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초원사진관’은 사진사 한석규와 여경 심은하의 애틋한 사랑이 싹트는 공간이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홀로 사진관을 찾아 영정 사진을 찍고 가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사진 속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람의 일생이 담긴다. 백일 사진을 시작으로 학창 시절 사진, 결혼 사진, 그리고 마지막 빈소에 놓여 있는 나의 모습까지. 지금이야 ‘전국민이 사진가’인 시절이지만, 수십년 전만에도 가족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근사하게 차려입고 사진관을 찾는 게 일이었다.

광주시 동구 옛 계림파출소 사거리에 위치한 ‘쌍광스튜디오’는 많은 이들의 추억을 찍어낸 공간이다. 쌍광 스튜디오는 기자에게 익숙한 곳이다. 인근 계림초등학교 졸업생이자, 오랫동안 출퇴근 길이었던 터라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저 곳은 아직도 있네.” 생각하곤 했다.

주인 정제식(72)씨는 1970년부터 쌍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로 46년째다. 정 씨 이전에 두 명의 주인이 더 있었다고 하니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사진관에 들어서자 커다란 액자 속 흑백 사진 한장이 눈에 들어왔다. 개구쟁이 4남매다. 보자마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막내 돌 사진 찍으러 왔다 4남매가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정 씨는 1970년대 후반 쯤 찍은 사진으로 기억했다. ‘새마을 정신’과 ‘1학년 8반’ 명찰을 단 큰 형은 당당하다. ‘부반장’ 뺏지도 함께 달아서인 모양이다.

정 씨의 사진 인생은 올해로 56년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직업보도원에 들어간 게 1959년이었다. 상이군경, 극빈자를 대상으로 운영되던 직업보도원에서는 사진, 라디오, 이발, 세탁, 제화 등 8개 과목을 가르쳤다. 실력이 좋았던 그는 이곳 저곳에서 보조 생활을 했다.

1970년대 쌍광사진관을 운영할 즈음 광주에는 세계사장, 허바허바사장 등이 함께였다. 이 두 곳은 지금도 같은 상호로 영업을 하고 있지만 당시 사진을 찍었던 이들은 지금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다.

“내가 6남매 중 장남입니다. 사진은 우리 6남매를 지키고 부모님을 모시고 삼형제를 키우는 도구였어요. 필름 인화지 한장 안 나오는 나라였으니 카메라 장비 값도 만만치 않았어요. 내 자식이 쓸 거라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구입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의 꿈은 자식들에게도 이어졌다. 큰 아들 성원(46)씨는 중앙대 사진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학위를 마쳤다. 대학 입학식 때 정 씨 부부 마음에 쏙 들었던 며느리 김유정씨 역시 미국에서 공부했다. 두 사람은 서울 청담동에서 베이비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현재는 괌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막둥이 유철(40)씨 역시 사진을 전공했다.

“늘 아버지가 사진과 함께였던 모습을 봐서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사진 이외에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사진기만 잡으면 힘이 난다고 하셨는데 가정을 꾸린 저도 이제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같아요.”(정유철)

고등학교 졸업 후 형에게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동신대 사진학과 졸업 후 아버지 밑에서 8년간 일을 배우고 현재 결혼 컨설턴트인 아내와 함께 사진 전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쌍광스튜디오를 이어받을 계획이다.

정 씨는 암암리에 존재하던 ‘사진사’에 대한 직업적 멸시를 이겨내려했다. 51세 되던 해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광주고 방송통신고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광주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나이는 어느새 61세가 되었다.

신양파크 호텔 분점까지 운영하던 한창 시절엔 직원이 16명이었다. 고객에게 수납창구 직원이 “어서오십시오” 인사하는 것부터 완성된 사진을 내 줄 때까지 모든 게 수공이었다. 카운터 직원부터 촬영기사, 수정기사, 인화 기사, 출장 기사까지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은 3명이 일하고 있다.

