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을 좋아한다. 사누키 우동의 고장인 일본 카가와현(우동집만 800개라고 한다) 우동버스를 타는 게 ‘위시 리스트’ 중 하나다. 광주에선 전통있는 우동집을 찾기 어려워 아쉽다. 그런 점에서 또 하나 좋아하는 음식인 모밀은 맛집들이 많아 행복하다. 청원모밀, 화신모밀 등 광주에는 오래된 모밀집이 건재하다. 사람 입맛이 모두 다르듯 저마다 선호하는 가게도 다르다.

광주 토박이들은 물론이고, 광주를 떠난 이들에게는 나름 잊지 못할 ‘음식’ 한두가지가 있다. 추억까지 덤으로 얹어주는 오래된 식당의 기억도 함께다. 경상도로 시집 간 여동생은 충장로 월계수 볶음밥을 잊지 못한다. 서울로 이사 간 친구가 몇년에 한 번 광주에 오면 꼭 가는 곳이 있다. 바로 청원모밀이다.

1972년부터 늘 그 자리, 광주시 동구 충장로 3가 충파(광주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부른다)옆에 자리한 청원모밀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모밀집이다. 청원모밀의 역사가 시작된 건 1960년이다. 지난 2012년 85세 일기로 작고한 김용현씨가 충장로 4가 화니백화점 앞(옛 하니문 다방 맞은편)에 ‘청원식당’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게 그 시초다.

지난 10일 오전 10시 주인장 주영희(55)씨와 마주 앉았다. 김 씨의 둘째 며느리인 주 씨는 시집온 1986년부터 가게 일을 도왔고 2006년부터 가게를 맡아 운영중이다.

육수를 뽑는 4층과 주방이 있는 1층을 오르내리며 주 씨는 개점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개점 시간은 오전 10시30분. 시내 한복판 식당에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 있을까 싶었는데 인터뷰를 하는 1시간여 동안 80대 노인부터 중고생까지 20여명이 문 여는 시간을 기다리며 들락날락했다.

시아버지 김 씨는 청원식당을 열기 전 옛 무등극장 인근에서 빵집을 운영하며 만두 등 다양한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청원식당’ 시절에는 메밀국수(온모밀), 마른모밀(소바·판모밀)을 주로 팔았다. 첫 가게가 있던 자리에 함께 있던 ‘이식당’도 모밀 명가였다. 1972년 중앙로 개설공사와 함께 현재의 자리로 옮겨 ‘청원모밀’로 이름을 바꿨다. 이때부터 또 다른 대표 음식인 모밀짜장도 팔기 시작했다.

현재의 모습으로 리모델링을 진행한 건 2006년이었다. 12일 동안 철야 작업을 거쳐 공사를 진행 했다. 1층과 2층은 주방과 홀이고 4층은 육수 등을 뽑는 주방으로 만들었다. 1층과 4층 사이를 오르내리는 폭 70 ㎝ 크기의 미니 엘리베이터는 음식들이 오고가는 통로로 발품을 줄여주는 일등공신이다.

현재의 건물은 사연이 많다. 집안 사정으로 지난 2003년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다. 30년 손 때 묻은 공간이 하루 아침에 ‘남의 건물’이 됐고 ‘세들어 사는’입장이 됐다.

“가게는 계속 돌아가고 장사도 잘 됐지만 수십년 모은 돈으로 지은 건물을 순식간에 날렸으니 아버님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당시 경매로 건물을 산 사람이 구시청 사거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계셨어요. 마음이 여리셨던 시아버지는 수시로 그집을 찾아가 가게 앞에 쭈그려 앉아 우시곤 했습니다. 그 쪽 사장님이 아버지 모시고 가라는 전화를 하곤 했죠.”

당시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하던 주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우여곡절 끝에 3년 반만인 2006년 건물을 되찾았다. 그날, 부모님은 대성통곡했다.

청원모밀은 지난 2011년 발간된 세계적인 여행책자 ‘미슐랭 가이드북(그린) 한국편’(불어판·영어판)에 맛집으로 소개됐다. 한국관광공사와 한식재단이 미슐랭사와 함께 제작한 이 책자에는 한국의 주요 관광지, 문화유적, 숙박시설, 음식점 정보 등 전반적인 여행 정보가 담겨 있다.

