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 한 걸 알기나 할랑가∼”

영화 ‘명량’ 마지막 장면 속에서 처절했던 해전이 마침내 승리로 끝나자 판옥선 갑판 밑에서 혼신을 다해 노를 저었던 병사 한 명이 넋두리처럼 말한다.

울돌목의 극적인 승리는 빠른 물살을 이용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리더십 뿐만 아니라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선 이름없는 민초(民草)들의 헌신이 바탕이 됐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1597년(선조 30년) 음력 7월 경남 거제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하다시피 한 조선 수군은 불과 두 달 뒤인 9월 16일 해남∼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일본 함대를 격파하고 제해권을 되찾았다.

영화 ‘명량’의 흥행에 따라 진도군 군내면에 자리한 정유재란 순절(殉節)묘역과 왜덕산(倭德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유재란 순절묘역 초혼 묘=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따라 고군 농공단지 방향으로 10㎞가량 진행하다 보면 순절묘역에 닿는다. 북서방향의 울돌목을 바라보는 야산 기슭의 묘역에는 232기의 무덤이 있으며, 2001년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제216호)로 지정됐다.

울돌목 해전에서 전사한 진도출신 조응량-명신 부자(父子)를 비롯해 이름없이 임진·정유재란에 종군했던 현지 향민(鄕民)들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명량대첩후 조선 수군이 곧바로 신안 당사도로 후퇴하면서 진도는 상륙한 왜군에 의해 큰 희생을 치렀다.

향토사학자 박주언(69)씨는 순절묘역에 대해 “명량해전 뿐만 아니라 명량에 한 달여 앞서 벌어진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한 진도 주민들도 묻혀 있다”며 “시신을 못 찾으면 씻김굿을 하고 밤나무에 이름을 써서 묻는 초혼장(招魂葬)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수군 시신 묻어준 왜덕산=진도군 고군면 내산리 내동마을 동쪽의 야트막한 야산은 왜덕산(倭德산)으로 불린다. ‘왜군에게 덕을 베풀었다’는 의미를 띤 이곳은 왜 이런 이름을 얻었을까?

주민들에 따르면 울돌목 전투가 끝난 후 해류를 타고 마을앞 바닷가로 왜군들의 시신이 떠밀려오자 주민들이 시신을 거둬 묻어주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당초 100여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개간과정에서 일부 유실되고 현재 50여기가 남아 있다.

마을입구에서 만난 이무진(56)씨는 “지금은 방파제로 막혀있지만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는 바닷물이 마을앞 안통까지 들어왔다”면서 “선친으로부터 왜덕산 관련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왜덕산 존재가 외부에 알려진 때는 1990년대 중반 무렵. 1998년 8월 일본 임진왜란 연구회 회원 10여 명이 현지를 찾았고, 2006년 5월 일본 히구마 다케요시(히로시마 수도대학) 교수가 다시 현지를 답사하고 돌아가 언론매체에 기고하며 일본 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후 명량해전에서 전사한 일본 장수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고향인 일본 에히메(愛媛)현 주민들이 해마다 명량축제에 맞춰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전란 당시 적군인 왜군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이에 대해 향토사학자 박주언 씨는 “바닷가 사람들은 시신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바다에서 시신을 보면 당연히 건져내야 한다고 믿는다”며 민속문화적인 측면에서 분석했다.

이어 “왜덕산은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다. 세계 전사(戰史)에서 싸우던 적의 시신을 수습해 안장한 경우는 유래가 없다”며 “진도인들의 인간애, 휴머니즘을 상징하는 곳으로,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진도=박현영기자 h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