쌍광사진관은 어찌 보면 광주 지역 정치 지형도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했다. 건물 외관에 크게 걸어둔 지역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그 창구였다. 정 씨는 정치인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1970년대 후반, 이필선 후보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했다. 최영철 전 국회부의장, 송언종 전 광주시장, 박광태 전 광주시장 등 많은 이들이 쌍광에서 선거용 사진을 찍었다.

“정치인의 제일 큰 목적은 당선이잖아요.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셨죠. 믿음을 갖고 유권자들이 그 사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찍어야해요. 100컷트 넘는 사진 속에서 딱 한 장을 고르는 작업입니다. 비서진 다 내보내고 일대 일로 붙어서 작업을 해요.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와도 정신적으로 이겨야 해요. 그걸 해내지 못하면 눈 감고 찍는 거나 똑같죠. 숨겨진 세련됨을 끄집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사진을 찍고 나면 상대편 후보측에서 전화해 카운터 여수납원에게 별별 소리를 다하곤 했죠.”

가족사진을 촬영하면서 기억나는 게 많다. 암에 걸린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미리 준비하려는 가족의 사연. 아버지 생일날 함께 모여 사진을 찍기로 하고 온 가족이 아버지를 중심으로 포즈를 취했다. 아버지가 카메라에 집중해 있을 때 정 씨가 사인을 주자 순간, 가족들이 아버지 주위에서 재빨리 몇m 떨어졌다. 정 씨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가족 사진을 찾으러 올 때 따로 챙겨둔 영정 사진을 건네자 딸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최근에는 사진 복원도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정 씨가 사진 한장을 보여주었다. 40대 단란한 4인 가족의 모습이다. 남편이 갑자기 암으로 죽었는데 추억으로 남길 가족 사진 한 장 없었다. 마침 예전 시부모님 회갑 때 온 가족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하지만 4명의 가족은 사방에 흩어져 자리를 잡고 있었고 정씨는 4명을 한곳으로 묶어 새로운 사진을 만들어줬다.

“저도 부모님 모시고 손자들까지 4대가 살았어요. 요즘엔 4대가 함께 사진 찍는 가족이 드물어요. 4대가 모여 찍은 사진은 가족의 보물이고 족보입니다. 요즘에는 아들은 그러지 않는데, 딸들이 부모님 모시고 와서 영정 사진을 따로 찍는 경우도 많아요. 지금도 “왜 이런 사진을 찍어야 하냐”며 슬프다고 꺼려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오히려 예쁘게 나온 사진을 준비해 놓으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한데, 우리가 사는 게 바빠 그럴 여유가 없어요.”

사진관의 소품 속에도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다. 40년전부터 돌사진을 찍었던 고풍스러운 의자가 눈길을 끈다. 예전에 찍었던 자신의 돌사진을 들고 와서 우리 아이도 ‘똑같이’ 찍어 달라는 사람을 만날 때면 기분이 너무 좋다. 1980년대 조선대 뺏지를 단 여대생을 찍은 사진은 3년 전 “사진 속 주인공이 나”라며 전화 연락이 왔고,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다.

올해 일흔 둘. 정 씨는 여전히 현역이다. 며칠 전에도 고등학교 수학여행단을 따라 부여에 다녀왔다. “4남매 사진을 아마 이렇게 찍었을 거”라며 한손에 뿅 망치와 소리나는 인형을 들고, 입에는 딸랑이를 물고 셔터를 누르며 ‘원숭이도 되고, 광대도 되는’ 그는 열정적이었다.

스튜디오에 걸린 사진을 보며 시간 여행을 떠난다. 전남여고 교복을 차려입은 여고생, 1980년 당시 광주의 대표 패셔니 스타였던 아모레 여직원, 근엄함이 묻어나는 노인의 모습.

취재를 마치면서 정 씨도, 기자도 귀염둥이 4남매가 어떻게 컸을까 너무 궁금했다. 새삼스레 집 거실에 걸린 가족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고, 낡은 사진첩이 어디있는 지 찾아보게 된 하루였다.

쌍광 스튜디오 062-223-7413.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