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정치인들 사이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시구가 많이 쓰인다. 봄 같은 좋은 시절이 왔으나 마음이 편치 않고 차가운 겨울 같다는 뜻이다. 원래는 절세미인이 떠난 안타까움을 노래한 시였는데 이합집산과 패거리 나누기를 거듭하고 있는 정치꾼들이 어려운 자신의 처지를 그럴듯하게 미화하여 남발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라와 국민, 지역사회를 위해 죽기 살기로 일하겠으니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4년 기간제인 국회의원이 그 기간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뿐만 아니라 세상살이가 언제나 봄같이 따스하고 아지랑이 낭만만 가득하던가. 계절은 순리에 따라 춘래(春來)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한두 가지 불사춘(不似春)을 가지고 있으며, 여름이어도 불사춘일 때가 많다. 본인이 힘들면 지위 고하나 시절에 관계없이 불사춘이다.

신학기를 맞이하여 기간제 교직원을 네 번이나 뽑았다. 우리 학교가 새로 모시기 위해 공모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짧게는 6개월에서 1년간 함께 생활했던 분들이 우리 곁을 떠나 다른 학교 기간제로 가거나 아무 소식 없이 교단을 떠난 경우도 있다. 그만큼 정규직으로 교단에 서기 어렵다는 말이다. 전국의 사범대 졸업생과 교직과목 이수자, 교육대학원 졸업자 중에 정규 교사가 되는 비율은 채 10%가 되지 못하고, 형편이 나았던 교육대학교 졸업생들도 계속 누적되는 현실이다.

예전에는 학교 교실의 구성이 학생 책걸상과 교단, 교탁이었다. 교사가 되는 것을 교단에 서다 또는 교편을 잡는다고 했고,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는 것을 교단을 떠나다 또는 교편을 놓다고 표현했다. 교단은 교실에 있는 약 20여㎝ 높이로 교사가 올라가 가르치는 나무 단상이다. 비록 교실 바닥과 교단의 높이는 한 뼘 정도의 차이지만 그 높이의 차이는 많은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물리적인 높이가 아니라 존경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교편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 사용한 회초리 편(鞭)이다. 지금은 체벌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로되 가르침을 받는 것을 지도편달이라 하여 많이들 사용한 시절이 있었다. 이제 교실에서 교단과 교편이 사라지고, 스승의 의미도 희미해진 가운데 교탁만 남았다.

지난번 경기도 소재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교탁 앞에 서있는 한 교사의 수모는 교직에 몸담고 있는 모두에게 크나큰 자괴감을 주었다. 교사의 머리를 두드리거나 침을 뱉으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교사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상상해 본다. 더구나 기간제 교사였다는 말을 듣고는 참담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기간제 교사이기에 낮잡아 보고 무시를 당했다면 정말 이건 아니지 않는가.

매년 새 학기를 맞아 기간제 교직원을 뽑는 일은 이제 연중행사처럼 되었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응모하는 분들이 많았다. 2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이력서 경력란이나 자격증도 칸이 부족할 정도로 다채롭고 여러 학교를 거쳤다. ‘이 정도면 정규직도 충분한데’ 속으로 되뇌면서 서류 전형이나 면접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임용고시나 여타 채용 면접 때 수차례 심사를 해봤지만 이런 아린 심정은 아니었다. 그저 좋은 분만 선발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서류 전형이나 면접에서 탈락한 분들은 학원으로, 임용시험 준비로, 아니면 진로를 바꾸어 또다른 일자리로 인생 여정을 떠날 것이다. 정규직도 아닌 기간제마저도 선택받지 못했다는 어둡고 침울한 심정을 달래가면서. 합격한 분들은 기쁜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하겠지만 근무할 짧은 기간의 불안감은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금년에 우리 학교와 인연을 맺은 기간제 선생님들께는 더욱 따뜻하게 대할 생각이다. 봄과 함께 시작한 교단 생활이 불사춘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사실 사람은 모두가 기간제다. 부귀영화도 온갖 생명체도 기간제다. 어느 직종에서 또는 어느 역할에서 시간의 장단이 있을 뿐. 짧은 기간제와 조금 더 긴 기간제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운명도 각자 다르게 정해진 기간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