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 설이다. 많은 사람이 손꼽아 기다리는 최대의 잔치지만 며느리들에게는 ‘명절’이 아닌 ‘멍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시댁 어른들과 맥락적 소통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소통’이 화두가 되고 있지만 소통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어르신들께 전화를 드리면 대개는 ‘바쁘면 명절에 내려오지 마라’고 하신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네 그렇게 할게요,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시어머니의 눈 밖에 날 확률이 매우 높다.

며느리 중 시어머니의 ‘힘드니 오지마라’는 말씀이 진담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10명 중 1명 뿐이라는 흥미로운 조사결과도 있다. 2014년 기혼여성 커뮤니티 포털 아줌마 닷컴이 인터넷 기혼 여성 회원 110명을 대상으로 명절에 시어머니 말씀 중 ‘명절에 힘드니 오지마라’는 말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많은 응답은 ‘그대로 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조심하라’가 68%를 차지했다. 이어 ‘남편에게 맡겨라’는 답이 21%였고, ‘진심일 수 있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하다.

며느리들은 억울하다 하소연할 것이다. ‘오라고 하면 갔을 텐데 왜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돌려 하느냐’고. 상대방 말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문자적 해석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르신들이나 CEO들은 문자적 소통보다 맥락적 소통을 주로 활용한다. 요구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돌려서 하는 것이다. 아랫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 피곤하게 이야기를 돌려 해서 못 알아듣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맥락적 소통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찔러서 절 받으면 감성적 보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바빠도 내려 오거라’에 찾아온 며느리는 크게 기쁘지 않다. 지시에 따른 것이지 자발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려오지 말랬는데 내려온 며느리가 반갑고 기쁘다.

CEO의 ‘오늘 시간 있어?’ 이 말도 시간이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지금 약속 취소하고 시간 내줄 수 있어?’라고 묻는 것이다. 맥락적 소통을 잘 하지 못하면 즉, 말의 속뜻을 알아채지 못하면 사회생활이 피곤해지기 쉽다.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까지도 알아듣는 맥락적 경청이 중요하다. 말 자체가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즉 말하는 사람의 의도, 감정, 배경까지 헤아리면서 듣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에 의하면 말은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단 7%만을 운반할 뿐이라 한다. 나머지 93%의 의미는 음성과 어조, 표정, 제스처 등에 실려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피상적으로 표현된 말만 듣는 것은 그야말로 거대한 빙산의 일각만 보는 것과 같다.

설 명절에 한복 곱게 입고 음식 준비하는 시어머니께 ‘어머니 불편하실 텐데 옷 갈아 입으세요’ 하면 썩 내켜하지 않는다. 설은 자신의 희생으로 키운 자녀들에게 심리적 보상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바로 시어머니 자신이 주인공인 것이다. ‘어머니 정말 곱고 멋지세요.’가 정답이다. ‘음식 준비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께 걱정한다고 ‘내년부턴 하지마세요’라고 하면 어머니들은 섭섭해 한다. ‘우리 어머님 손맛 음식이 최고에요’라고 말해야 뿌듯해 한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지만 표현은 할 수 있다.

사람은 스스로 힐링하는 일이 쉽지 않다. 누군가 자기를 따뜻하게 바라봐 줄 때 응어리진 가슴이 눈처럼 녹는 것이다. 그래서 맥락적 소통이 필요하다. 어르신 말씀을 한 번쯤 뒤집어보자, 그리고 시어머니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현명한 답일 수 있다. 그래야 모두가 즐거운 명절이고 정겨운 설 잔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