한창 때는 하루 1000그릇이 나갔지만 요즘에는 500그릇 정도 나간다. 광주만큼 모밀집이 많은 곳이 없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역시 가장 많이 나가는 건 마른 모밀국수(온)과 마른모밀(소바)이다. 앙증맞은 크기로 만든 유부초밥과 왕만두도 별미다. 시부모님의 전통은 이어가되,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주 씨가 가게를 맡으면서 내놓은 게 김치국수다. 여름에는 콩물모밀국수도 판매한다.

“항상 장을 보시던 어머니가 하셨던 게 있어요. 음식 재료는 싼 걸 안 쓰시고 물건 값을 깎지 않으셨어요. 잔푼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셨죠. 깎으면 그만한 대가가 있다고 했어요.”

음식 재료는 가게 3곳에서 가져다 쓴다.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면발의 비밀은 ‘다른 집에서는 넣지 않는’ 무언가다.

광주 시내에는 ‘청원모밀’이라는 상호를 단 가게가 많지만 모두 이 집과는 관계가 없다. ‘청원’이 지명이라는 이유로 상표등록이 어려워 몇년 전 ‘1960 청원’으로 상표 등록을 했다.

지난해에는 상무지구 김대중컨벤션센터 옆에 직영점을 열었다. 남편 김경열(57)씨가 맡아 운영중이며 주 씨는 양쪽을 오가며 일을 보고 있다. 충창로점이 다소 비좁은 데 반해 상무점은 새롭게 만들어진 곳답게 깔끔한 인테리어와 40여개의 테이블을 갖춘 널찍한 공간이 눈에 띈다. 직장인은 물론 여러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어 가족 단위 고객도 많다.

인터뷰를 끝낸 오전 11시 쯤 순천과 대전에서 왔다는 젊은 청년 두명과 혼자 온 손님 등 5명이 네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주 씨는 이날 가게 문을 여는 게 좀 늦었다며 손님들에게 떡을 제공했다.

“먹는 집이니까 무언가를 줄 수 있어서 좋아요. 한쪽엔 학교 끝나고 온 어린 학생들이 졸졸졸 앉아 있고, 한쪽에는 나이드신 할아버지들이 앉아 계시고 또 한 쪽엔 젊은 청년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해요. 온 세대가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비싸거나 대단한 음식도 아닌데 큰 여행가방 끌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은 참 고맙죠.”

기억에 남는 손님을 묻자 들려준 이야기.

“나이 들면 가끔 추억 여행을 떠나잖아요. 언젠가 이른 오전 시간에 여자 손님 두분이 각기 다른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고 계셨어요. 그러다 한명이 소리쳤어요.“아야, 누구야”라고. 늘 보고 싶은 친구였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나 봐요. 오랜만에 기차 타고 고향에 와서 예전에 즐겨 먹었던 모밀을 먹으러 왔는데 딱 마주친 거죠. 우연찮게도 두 사람 모두 학교 교사더라구요. 많은 이들에게 이 곳이 추억의 공간인듯해요. 초등학생 아이 데리고 와서 이 아이가 뱃속에서부터 모밀을 먹었다고 이야기하는 손님들도 고맙구요.”

점심 식사 시간, 다시 가게를 찾았다. 밀려드는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테이블 10여개의 작은 공간, 어린아이부터 팔순 넘은 지긋한 노인까지 모두 맛있게 한끼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노란색 겨자가 담긴 시원한 쯔유 소스에 담가 먹는 마른 모밀은 역시 맛있었다.

“아버님이 무척 섬세하고 꼼꼼하신 분이셨어요. 내가 못 먹는 음식은 손님도 못 먹는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항상 내가 먹는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내라는 말이셨죠. 오래된 곳이라는 것만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죠. 전통은 잇되,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점 입구 벽엔 주씨와 시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초상화가 걸려 있다. ‘사랑의 열매 착한맛집’, ‘대한적십자사 희망을 나누는 가게’로 작은 나눔도 실천하고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따끗한 모밀 한그릇으로 그 때를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