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들녘을 2시간 넘게 달려야 닿는 완도(莞島)는 섬(島)이 아닌 지 오래다. 지난 1969년 국도 13호선으로 육지와 연결된 지 40년이 넘었다.

반면, 여기에 속한 유인도만 54개, 무인도가 147개나 되는, 여전히 ‘섬’이기도 하다. 뭍과 연결되면서 여행객의 발걸음을 이어놓는 편리함에다 섬 만이 가진 신비로움마저 갖췄다는 얘기다. 특히 맑은 바다와 하늘, 인근 섬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게 본격적인 휴가철, 완도 갯길 여행의 묘미다.

남도 갯길 중 완도군이 걷기 좋게 정비한 구간은 ▲명사십리길(10㎞) ▲해안길(20㎞) ▲약산동백길(11㎞) ▲상록수길(20㎞) ▲경치좋은 길(17.5㎞) ▲노을길(8.5㎞) ▲슬로길(42.195㎞) 등 7개 구간으로, 길이만 130㎞에 이른다.

‘남도 갯길’ 이라는 이름만 내걸었을 뿐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해놓다시피 한 다른 지역에 견주면 완도 갯길은 걷기에 편안하다.

주요 지점에 현 위치, 도착지 등을 적은 남도갯길 안내판을 설치해 길을 ‘찾아 가야’ 하는 불편함도 없는데다, 차도와 분리된 해안 도보길이 많다는 점이 여름 탐방로로 제격이다.

여름 휴가철을 감안해 택한 구간은 명사십리길. 신지면 송곡(松谷)리 강독마을에서 시작해 상산(해발 324m)을 올랐다가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10㎞ 구간이다.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신지대교, 코끼리를 닮았다는 상산(象山), 커다란 학 형상의 노학봉(해발 225m) 능선, 수백년 된 해송 300여 그루가 즐비한 동고마을의 방풍림 등 ‘신지팔경’을 골고루 체험할 수 있는 탐방로이기도 하다. 특히 앞뒤로 막아선 산줄기가 없어 탁 트이고 다도해(多島海) 관문이란 이름에 걸맞게 올망졸망 떠있는 수많은 섬들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섬산행의 독특한 풍광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다. 목적지까지 죽자고 걷는 게 아니라면 명사십리 해수욕장까지 4∼5시간은 잡아야 한다.

기점은 신지대교부터 잡았다. 차량을 주차해놓은 뒤 신지대교 휴게소 뒤편으로 남도갯길 표지판이 설치된 지점부터 걷는 게 좋다. 조금 걷다보면 2005년 신지대교(길이 1100m)가 놓인 뒤 신지면의 관문 역할을 한 강독 마을이 나타나는데, 끝없는 바다가 마을 안 마당으로 들어온 듯 한 느낌이 묻어난다.

강독 마을은 지금도 풍어와 무사고를 기원하는 ‘갯제’를 지내는 마을 중 하나다. 신지면을 둘러싼 바다는 개펄, 모래, 암반으로 이뤄져 자연산 굴과 고막이 많았고 김, 미역, 톳 양식에 가두리 양식장을 하는 주민들도 많아 한때는 ‘넙치면’이라고 불렸을 정도다.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조성된 쉼터. 본격적 여름 휴가철이면 100만명이 넘게 몰리면서 빈 자리가 없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자식들을 먹여살린 주민들이 많다 보니 ‘물 밑 용왕님네, 청산, 노화, 고금, 약산 … 문어, 낙지는 강독 갯바탕으로 다 오게 해주시오’라며 갯제를 치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정약전(丁若銓)도 조선시대 완도 송곡으로 귀양온 뒤 눈만 뜨면 보이는 게 바다고 만나고 접하는 게 어부들의 고기잡이 생활인 탓에 점차 어종에 관심을 갖게 됐고 훗날 흑산도 유배생활을 거치면서 ‘자산어보’ 를 저술하는데 계기가 됐다는 얘기가 지역민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강독마을을 지나 예전 물양장 역할을 했던 물하태를 거쳐 상산 정상에 올라 맞는 여름 바람은 청량감이 대단하다.

전남도 보건환경연구원의 피로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산소 음이온이 대도시보다 50배 정도 많이 발생하는 지역이라는 발표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상산 정상에 오르는 게 벅차다면 숲과 바다를 끼고 상산 둘레를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

완도군은 이 구간 탐방로를 알리기 위해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클린 마운틴 등산대회’를 열기도 했다.

차분한 등산로를 걷는 게 심심하다 싶을 때면 나타나는 게 명사십리(鳴沙十里) 해수욕장 구간이다. 신지면 주민들이 풍광이 뛰어난 신지 8경(景) 중 으뜸으로 꼽는 해수욕장이다. 폭 150m, 길이 3.8㎞ 규모의 은빛 백사장은 ‘모래가 파도에 씻겨 우는 소리가 십리에 걸쳐 들린다’고 해 ‘울모래등’으로도 불린다. 지난 1995년 전국 5대 해수욕장으로 선정됐고 신지대교 건설 이후에는 연간 관광객만 100만이 넘는 지역 최고의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해변길을 따라 적당히 달궈진 해변의 모래가 발바닥을 푸근히 감싸는 느낌을 1시간 넘게 체험하는 게 지루하다면, 백사장 한 켠 1㎞ 가량 솔숲을 따라 이어진 나무데크 산책로를 택하는 것도 좋다. 최근 조성된 ‘해조류 스파랜드’ 뒷길로 이어지며 파도소리와 솔숲을 걷는 ‘여유’외에 터져나갈듯한 해변의 북적거림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명사십리 해변을 지나면 굴이 해안 돌에 흰 국화처럼 가득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석화포 선창과 산림이 병풍처럼 둘러싸 조용하고 아늑한 안 동네라는 내동(內洞) 마을을 지나면 탐방로의 끝인 동고해수욕장에 이른다. 이 일대는 미개통 구간이 일부 남아 있어 다소 불편한 게 흠이다. 수백년 된 해송 300그루가 방풍림을 조성한 동고해수욕장의 경우 수백년된 해송 300그루가 방풍림을 이루고 있어 “한여름에도 옷길을 여밀 정도로 시원하다”고 한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