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박힌 노래는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대학 시절 테이프로 처음 들었던 노래패 ‘친구’의 노래들이 내겐 그렇다. 광주 YWCA 강당에서 접했던 라이브 공연은 더욱 더 인상적이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등이 실린 테이프는 소리모아스튜디오에서 제작됐다.

‘한강 이남에서 가장 오래된 녹음 스튜디오.’

인터뷰 섭외를 위해 전화를 했을 때 소리모아스튜디오 박문옥(60·사단법인 오월음악 이사장) 대표가 말했다. 7월 중순 광주시 남구 주월동 한 아파트 상가 3층에 위치한 소리모아스튜디오를 찾았다. 25년 넘은 릴 녹음기와 그만큼 나이 먹은 건반, 유리창 너머 녹음실을 메운 기타와 마이크…. 광주의 음악이 만들어진 공간의 풍경이다.

소리모아스튜디오는 1986년 말(박 대표는 1987년 초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문을 열었다. 사연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음반 ‘예향의 젊은 선율’이 나왔다. 광주 출신으로 대학가요제에 출연했던 이들이 만든 음반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알려진 김종률(현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저녘무렵’으로 동상을 수상한 소리모아(박문호·박태홍·최준호), 가톨릭 생활성가 작곡가로 유명한 김정식 등이 참여한 음반이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가수 김원중은 대학가요제 출신은 아니었지만 늘 이들과 함께여서 노래 한곡을 불렀다. 조선대 학생이었던 배창희(현 남부대 교수)가 만든 ‘바위섬’이다.

“음반에는 ‘사랑은 강물처럼’ 등 여러 곡이 실렸어요. 작사, 작곡, 앨범 디자인 등을 모두 우리가 진행했습니다. 어쩌면 로컬리즘을 표방한 최초의 음반이라 할 수 있어요. ‘문화적 자립’을 했다고 할 수 있죠.”

이듬해 소리모아와 김원중은 합동 공연을 열었고 약간의 수익금이 생겼다.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음악하는 이들이 늘상 꿈꾸는 공간이 바로 스튜디오다.

첫번째 둥지는 양림동 천변에 위치한 모텔 시원장 지하였다. 어느 날 광주천이 범람 일보 직전까지 갈 정도로 비가 온 적이 있었다. 다행히 물이 넘치진 않았지만 자칫하면 악기며 녹음장비가 모두 물에 잠길뻔 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서둘러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1990년대 초쯤이다. 소리모아스튜디오는 단순히 음반을 녹음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소리모아가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생긴 녹음 스튜디오예요. 서울의 경우도 마장동 스튜디오 등 몇군데에 지나지 않았어요. 지금은 컴퓨터 한대만 놓고 음악을 녹음할 수 있어 스튜디오 개념이 딱히 없지만 당시는 녹음 스튜디오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죠. 당시 소리모아스튜디오는 상업적 공간이 아니었어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지트이자 음악 콘텐츠의 메카였습니다.”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이는 2013년 입적한 범능 스님이다. 정세현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패 ‘친구’를 이끌었던 그는 ‘광주출전가’ 작곡자로 1993년 출가했다.

범능과는 스튜디오 오픈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1980년대는 노래 테이프를 제작해 판매하는 게 운동권의 큰 수익원이었다. 정세현은 1985년 민중 가요집 ‘광주여 오월이여’를 제작했고 박 대표도 힘을 보탰다. 광주의 한 음악 학원에서 인켈 카세트 테크로 녹음 작업을 진행했다. ‘광주 출전가’가 담긴‘ 광주여 오월이여’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꽤 팔려나갔다. 가정용 릴 녹음기와 음악 카페 마이크를 놓고 녹음을 진행, ‘다시 부르는 노래’ 테이프도 완성했다.

범능 스님과는 20여장의 음반을 제작했다. 특히 지난 2002년 녹음한 ‘나무아미타불’ 음반은 10여만장 가까이 팔렸다. 전국 각지 사찰에 가면 ‘시그널 음악’처럼 흘러나오는 곡이다. 또 2013년 마지막 음반 ‘나 없어라’를 녹음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음반 스무장을 같이 만들면 결혼한 사람보다 더 가까워지기 마련이예요. 200곡을 함께 고민하면서 만들어간 셈이니까요. 프로듀싱을 하며 곡을 편곡하고 방향을 정하는 작업을 했어요. 정세현이 아닌, 범능스님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반된 1집 ‘먼산’ 등 출가 후에도 꾸준히 함께 했지요. 서로의 음악에 귀 기울이며 영향받고 함께 고민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1980년∼1990년대는 노래로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 노래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들의 시대였다. ‘한반도’, ‘희망새’등 수많은 노래패들의 음악을 녹음한 곳이 바로 소리모아스튜디오였다.‘지리산’으로 유명한 민중가수 박종화의 음반도 10장 이상 제작했다.

“이곳은 전국 각지 노래패들의 아지트이자 흔적이 묻어 있던 곳입니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모두 소리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노래패 활동이라는 게 다 열악한 환경에서 이뤄지지만 완성도 높은 운동가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많았죠. 함께 노래하고, 고민하던 공간이었어요. 회원들이 녹음하러 올 때 아이들을 데려오곤 했어요. 아이들이 ‘삐악삐악’ 울어대면 저 작은 방에서 만화영화를 틀어주던 기억도 납니다.”

뿐 만아니라 이곳에서는 트로트, 가스펠 등 온갖 음반들이 만들어졌다.

소리모아스튜디오는 박 대표의 개인 사정으로 최근 2년여간 개점휴업 상태였다. 얼마전 아날로그 장비 등 한 트럭분을 버리고 녹음실 환경도 정비한 박 대표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박 대표는 문병란 시인의 시에 곡을 부친 ‘직녀에게’의 작곡가다. 지난 2007년 데뷔 30주년을 맞아 기념음반을 내고 5개 도시 순회 공연도 가졌다. 2017년은 가수 데뷔 40주년이 되는 해다. 기념 음반에 들어갈 곡을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소리모아스튜디오는 광주의 음악인, 광주의 음악을 잉태한 ‘모두의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서 또 어떤 음악들이 탄생할 지 기대된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김진수기자 je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