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고...갯길 위 '나를 만나는 시간'
2011년 06월 13일(월) 00:00 가가
〈21 〉 영광 칠산 갯길(2)
동백마을 ∼ 백바위 해수욕장 백합길
끝없는 제방길 따라 휘적휘적 게으른 30㎞
생태 숨쉬는 갯벌, 삶 진지하게 보라 가르쳐
동백마을 ∼ 백바위 해수욕장 백합길
끝없는 제방길 따라 휘적휘적 게으른 30㎞
생태 숨쉬는 갯벌, 삶 진지하게 보라 가르쳐
영광군 백수읍 답동 석구미에는 해변 모래에 알을 낳기 위해 오르는 거북이 형상을 한 이색적인 바위(왼쪽)가 눈길을 끈다. 백수 해안가에는 ‘거북바위’와 ‘모자(母子)바위(혹은 할매바위) 등 기묘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예로부터 영광은 쌀, 소금, 목화, 눈이 많아‘4백(白)’의 고장이자 ‘옥당(玉堂) 고을’, ‘호불여영광’(戶不如榮光)으로 불려왔다. 원님의 임기가 만료되면 정3품 당상관으로 영전하는 경우가 많았고, 1889년 나주·순천에 이어 3번째로 호수가 많아 흥선대원군이 ‘호수(戶數)는 영광만한데가 없다’고 말한데서 유래한 이러한 별칭은 옛시절 영광이 인심 좋고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장수 상징하는 거북바위 많아=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영광 백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다 보면 꼭 한번쯤 들러 쉬어가는 곳이 백암 해안전망대이다. 일몰과 함께 서해 바다를 조망하기 좋은 곳에 자리한 까닭이다. 장마인 요즘은 수평선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다와 하늘 빛깔이 뿌였다.
‘백합(白蛤) 길’은 이곳에서 시작해 동백마을∼ 답동 해수찜∼ 분등∼ 하사리 간척지∼천일염전을 거쳐 백바위 해수욕장까지 30여 ㎞에 이른다. 백합은 모양이 예쁘고 껍질이 꼭 맞게 맞물려 있어 ‘부부화합’을 상징하는 조개로 영광·고창·김제 등지 갯벌에서 많이 생산된다.
전망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동백마을은 마을형태가 동백꽃처럼 생겼다 해 마을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은 지난 2005년 상영돼 전국 310만 명의 관객을 동원, 흥행에 성공한 영화 ‘마파도’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막상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주민을 만나기는 어렵고 동화풍으로 장식한 펜션들을 찾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어 호젓하고 외진 영화속 마을풍경을 기대한 도보객이라면 변화된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동백마을에서 15분쯤 걷다 보면 말라 죽어가는 노송(老松) 한 그루와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 멀리 갯벌이 한눈에 가득 찬다. 보리밭이 끝나면 다시 펜션 촌이 이어지고 석구미 해수찜에 닿는다. 산허리를 감싸도는 시멘트 포장길이 바다 가까이 내려서며 ‘바다가 마당이나 마찬가지’인 답동(沓洞) ‘석구미’이다. 이곳은 100여m 길이의 작은 해수욕장이 있고 끝에는 두꺼비와 어미 거북이 형상의 널찍한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석구미 해수찜을 운영하고 있는 이건수(53)씨는 “거북이가 알을 낳으러 모래밭에 올라오는 형상으로 그만큼 조용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이라며 “거북바위에서 ‘석구미’라는 지명도 유래했다”고 말했다.
석구미 해수찜은 유황 등 광물질이 많이 섞인 돌을 달궈 바닷물에 넣어 찜질을 하는 재래식 방식으로 산후조리 등 부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5대째 이어서 하고 있기 때문에 해수찜 역사는 무려 200여년을 헤아린다.
백수해안에는 석구미 뿐만 아니라 백암 해안전망대 밑, 황해민박 인근 등 ‘거북바위’가 무려 3개나 된다. 거북은 장수와 성실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지역민들의 간절한 바램이 투영돼 있는 셈이다.
석구미 해수찜에서 약수리 제방으로 이어지는 도보길은 바닷물이 빠졌을 때 걷는 것이 좋다. 해안전망대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거리.
약수리 쪽에서 흘러나오는 하천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앉아 잠시 쉬며 뻘에 눈을 돌리면 갯벌생물들의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일반 갯벌에서 보기 힘든 농게가 이곳에는 지천이다. 사람의 인기척에 갯벌 구멍 속으로 재빨리 숨었다가 살금살금 기어나와 갯벌을 부산나게 오가는 농게들의 모습은 이채롭기만 하다.
◇갯벌과 논이 잇닿은 제방길= 약수리부터 하사리까지는 간척사업으로 인해 조성된 곳인지라 갯벌과 논을 구분하는 선을 따라 끝없이 걸어야만 한다. 바다를 막은 제방길인만큼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땀을 식힐 수 있는 손바닥만 한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 한그루조차 없다.
한쪽 간척지논에서는 트랙터를 이용한 논갈이가 한창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이앙기를 이용한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트랙터 주변에는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와 지렁이 같은 먹잇감을 사냥 했다.
