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처음 관람한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동명동 금호문화회관에서 본 손성권의 모노 드라마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 수창초등학교 인근 드라마스튜디오의 낡은 객석, 극단 토박이가 운영하던 전남대 정문 민들레소극장의 허름한 모습도 마음에 남아 있다. 당시엔 모든 게 신기하고, 즐거웠던 것같다. 얼마전 보도자료에서 조대극회가 1948년에 첫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는 구절을 발견했다. ‘시간’ 시리즈는 광주의 오래된 공간들을 찾아가는 기획이다. 이번 회에 다루는 조대극회는 시리즈 취지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공간은 아니지만, 광주 연극의 출발을 찾아 떠나는 여행 역시, 광주의 시간을 더듬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1월 24일 광주문예회관 소극장. 조대극회 연극 ‘오장군의 발톱’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졌다. 40여명의 배우들이 모두 무대에 올랐다.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15년간 지도교수를 맡았던 박윤모(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72학번)씨 헌정 공연을 겸한 선후배 합동 110회 정기공연이다. 울컥한 목소리로 박 감독이 말했다. “내 인생 가운데 후회하지 않는 것, 그건 조대극회를 만난 것이다.”

아마도 주말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연습했던 회원들, 객석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 회원들 모두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조대극회는 광주 연극의 탯자리라 할 수 있다. 출발은 1948년이었다. 동방극장(옛 무등극장)에서 공연한 함세덕의 ‘무의도 기행’이 첫 작품이었다. 조대극회는 평북 출신이었던 장용건 교수가 합류하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당시 난 전남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장선생이 우리 학교에도 강의를 나와 희곡을 배웠었다. 그를 빼놓고는 조대극회를 말할 수 없다. ‘백마산성’, ‘귀촉도’는 사극 형식으로 당시로는 스케일도 컸다. 특히 직접 희곡까지 썼던 ‘탈’은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조대극회 작품이 어쩌면 광주에서 본격적인 연극의 시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김포천 전 광주비에날레 이사장의 회고다.

장교수가 서울로 떠난 후 조대극회는 긴 동면기에 들어간다. 1964년 ‘고래’를 무대에 올리며 다시 기지개를 켠 극회는 1968년 회원 한옥근(65학번)씨가 희곡을 쓰고 연출한 ‘조롱안의 새떼’를 끝으로 다시 공연을 중단하고 만다.

조대극회가 부흥을 맞은 건 고(故) 조우현 불문과 교수가 지도교수를 맡으면서부터다. 이 때 광주 연극계의 대표 인물로 조대부고 연극반 출신인 정철(동신대 방송연예학과 교수·71학번), 설재록(소설가·71학번), 박윤모씨 등이 합류하며 전성기를 맞는다. 1972년부터 79년까지 무려 24편을 무대에 올렸고 공연이 열렸던 광주학생회관 등에는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1956년부터 전남일보사(광주일보 전신)가 주최한 전국학생연극제는 광주 연극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 때는 조대부고, 춘태여상, 광주일고 우열을 다퉜다. 조대극회 때는 2년제였던 조대여대 학생들도 함께 공연하곤했다. 연습 장소였던 충장로 조대 동창회관은 우리 아지트였다. 연습 끝나면 왕자관 옆 통술집에서 막걸리 들이키며 연극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던 기억이 난다. 조대극회가 내 젊은 날과 함께 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배우로서, 극단 대표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여지껏 연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니 난 행복한 사람이다.”(정철)

“1학년 때 ‘도적들의 무도회’에서 주역을 맡으면서 배우로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얼마 후 조교수님이 극단 ‘시민’의 대표까지 맡게 되면서 자연스레 기성 극단에도 발을 들이게 됐다. 조대극회는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다.”(박윤모)

1956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최범’이라는 가명으로 희곡 부문 가작을 받기도 했던 조교수 역시 광주에서 처음 접한 연극이 조대극회의 ‘별과 함께 흐르다’(1954)였다. 지난 2001년 공연된 ‘한여름밤의 꿈’은 선후배들이 참여한 첫번째 합동무대였다. 특히 이날 행사는 “30년 동안 굿판을 벌여 놓고 그 판에서 놀게 했던”조우현 교수의 정년을 기념하는 무대여서 의미를 더했다. 2010년 100회 공연 ‘철종 13년의 셰익스피어’ 역시 선후배 합동공연이었다.

110회 공연에는 낯익은 인물도 보였다. 탤런트 이한위(80학번)씨였다.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일정이지만 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합동 공연에 참여했다. 정밀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회장을 맡으며 ‘위선자 따르뛰프’ 등을 연출했다.

“조대극회는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 한 힘이었다. 처음 성격을 고치게 위해 배우가 됐는데 회장으로, 연출로, 배우로 극회 활동에 집중했다. 당시 난 능력 있는 사람이기 보다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땐 힘들기도 했지만 정신적으로 성장한, 정말 소중한 순간이었다.”(이한위)

조대극회의 작품 연보는 곧 광주 연극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1960년대까지는 ‘원술랑’ ‘귀향’ 등 유치진과 차범석 작품을 주로 무대에 올렸고, 첫번째 외국 작품은 몰리에르 작 ‘수전노’(1972)였다. 1970년까지는 ‘용감한 사형수’, ‘나폴레옹과 이발사’ 등 외국 작품들이 강세를 보였다. ‘갈매기’, ‘안티고네’ ‘에쿠우스’, ‘맥베드’ 등 해외 대표작과 ‘날 보러와요’, ‘마술가게’, ‘서툰 사람들’, ‘허탕’ 등 국내 인기 희곡들도 공연됐다.

극회 출신으로 연극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많다. 연극배우 조영철(74학번), 드라마스튜디오를 창립하고 배우들을 키워낸 강남진(백제예술대 교수·76학번), 극단 미추 상임연출이었던 강대홍(82학번), 국립극단 상임연출 신용수(85학번), 김지훈 광주시립극단 상임연출(90학번), 연극배우 이영환(04학번) 등이다. 또 극단 예후에서도 활동했던 화가 정상섭(76학번), 화가 장영일씨도 극회 출신이다.

극회의 옛날 자료를 찾기 위해 7일 조대극회 동아리방을 찾았다. 아쉽게도 1980년대 이전 자료는 1980년 학내 민주화 과정에서 동아리방이 불타면서 많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기자를 만난 회장 김승규(09학번)씨는 연극배우의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조대극회 활동은 특정 대학교 연극반의 그것을 넘어선다. 조대극회에서 잉태된 씨앗들은 광주 연극계에 활짝 꽃을 피우고 그늘이 됐으며 그 꽃향기는 기자같은 관객들에게도 퍼져왔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