘 키워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보냈으면 감사할 일이지. 지금도 가게를 찾은 사람들이 날 부러워해. 돈을 벌어서가 아니라, 이 나이에도 할 일이 있고, 일할 공간이 있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막걸리 한잔 사줄 수 있는 돈도 벌 수 있으니 좀 좋아.”

블랙진에 랜드로바, 스웨터 안에 받쳐 입은 셔츠까지 신씨의 옷차림은 멋스러웠다. 깔끔한 옷차림은 손님을 대하는 이의 기본 예의라고 했다.

“애인한테 받은 게 만원짜리 시계여도 선물 받거나 사연이 있으면 버릴 수 없어. 돈으로 가치가 없어도 말이야. 수십년이 넘은 예물 시계를 고치러 오는 사람도 많아. 수리비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거기엔 추억도 있고, 두 사람 인생도 있으니까.”

다음날 오전 10시 쯤 가게를 다시 찾았다. 한데, 간판이 사라졌다. 동구청에서 거리 간판을 일괄 교체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어제 사진 기자가 찍은 간판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큰일 날뻔 했다. 용문당 간판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았다.

오늘, 첫 손님은 물건 배달하러 온 택배 아저씨였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