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전문가들은 앞으로 100년 동안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6도 정도 상승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1℃ 상승하면 북극 얼음이 반년 만에 녹아 벵골만 주변의 수만 가구가 물에 잠기고, 허리케인이 남대서양을 강타하기 시작한다.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한 인류에게 지구가 보내는 경고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태풍은 더욱 사나워지고 있다. ‘한반도 태풍의 길목’ 가거도에서도 이런 적신호는 어렵지 않게 감지되고 있다.

◇ 태풍의 길목 가거도=지난 13일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36㎞, 흑산도에서 남서쪽으로 65㎞ 떨어져 있는 가거도를 찾았을 때, 마을 주민들은 손바닥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눈을 떼지 못했다. 쾌속선으로 4시간 30분이나 달려야 하는 이곳은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라고 불리지만 최근 점점 세지고 거칠어지는 태풍으로 주민들은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날 4호 태풍의 북상 소식에 주민들은 습관적으로 기상청 홈페이지에 접속해 태풍의 경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가거도에는 신용카드 체크기 하나 설치돼 있지 않을 정도로 외진 곳이지만 주민 대부분 스마트폰이 있다. 태풍이 곧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흔히 8∼9호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아 7호 이하의 태풍에는 관심이 적지만, 이곳 주민들은 모든 태풍이 가거도를 거쳐 가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태풍 경로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태풍 ‘무이파’로 파손된 방파제 복구 공사도 한창이지만 이날 태풍이 북상해 공사 관계자들도 공사를 중단해야 했다. 이 공사는 올 태풍에 대비해 방파제 인근에 있는 테트라포드를 옮겨 임시로 방파제를 감싸기 위함이다.



◇ 더욱 거세진 태풍=가거도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닿는 곳이 선착장이 있는 대리(가거1구)마을이며 면출장소, 우체국, 보건소, 학교 등 공공기관과 여관, 슈퍼마켓, 음식점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또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솟은 방파제도 가거도의 특징 중 하나다. 일본 쓰나미 당시, TV 화면에 등장했던 일본 해안의 거대한 방파제처럼 가거도에는 최고 높이 12m의 방파제가 서 있다.

480m 길이 이 방파제는 지난 1978년 착공 후 30년간 1325억원이 투입된 기록적인 건축물이다. 방파제 외부는 무게 64t 테트라포드(TTP·일명 ‘사발이’)가 감싸고 있다. 테트라포드는 파도를 잘게 부숴 방파제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자연의 경고는 인류가 수 십년 동안 공들여 만들어 놓은 견고한 방파제보다 강했다.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 때 방파제가 30m가량 무너진 데 이어 지난해 태풍 ‘메아리’와 ‘무이파’로 또 피해를 봤다. ‘무이파’ 때는 방파제가 220m나 부서지고 방파제 보호용 테트라포드 2000여 개가 유실됐다. 거세진 파도에 떠밀려 12m 높이의 방파제를 넘어온 테트라포드의 모습은 마을 주민들이 사진으로 남겨, 당시 TV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 지구온난화, 심해파 상승=가거도 방파제는 78년 착공 당시 설계파고 8m에 유속·수심 등을 감안해 높이 10m로 설계됐다. 설계파고는 쉽게 말해 방파제에 도착한 파도의 높이를 뜻한다. 이후 2000년 태풍 ‘프라피룬’ 때 방파제 64m가 유실되자 제방을 12m(설계파고 8.4m)로 높였다.

설계파고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에 내린 비의 양을 조사한 결과, ‘11년에는 ’80년대에 비해 일강수량 100㎜ 이상의 집중호우는 2.37배(43일→102일), 시간당 강수량 50㎜ 이상 집중호우도 2.3배(10일→23일)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0년간 평균기온이 0.74도 상승해 수증기 유입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 때는 하루에 870㎜의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이처럼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가거도 인근 심해파도 상승했고, 덩달아 설계파고도 높아진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심해파(H1/3)는 8.3m였는데 2011년 무이파 당시의 심해파는 11.3m였다.

심해파와 설계파고가 높아지면서 테트라포드를 90m 넓이로 쌓아 방파제를 보호하는 등 방파제 공사를 다시 할 계획이다.



◇ 태풍이 주는 ‘자연의 경고’=가거도 항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테트라포드는 당시 12m 높이의 방파제를 넘어 마을 바로 앞인 물양장까지 100m나 떠밀려왔다. 이곳 주민들은 지난해 태풍 ‘무이파’에 의해 부서진 테트라포드를 치우지 않고 10개월 동안 보관하고 있다.

태풍 복구 과정에서 방파제나 육지로 올라온 다른 테트라포드는 모두 재사용하기 위해 옮겨졌지만, 이 테트라포드는 주민의 뜻에 따라 물양장 한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다.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한 인류에게 던지는 ‘자연의 경고’를 보여주는 상징물로 간직하기 위해서다.

이 테트라포드는 더욱 거세진 태풍으로 가장 피해를 받고 있는 가거도 주민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하나의 가르침이다. 가거도 방파제를 보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이상 사나운 태풍이 불지 않도록 환경을 보호해야 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셈이다.

/가거도=오광록기자 kroh@kwangju.co.kr

※ 이 기획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