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대신 ‘이름’을 불러 주세요” 외국인 노동자 인권·안전 위해
2024년 11월 26일(화) 22:00
‘이름 없는 기계’ 멸시·핍박의 호칭에 산업재해 노출도 ‘빈번’
전남노동자권익센터, 내년부터 안전모에 ‘이름표 달기’ 추진

/클립아트코리아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광주·전남 산업현장에서 이름 대신 “야” 또는 “인마”로 불려오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소원이다.

26일 전남노동권익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내년 1월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안전모에 이름과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는 사업을 실시한다.

안전모 필수 착용 직종인 건설현장 등지에서 공용 안전모를 사용해 왔던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되찾고, 더 쾌적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국내 인력이 기피하는 이른바 ‘3D’ 업종에서 빈자리를 메우면서 산업 현장의 한 축을 떠맡고 있다.

행정안전부 외국인 주민 통계를 보면 전남지역 외국인 노동자는 지난해 11월 기준 2만 5626명이지만, 이주노동자 인권운동가들은 비등록 외국인까지 포함해 1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광주·전남지역 농어촌과 산업현장에 일한다.

하지만 그동안 이름 없는 외국인으로 간주돼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게 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산업현장에서 어른이 아이를 부르거나 같은 또래끼리 서로 부르는 말인 “야”로 불리면 그나마 낫다고 외국인 노동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름없이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이들은 존재 가치도 없고 그저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 여겨지기 일쑤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전남노동권익센터를 찾아 상담을 신청하며 고충을 토로한 베트남 출신 외국인노동자는 “일하다보면 내 이름이 아닌 ‘야’라고 불린다. 다른 동료들은 이름이 6글자 이상 넘어간다는 이유로 비속어로만 불려 정체성을 잃는 것 같다고 속상해 하곤 한다”고 말했다.

건설과 조선업 등 위험한 상황에도 자신을 부르는지 몰라 산업재해를 피하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한다는 게 센터의 전언이다. “야”라고 외치는데,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어서다.

실제 광주·전남의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로 다친 외국인 노동자는 241명(2019년)→258명(2020년)→259명(2021년)→256명(2022년)→289명(2023년)으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또 이름없이 생활하다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은 더 멸시를 받는다는 문제점도 있다.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받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인격적인 존중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센터는 내년도 활동계획으로 안전모에 ‘외국인노동자 이름표 달기’ 사업 계획을 전남도에 올릴 예정이다.

이 사업으로 공용으로 사용되던 안전모를 외국인 노동자들 각각에게 제공해 이들의 안전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거나 집어서’ 사용했던 그동안의 안전모와 달리 각자의 이름이 적힌 ‘개인 소유’의 안전모를 착용한다는 점에서 안전장구 착용을 강제 할수 있다는 점에서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은 “타국에서 힘들고 고된 일을 하며 핍박과 멸시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야기해보면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원한다”며 “안전모에 이름을 적고 이름을 불러줄 것을 당부하면 안전모 착용률도 높아지고 안전사고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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