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식당의 전어 굽는 냄새도 예술.’

오소후(66) 시인의 시 ‘예·술’의 한 대목이다. 4년전 어느 가을날, 광주 금남로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그녀는 바람에 실려온 전어 굽는 냄새를 맡았다. 광양 망덕이 고향인 아버지가 좋아했던 음식이 전어였다. 냄새를 따라 간 곳은 영흥식당. “전어 한 접시 먹을 수 있을까요?”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워진 전어를 먹으며 ‘왈칵’ 눈물이 났다. 아버지를 잘 모셨던가 새삼스레 돌아보며 회한에 잠겼다. 그녀는 이후 영흥식당의 단골이 됐고 시 ‘예·술’은 그렇게 탄생했다.

광주시 동구 금남로 1가 1번지에 자리한 신문사 입사 첫 날, 선배들이 데려간 곳이 막걸리 집 ‘동명식당’이었다. 인근 ‘실비집’의 싸고 맛있었던 김치찌게도 기억에 남는다. 막걸리 한 통에 따끈하게 덥힌 두부 한 모 놓고 술 마실 수 있는 선술집은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했다. 전남도청이 이전하고, 광주 동구청도 자리를 옮기면서 인근 선술집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영흥식당은 여전히 그 곳에 있다.

영흥식당이 문을 연 건 지난 1986년 2월이다. 내년이면 딱 30살이다. 해남 출신 주인장이 3년 정도 운영하던 대흥식당을 현재의 주인 임병숙(67)씨가 넘겨 받았다. 임씨는 현정화 덕에 일어난 탁구 붐을 타고 양동시장 인근에서 탁구장을 운영했었다. 남편 친구인 작명가가 이름을 지어주었다.‘영흥(榮興)’이라는 이름 덕인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영흥식당에는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쁜 대로, 궂은 일이 있으면 궂은 대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누가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여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될 때는 불이 꺼지지 않았어요. ‘목포의 눈물’을 수백 번 부르고. 그냥 날을 새 버렸죠. 돌아가셨을 때는 또 문상 다녀와서 자연스레 모여들어 한잔씩 하고, 울고 그랬죠.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해마다 5월이 되면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몰려들어 토론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여튼 정신이 없었어요.”

영흥식당은 화가, 시인, 연극인 등 지역 예술가들이 ‘죽치고’ 앉아있던 곳이다. 지금도 출근도장 찍는 예술가들이 많다.

영흥식당 대표 음식은 10월부터 먹을 수 있는 전어구이다. 식당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죽여주는 냄새의 전어구이는 식당 밖 연탄불에서 굽는다. 담당은 기아자동차에서 퇴직한 남편 김진옥(72)씨다. 설겆이 역시 그의 몫이다.

봄에는 황실이 튀김과 조림, 병치 조림, 삼치구이, 갑오징어가 제맛이다. 단골 손임이 그려준 메뉴판(모델은 임사장이다)이 있기는 하지만 손님이 원하면 ‘뭐든지’ 다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밑밭찬이 맛있다. 비빔국수 등을 내놓기 위해 사시사철 담는 열무김치가 백미다. 주변 미술학원생들에게 끓여주기 시작한 라면도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양파, 쪽파, 애호박, 계란을 넣은 라면은 열무김치와 함께 먹으면 딱이다. 음식에는 일체 미원을 쓰지 않고 된장도 직접 만든다. 김치도 해마다 400포기 정도를 담는다.

“다른 건 몰라도 전어구이는 우리집처럼 맛있게 굽는 데가 없제. 연탄을 피우면 집을 버린다고 해서 대개 가게들이 연탄불을 이용해 생선을 굽지 않제. 우리도 집주인이 그랬는데 우리집 대표 음식이 가을 전어구인데 그걸 안할 수 있냐고 우겨가지고 열심히 구워댔죠.”

