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평짜리 작은 가게 안은 빈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벽마다 걸려 있는 수십벌의 옷과 손 때가 묻은 재봉틀과 다리미, 색색깔의 실꾸러미와 자투리 천, 그리고 가게와 딱 어울리는 수십년은 넘은 듯한 컬러TV까지.

회사 선배가 대학 시절부터 30년 동안 이용했다며 취재 공간으로 추천한 의류 수선집의 모습이다. 선배는 바지부터 스키복까지 가족들 옷도 모두 이곳에서 수선하는데 옷을 맡기면 마음에 쏙 드니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광주시 동구 충장로 2가 한 건물 3층에 위치한 제일의류수선은 올해로 38년이 된 전문 수선집이다. 가게를 찾은 날 서생현(64)씨는 바지 수선에 한창이었다. 서 씨는 당초 양복과 양장 만드는 일을 했었다. 스무살 즈음부터 고향인 담양과 목포 광주 등에서 일했고 복장학원에서 강사로도 근무했었다. 그가 당시에는 생소한 수선일에 발을 들인 건 1977년이었다.

“처음 양장·양복업에 입문할 때는 맞춤복이 유행이었죠. 시집 갈 때면 잘 사는 집은 스무벌, 보통 가정도 월남치마 등 10여벌은 맞춰가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충장로에서 양복·양장점을 3년만 하면 세들어 사는 건물을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황이던 시절이었죠. 전 조금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의 밑에서 일하다 보니 봉급도 열악했구요.”

서씨는 변화를 모색했다. 실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어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해보자 싶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에게 미적 감각이라는 건 없었죠. 기성복으로 나와 있는 옷은 대중소로만 구분돼 있고요. 디자인이나 이런 것들은 생각도 못했고, 컬러 TV가 나오기도 전이라 색채에 대한 감각도 없었구요, 한마디로 대충 입고 다녔죠.(웃음). 지역 상류층은 화니백화점에 다니고, 동아, 유창 아케이드나 제일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곡성·담양에 살고 있는 여학생들도 양동 복개상가에 가 옷을 사입었죠. 가게를 여는데 양복점이나 양장점 보다는 큰 투자가 들지 않고, 옷을 조금만 손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선집을 열었습니다.”

누군가는 “맞춤옷을 하고 학생들도 가르치던 사람이 나오시방(옷 수선을 하던 집을 말하는 일본어 속어)을 한다”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첫 출발은 현재 충장로 유니클로 자리에 있던 제일백화점 지하의 3평 짜리 가게였다. 당시 1∼2층은 옷가게 등이 자리하고 있었고 3층에는 제일스넥이 성업중이었다. 다방이었던 지하 1층을 가게로 내놓는다는 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당시는 충장로 일대 옷가게들이 장사가 잘 됐어요. 양품점 같은 건 권리금이 500만원, 천만원을 넘었죠. 제일백화점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집이 담양이었는데 비포장길을 매일 버스를 타고 나와 가게 자리 하나 달라고 한달간 관리부장을 쫓아다녔죠.”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화장실 앞에 가게를 내고 ‘제일수선’ 간판을 걸었다. 일제 중고 오버로크(휘갑치기·마름질한 옷감의 가장자리가 풀리지 아니하도록 꿰매는 일) 기계와 학원이 폐업하면서 원장이 필요하면 하나 가져가라고 한 낡은 재봉틀을 놓고 일을 시작했다. 3평의 작은 공간, 혼자 앉으면 쉬 움직일 수도 없는 곳이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가게를 얻기 위해 농협에서 빌렸던 돈을 1년만에 다 갚았다. 국내산 첫 청바지였던 ‘뱅뱅’과 ‘리바이스’ 구제 제품을 수선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주로 바지 길이와 통을 수선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대박이 났다. 유명 청바지 ‘게스’ 매장이 생기면서다. ‘게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사람들은 줄 서서 옷을 구입했다. 당시 바지 길이를 고치는 데 300원, 허리를 고치는 데는 300원∼500원이었다. 대리점에서 고객이 옷을 구입하면 전표를 붙여 서씨에게 보냈다. 언젠가 추석 즈음에는 하루에만 100벌 가까이 게스 청바지를 수선한 적도 있었다. 화장실 갈 틈도, 제대로 앉아 밥 먹을 틈도 없었다. 담양 집에서 도시락 2개를 싸가지고 나와 새벽 1시∼2시까지 일했다.

