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으며 떠올린 몇 가지 옛이야기
2015년 02월 06일(금) 00:00 가가
“못된 자식보다 지팡이가 낫다.” 불교 경전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붓다는 이른 아침에 성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걸식하는 노인을 만나 묻는다.
“그대는 어찌하여 늙고 쇠약한 몸으로 거리에 나와 있는가?”
“고타마여. 아들을 키워 며느리를 맞고 나서 재산을 전부 물려주었는데 오히려 집에서 쫓겨나 이렇게 구걸하고 있답니다.”
“내 그대에게 게송을 일러 줄 테니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이렇게 해서 붓다로부터 시 한 수를 받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큰 소리로 읊었다. 시의 내용은 이러했다.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했고/ 그 아들을 위해 애써 재산을 모았네/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들였는데/ 오히려 나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네./.../늙은이에게는 자식보다 지팡이가 나으니/ 자식은 귀하다고 애착할 것이 아니라네/ 구부러진 지팡이는 소나 개를 막아주고/ 험한 곳에선 의지처가 되며/ 가시덤불을 헤쳐 길을 가게 해 주니/ 못된 자식보다 말 없는 지팡이가 낫다네.”
비슷한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에도 나온다. 리어왕은 늙어 세 공주에게 왕국을 나누어 주리라 결심한다. 그리고 가장 효성스러운 딸에게 가장 큰 은혜를 내리겠다고 말한다.
맏딸과 둘째 딸은 아첨하는 말로 많은 재산을 받아낸다. 그러나 가장 사랑했던 막내딸은 ‘당연히 자녀로서의 존경과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다소 딱딱한 고백을 함으로써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결국 그녀는 한 푼의 재산도 물려받지 못하고 만다.
돈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라
그러나 재산을 많이 받은 두 딸은 곧바로 아버지를 냉대하고 이를 견디지 못한 왕은 궁전을 나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를 헤맨다. 이때 부왕(父王)의 참상을 전해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천리 길을 달려 온 이는 바로 막내딸이었다.
기독교의 십계명에서도 “부모님을 공경하라, 그리하면 오래 살고 복을 누릴 것이다”라고 했다. 노아의 둘째 아들은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아서 신의 저주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노인 십계명’은 효(孝)가 사라진 우리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첫 번째 계명(誡命: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 바로 “자식에게 올인하지 말라”이니 말이다. 게다가 “며느리 잘 모셔야 집안이 화목하다”라고 하는가 하면 “돈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라”고 조언한다.
일반적으로 멋진 노년을 보내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얘기다. 어차피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일 터인데 왜 무덤까지 돈을 가지고 가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리어왕에 나오는 광대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겠다. “넝마 걸친 아비에게는 자식들이 눈을 돌리지만, 주머니 찬 아비에겐 자식들이 친절하지….”
내친김에 옛이야기 하나 더 들어보자. 7남매나 되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다 나눠 준 노인이 있었다. 이미 유산을 받아 버린 자식들은 이후 바쁘다며 아비를 찾지 않았다. 농사짓는 막내만이 그래도 가끔 닭백숙이나 호박죽을 쒀서 가져 올뿐이었다.
어느 날 노인은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너희 7남매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며 세간까지 내 주느라 내가 빚을 많이 졌다.” 아버지에게서 혹시나 남은 재산을 더 받을 수 있을까 기대하고 온 7남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노인은 “빚쟁이들한테 시달려서 더 이상 못 살겠다”며 “다음 달 보름에 와서 내게 보태 줄 금액을 적어 내고 돈은 내년 6월까지 마련해 달라”고 말한다.
이윽고 다음 달 보름, 5형제는 왔지만 딸 둘은 아예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았다. 세간을 가장 많이 가지고 나간 맏아들은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라며 200냥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둘째는 180냥, 셋째는 300냥, 넷째는 150냥을 적어 냈다. 세간을 가장 적게 받아 나간 막내가 적어 낸 금액은 형제들 중 가장 많은 1200냥이었다.
효도를 법으로 규정해서야
얼마 후 노인이 죽자 집안 어른들은 상주들을 앉혀 놓고 유언장을 집행했다. 광목 자루 다섯 개가 자식들에게 건네졌다. 맏아들의 자루에는 2000냥이 들어 있었다. 깜짝 놀랐다. 둘째는 1800냥, 셋째는 3000냥, 넷째는 1500냥, 막내는 1만2000냥을 받았다. 각자 적어 낸 금액의 10배였다. 딸년 둘은 물론 빈손이었다.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중인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는 재산을 미리 달라는 자식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30여 년간 두부집을 운영하며 아내 없이 3남매를 키웠는데 재산을 미리 증여해 달라고 요구하는 자식들.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이에 아버지는 자식들을 상대로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데 들어간 모든 비용을 갚으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물론 이는 이기적인 자식들을 교육하기 위한 마지막 고육지책이었을 것이지만.
효도를 법에 규정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놀랍게도 그 나라는 중국이다. 2013년부터 중국은 60세 이상 부모에게 의무적으로 정신적·금전적 지원을 하도록 한 노인권익보장법을 시행하고 있다. 또 부모와 따로 사는 자녀는 반드시 부모를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안부를 묻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마는 우리 또한 조만간 그리 되지 않으리라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설이 2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또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을 뵙기 위해 혹은 성묘를 하기 위해 고향을 찾을 것이다. 여러분의 부모님들께서는 모두 안녕들 하신지?