식탁 7개가 차려진 식당 내부는 옛 모습 그대로다. 낡은 냉장고와 식탁, 가게 문 열 때부터 사용했던 쟁반까지. 식당엔 단골들만 아는 ‘로얄석’이 있다. 엉덩이를 따뜻하게 덥힐 수 있는 가장 안쪽 자리다.

20년간은 종업원 둘을 데리고 식당을 운영했다. 6년전부터는 혼자 가게를 꾸리고, 지난해 여름부터는 점심 손님을 받지 않는다. 오전 6시 남광주·양동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오후 2시 무렵 문을 연다. 식당 바로 뒤 귀빈회관을 구입, 안집으로 사용하면서 훨씬 편해졌다. 돈도 벌었다. 가게 인근에 5층 짜리 건물을 구입, 세를 놓고 있다

영흥식당, 영흥집, 영흥사, 영흥 레스토랑. 저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나상옥 광주미협회장이 지은 영흥대학도 있다. 사장을 부르는 이름도 많다. 어머니, 사장님, 대표이사, 숏다리 아짐, 아가씨, 시인 손광은 선생의 호칭은 ‘여왕님’이다.

영흥식당은 20년 넘는 단골인 화가 임남진씨의 ‘풍속도Ⅱ-영흥식당’(2006)으로 많이 알려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백명 인물 속에는 당신도 있고 나도 있다. 영흥식당 안, 원숭이가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이는 화가 자신이다.

“식당에 처음 갔을 때가 1990년대, 20대 초반이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었고 시대 상황과 맞물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던 시절이었다. 취한 상태에서 그림 소재를 메모하고는 했다.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든 게 들어 있다. 시간이 묻어나는 내용들이다.”(임남진)

이 작품은 2011년 임씨의 개인전을 찾았던 대전의 사업가가 구입했고, 그 역시 영흥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갔다.

판화가 강행복씨는 “선술집이 모두 사라져가는 시대, 오는 사람이 좋고, 음식 맛 좋아 술맛이 좋은 곳”이라고 했다. 행여 영흥식당도 사라진다면 피맛골처럼 박물관에 보존해야할 공간이라고도 했다.(종로 피맛골이 사라지면서 녹두빈대떡과 막걸리로 유명했던 55년 역사 청일집은 옛모습대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영흥식당은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할 때 찾으면 그이를 딱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우연히 와서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 취재를 가는 날, 식당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러 손광은 시인에게 전화를 돌렸을 때 단골답게 그는 식당에서 막걸리 한잔 중이었다. 이날 강행복씨를 몇년만에 만났고, 야구스타 강만식씨도 우연히 만나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장의 기억을 통해 수년 전 세상을 떠난, 선배도 떠올렸다.

“장사하면서 속이 썩어 나자빠진 게 한 두번이 아니죠. 돈 띠어 먹고 도망간 사람, 술 취해서 무작정 술 먹으라고 하는 사람. 그런 경우 많았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좋아요. 우리 가게 찾는 손님들은 참 좋은 사람들이야. 음식 맛나게 먹어주고 고마운 사람들이죠.”

취재차 찾은 날은 돼지머리 옆에 노란 수선화가 놓여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주인장을 위해 오랜만에 찾은 손님이 놓고 간 것이다. 취재하는 동안 만난 이들은 모두 영흥식당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싶어 했다. “없어지면 안된다. 여기 오면 편안함을 느낀다. 손님들이 원하는 건 다 해주는 곳이다. 역사의 현장이다. 애환을 달래준 공로를 인정해야한다. 요즘 이런 곳이 어디 있나.”

수차례 ‘실가리국’ 예찬론을 펼치던 노 시인이 식당을 떠나며 말했다. “술은 취하지 않는다. 다만 몸이 흔들릴 뿐이다.”“영흥대학은 종합인생대학이다.”

따뜻한 봄바람이 분다. 4월이 되면 식당 바깥 공터에 상이 차려진다. 별빛, 달빛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나누며 팍팍한 삶 풀어헤치기 딱 좋다. 기름진 전어구이는 10월까지 아껴둔다. 영흥식당 062-232-9351.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