“당시에 금고가 어디 있어요. 그냥 주머니에 돈 넣느라 바빴죠.(웃음) 10여년을 진짜 퇴근 시간 없이 일했습니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공간에서 일하고 옷에서 나는 먼지가 엄청나다 보니 새벽에 집에 가 코를 풀면 검은 피가 나오기도 했죠.”

이때 생긴 비염은 지병이 됐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찾아와 일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더니 강의를 제안했다. 당시 광주YWCA에서 일하던 박경린 전 광주YWCA 사무총장이었다. 서씨는 YWCA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 20년간 강의를 했고 이곳에서 또 한번 ‘대박’을 친다.

광주YWCA가 진행한 재활용 발표회에서 청바지를 치마로 개조해 출품했다. 이 옷이 공중파 방송을 타면서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만5000원∼2만원씩 받고 옷을 고치느라 눈코 뜰새가 없었다. 1989년에는 정부에서 저축왕 표창도 받았다.

“밥 먹을라치면 ‘조금 있다 드시고 얼른 나오쇼’, 화장실에 가도 ‘얼른 나오쇼’ 난리가 아니었죠.”

제일백화점이 없어진 후 맞은 편 건물 1.5층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같은 건물 3층이 가게다. 그는 점심 먹고 나와 밤 10시까지 일한다. 일요일에도 쉬지 않는다. 한 때 여섯명까지 일했지만 13∼4년 전부터는 아내와 둘이 운영한다. 인건비는 오르고 수선비는 별 차이가 없어서다.

가게에는 찾아가지 않은 옷이 산더미다. 새옷을 수선할 때는 약속한 날에 잘 찾아가지만 낡은 옷을 다시 고쳐 입을 때는 찾아가지 않는 손님들이 많다. 가게에는 또 수선할 때 쓰는 자투리 천이 가득했다. 지난해처럼 학생들 교복이 허벅지는 딱 붙고 아래가 퍼진 부츠컷이 유행일 때는 같은 천으로 폭을 늘려줘야하는데 그 때 요긴하게 쓴다.

맞춤옷 집은 줄어드는 대신 수선집은 많이 늘었다. 제일 수선이 들어있는 건물에도 4층에만 6개의 맞춤옷집이 영업했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수선은 이제 하나의 직종이 됐다.

성인경상전문대(현 호남대)에서 공부한 그는 양장 1급 기능사, 패션 디자인산업기사 등 3개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도 조선대 평생교육원에서 ‘의상과 의류 리폼’ 과목을 강의하는데 창업하는 사람, 세탁소를 운영하는데 기술이 없는 사람, 가족옷 등을 만들기 위해 취미로 배우는 사람 등 다양하다.

그가 의류 수선만큼 힘을 쏟는 건 청소년들을 돌보는 일이다. 30년도 더 된 어느 여름, 충장로길을 걷다 교복을 입은 전남여상 학생이 땀을 뻘뻘 흘리며 광주일보를 배달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일주일에 3번씩만 신문을 배달하라고 하고 오랫동안 용돈을 쥐어줬다. 이후 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 검찰청 법사랑위원회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나이가 드시면 살이 빠져 한창 때 입던 옷을 못입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오늘 어떤 분이 수선을 맡긴 순모 양복을 찾아가셨어요. 완전히 해체해서 새롭게 만들어드렸더니 버릴 놈을 이렇게 멋지게 해주셨다며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또 방금 오래된 코트를 수선하신 손님도 안감을 융으로 해서 누볐드렸더니 홀딱홀딱 뛰며 좋아하시고 당초 받기로 했던 수선비 보다 3만원이나 더 주고 가시더라구요. 그래서 연락처와 메모를 따로 해두었어요. 언젠가 또 다시 찾아오시면 무료로 안감이라도 해드리고 차라도 한잔 대접하려구요. 우리 일이 정년이 없잖아요. 제가 고쳐드린 옷을 이렇게 좋아하시는 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따듯해지고 행복해요.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때가 묻은 40년된 낡은 오버로크 기계는 오늘도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작동중이다. 소매와 허리, 엉덩이 등을 다릴 때 쓰는, 다리미 도구도 40년전부터 그와 함께다. 이곳에서 시간은 정말 천천히 흐르는 듯했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