나무는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네(子欲養而親不待). 한 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往而不可追者年也), 한 번 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이, 부모님이신 것을(去而不見者親也).
“그대는 어찌하여 늙고 쇠약한 몸으로 거리에 나와 있는가?”
“고타마여. 아들을 키워 며느리를 맞고 나서 재산을 전부 물려주었는데 오히려 집에서 쫓겨나 이렇게 구걸하고 있답니다.”
노인은 이렇게 해서 붓다로부터 시 한 수를 받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서 큰 소리로 읊었다. 시의 내용은 이러했다.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했고/ 그 아들을 위해 애써 재산을 모았네/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들였는데/ 오히려 나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네./.../늙은이에게는 자식보다 지팡이가 나으니/ 자식은 귀하다고 애착할 것이 아니라네/ 구부러진 지팡이는 소나 개를 막아주고/ 험한 곳에선 의지처가 되며/ 가시덤불을 헤쳐 길을 가게 해 주니/ 못된 자식보다 말 없는 지팡이가 낫다네.”
비슷한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에도 나온다. 리어왕은 늙어 세 공주에게 왕국을 나누어 주리라 결심한다. 그리고 가장 효성스러운 딸에게 가장 큰 은혜를 내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산을 많이 받은 두 딸은 곧바로 아버지를 냉대하고 이를 견디지 못한 왕은 궁전을 나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를 헤맨다. 이때 부왕(父王)의 참상을 전해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천리 길을 달려 온 이는 바로 막내딸이었다.
기독교의 십계명에서도 “부모님을 공경하라, 그리하면 오래 살고 복을 누릴 것이다”라고 했다. 노아의 둘째 아들은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아서 신의 저주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노인 십계명’은 효(孝)가 사라진 우리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첫 번째 계명(誡命: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 바로 “자식에게 올인하지 말라”이니 말이다. 게다가 “며느리 잘 모셔야 집안이 화목하다”라고 하는가 하면 “돈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라”고 조언한다.
일반적으로 멋진 노년을 보내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말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얘기다. 어차피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일 터인데 왜 무덤까지 돈을 가지고 가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리어왕에 나오는 광대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겠다. “넝마 걸친 아비에게는 자식들이 눈을 돌리지만, 주머니 찬 아비에겐 자식들이 친절하지….”
내친김에 옛이야기 하나 더 들어보자. 7남매나 되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다 나눠 준 노인이 있었다. 이미 유산을 받아 버린 자식들은 이후 바쁘다며 아비를 찾지 않았다. 농사짓는 막내만이 그래도 가끔 닭백숙이나 호박죽을 쒀서 가져 올뿐이었다.
어느 날 노인은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너희 7남매 키우고 시집 장가 보내며 세간까지 내 주느라 내가 빚을 많이 졌다.” 아버지에게서 혹시나 남은 재산을 더 받을 수 있을까 기대하고 온 7남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노인은 “빚쟁이들한테 시달려서 더 이상 못 살겠다”며 “다음 달 보름에 와서 내게 보태 줄 금액을 적어 내고 돈은 내년 6월까지 마련해 달라”고 말한다.
이윽고 다음 달 보름, 5형제는 왔지만 딸 둘은 아예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았다. 세간을 가장 많이 가지고 나간 맏아들은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라며 200냥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둘째는 180냥, 셋째는 300냥, 넷째는 150냥을 적어 냈다. 세간을 가장 적게 받아 나간 막내가 적어 낸 금액은 형제들 중 가장 많은 1200냥이었다.
효도를 법으로 규정해서야
얼마 후 노인이 죽자 집안 어른들은 상주들을 앉혀 놓고 유언장을 집행했다. 광목 자루 다섯 개가 자식들에게 건네졌다. 맏아들의 자루에는 2000냥이 들어 있었다. 깜짝 놀랐다. 둘째는 1800냥, 셋째는 3000냥, 넷째는 1500냥, 막내는 1만2000냥을 받았다. 각자 적어 낸 금액의 10배였다. 딸년 둘은 물론 빈손이었다.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중인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는 재산을 미리 달라는 자식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30여 년간 두부집을 운영하며 아내 없이 3남매를 키웠는데 재산을 미리 증여해 달라고 요구하는 자식들.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이에 아버지는 자식들을 상대로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는 데 들어간 모든 비용을 갚으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물론 이는 이기적인 자식들을 교육하기 위한 마지막 고육지책이었을 것이지만.
효도를 법에 규정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놀랍게도 그 나라는 중국이다. 2013년부터 중국은 60세 이상 부모에게 의무적으로 정신적·금전적 지원을 하도록 한 노인권익보장법을 시행하고 있다. 또 부모와 따로 사는 자녀는 반드시 부모를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안부를 묻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마는 우리 또한 조만간 그리 되지 않으리라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설이 2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또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을 뵙기 위해 혹은 성묘를 하기 위해 고향을 찾을 것이다. 여러분의 부모님들께서는 모두 안녕들 하신지?
나무는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樹欲靜而風不止),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네(子欲養而親不待). 한 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往而不可追者年也), 한 번 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이, 부모님이신 것을(去而不見者親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