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갯길을 걸으면 다리는 아플지 모르지만 눈에는 호사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그림 같은 해안을 따라 섬 한 바퀴 돈다고 하면. 신안군 증도는 지난해 4월 사옥도를 연결하는 증도대교가 나면서 많은 이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선정된 이곳에는 문화생태 탐방로 중 하나인 ‘증도 모실길’이 있다. 이 길은 섬 주민들이 마실을 다니거나 바다와 갯벌을 오가던 길로 느리게 걸어야 제 맛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길=총 길이 42.7㎞의 모실길은 증도대교를 건너자마자 시작된다. 해안선을 한 바퀴 도는 일주 코스여서 시작점이 곧 종점이 된다.

증도대교 주차장에서 구분포와 염산포구를 거쳐 해저유물발굴비까지 이어지는 1구간 ‘노을이 아름다운 사색의 길’(10㎞)은 증도가 숨겨 놓은 보석 같은 길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서너 번 넘어야하는 힘든 길이지만 전형적인 어촌마을의 풍경과 시원한 바다를 벗하며 걸을 수 있어 한적하고 호젓한 구간이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어미소와 송아지 한 쌍이 탐방객을 반긴다.

숭어낚시가 잘됐다는 염산포구를 지나 해안길로 다시 1시간, 나룻구지에 이른다. 나룻구지는 예전 파시가 형성된 곳으로 주막집이 있어 기생들이 노래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나룻구지를 지나 기암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일주도로는 장관이다. 탁 트인 지점에서 내다보면 도덕도, 호감섬, 대섬, 부남섬 등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보는 황금빛 노을이 그리 아름답다는데 머릿속으로 그릴 수밖에.

증도의 명물 짱뚱어 다리.

하트 모양 해변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증도에서 최초로 파시가 시작되었다는 ‘목넹기’이다. 이곳 증도를 ‘보물섬’으로 알린 곳이다. 당시 중국 송·원나라 시대 유물 2만3000여 점이 발굴되었는데 한·중·일 고고학 연구에 길이 빛날 업적은 차치하더라도 무역선에 실려 있던 234가지 800만 개에 이르는 구리동전의 값어치만 따져도 발굴 당시의 화폐가치로 100억 원이 넘었다니 입이 쩍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방축마을 해안 언덕에는 이를 ‘해저유물 발굴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배 모양을 살려 만든 유물관도 자리해 있다.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 길=독살체험장을 거쳐 오산마을, 솔무등공원까지 이어지는 2구간 ‘보물선 순교자 발자취의 길’은 도로여서 조심해서 걸어야한다.

대단도 앞 얕은 바다에 만들어진 ‘만들독살’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석방렴(石防簾)으로 불리는 독살은 조석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어로방식. 밀물을 타고 독살 안으로 들어왔다가 썰물 때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고기들을 손으로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

배 모양으로 만든 신안 해저유물 발굴 기념관.

2구간은 종교의 숭고한 뜻과 접할 수 있는 길이다. 확 트인 해변길에서 문중경 전도사 순교지를 만날 수 있다. 문준경(1891∼1950년) 전도사는 한국의 몇 안 되는 여성 순교자로 신안군 일대 여러 섬을 나룻배를 타고, 갯벌에 빠져가며 전도활동에 열심이다 한국전쟁 중 좌익세력에 의해 이곳 솔무등(터진목)에서 순교했다. 이곳 주민 90% 이상이 개신교 신자이고 타종교 없이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섬 ‘천국의 섬’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문준경 전도사 순교비를 지나면 증도의 명물 ‘짱뚱어다리’가 나타난다. 증동리 마을과 우전해변을 잇는 472m의 이 다리는 광활한 갯벌과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다리 중간쯤에는 갯벌로 내려가는 계단이 설치돼 썰물 땐 갯벌 체험도 가능하다. 물이 차오르면 바다위로 가로지르는 낭만적인 다리로 변한다.

이곳 안쪽이 유네스코 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갯벌인데 신안군은 매년 이 일대에서 신안섬갯벌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열린다.

◇바닷 바람·솔 향기 가득한 자연의 길=섬갯벌축제행사장에서 시작해 우전해수욕장(한반도 해송숲)을 지나 엘도라도리조트가 있는 신안갯벌센터에 이르는 3구간 ‘천년의 숲길’은 모실길의 하이라이트로 해안길을 따라 걷는 5㎞ 남짓의 길이다.

백사장 길이가 4㎞에 달하는 우전해수욕장은 짚 파라솔과 선베드가 줄지어 있어 마치 남태평양의 유명 휴양지를 연상시킨다.

50년 전 거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90ha에 이르는 소나무숲은 증도의 또 다른 명물이 됐다. 숲에는 50∼60년생 소나무 10만여 그루가 들어서 있다. 방풍림으로 조성한 숲이 우연히 한반도 모양을 닮아 ‘한반도 해송숲’이라 이름 지어졌다.

해변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산책로를 조성했는데 모래의 감촉을 느끼며 맨발로 걷기 좋다. 길을 걷는 동안 저절로 사색에 잠기게 하는 ‘철학의 길’도 있고, 온갖 시름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길’도 있다. 쉬어가는 길 중간에 세워진 프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 와 곽재구 시인의 ‘전장포 아리랑’ 시비도 인상적이었다.

정읍에서 왔다는 한 여행객은 “해안에 옮겨 논 삼림욕장에 온 기분”이라며 “아름답고 환상적인 묘한 매력을 지닌 길이었다”며 소녀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산책로를 벗어나 잠시 해변으로 내려가도 좋다. 고운 모래를 만져보고 게와 조개, 소라 껍데기와 눈 마주쳐 보는 것도 즐겁다.

‘망각의 길’을 빠져나온 길은 다시 ‘신안갯벌센터 & 슬로시티센터’와 연결되며 군데군데 자전거 길과 전기자동차 길로 이어져 섬을 돌아 볼 수 있다.

/김대성기자 bigkim@kwangju.co.kr

/서부취재본부=조완남기자 wncho@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