이곳은 논 한 필지가 6마지기(1200평=3967㎡)에 달할 정도로 큼지막하게 구분돼 있어 기계영농이 아니면 한해 농사가 불가능해 보였다. 백수읍은 ▲간척농지 790ha ▲염전 225ha 등 광활한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제방길은 걷는 내내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멸종위기종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 323호로 지정된 황조롱이 한 마리가 날개짓 한번 없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호버링(hovering= 공중 정지비행)을 즐기고 있었다.
하사리 분등마을 일원은 이러한 바람 덕분에 지난 5월 지식경제부 주관의 신재생에너지(풍력) 실증단지(test bed)로 지정됐다. 하사리 간척지는 영광의 대표적인 간척지쌀 생산은 물론 새로운 산업화의 토대로 떠오르고 있다.
분등마을을 지나 제방길을 걷다 보면 워낙 넓은 지역인 까닭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더욱이 직선 제방길여서 제대로 된 안내지도 한장 없이 도보 길에 나서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자기위치에 대한 불안감도 몰려온다. 허허 벌판에서 최첨단 ‘아이패드’를 꺼내들어 3G 상태에서 지도서비스를 켠다. 잠시후 위성사진에서 점멸하는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기 존재감에 대한 안심과 함께 앞으로 가야 할 아득한 길의 거리감에서 새삼 절망한다. 하사리 염전지대는 서해 쪽으로 불쑥 머리를 내민 지형이어서 도보길 중간 중간 안내판이 있으면 도보객들에게 큰 도움이 될 듯 싶다.
하사리 천일염전 지대를 지나 백산교를 건너 염산면 두우리로 방향을 잡는다. 이곳은 2015년께에 백수와 염산을 잇는 ‘불갑천 대교’가 완공될 예정이어서 물류이동과 도보여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백산교 인근 신성리 포도단지는 포도원이 밀집해 있어 포도수확과 와인 만들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염산면 두우리는 백바위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정진삼 백수읍장은 “서해안 칠산앞바다 갯벌은 ‘세계 5대 갯벌’로 손꼽힌다”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오는 7월 30∼31일 백바위 해수욕장 일원에서 ‘제 3회 영광 갯벌 마라톤 축제’를 개최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서부취재본부=조익상기자 ischo@kwangju.co.kr
‘백합(白蛤) 길’은 이곳에서 시작해 동백마을∼ 답동 해수찜∼ 분등∼ 하사리 간척지∼천일염전을 거쳐 백바위 해수욕장까지 30여 ㎞에 이른다. 백합은 모양이 예쁘고 껍질이 꼭 맞게 맞물려 있어 ‘부부화합’을 상징하는 조개로 영광·고창·김제 등지 갯벌에서 많이 생산된다.
석구미 해수찜을 운영하고 있는 이건수(53)씨는 “거북이가 알을 낳으러 모래밭에 올라오는 형상으로 그만큼 조용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이라며 “거북바위에서 ‘석구미’라는 지명도 유래했다”고 말했다.
석구미 해수찜은 유황 등 광물질이 많이 섞인 돌을 달궈 바닷물에 넣어 찜질을 하는 재래식 방식으로 산후조리 등 부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5대째 이어서 하고 있기 때문에 해수찜 역사는 무려 200여년을 헤아린다.
백수해안에는 석구미 뿐만 아니라 백암 해안전망대 밑, 황해민박 인근 등 ‘거북바위’가 무려 3개나 된다. 거북은 장수와 성실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지역민들의 간절한 바램이 투영돼 있는 셈이다.
석구미 해수찜에서 약수리 제방으로 이어지는 도보길은 바닷물이 빠졌을 때 걷는 것이 좋다. 해안전망대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거리.
약수리 쪽에서 흘러나오는 하천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앉아 잠시 쉬며 뻘에 눈을 돌리면 갯벌생물들의 새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일반 갯벌에서 보기 힘든 농게가 이곳에는 지천이다. 사람의 인기척에 갯벌 구멍 속으로 재빨리 숨었다가 살금살금 기어나와 갯벌을 부산나게 오가는 농게들의 모습은 이채롭기만 하다.
◇갯벌과 논이 잇닿은 제방길= 약수리부터 하사리까지는 간척사업으로 인해 조성된 곳인지라 갯벌과 논을 구분하는 선을 따라 끝없이 걸어야만 한다. 바다를 막은 제방길인만큼 지친 발걸음을 멈추고 땀을 식힐 수 있는 손바닥만 한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 한그루조차 없다.
한쪽 간척지논에서는 트랙터를 이용한 논갈이가 한창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이앙기를 이용한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트랙터 주변에는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와 지렁이 같은 먹잇감을 사냥 했다.
이곳은 논 한 필지가 6마지기(1200평=3967㎡)에 달할 정도로 큼지막하게 구분돼 있어 기계영농이 아니면 한해 농사가 불가능해 보였다. 백수읍은 ▲간척농지 790ha ▲염전 225ha 등 광활한 농지를 보유하고 있다.
제방길은 걷는 내내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멸종위기종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 323호로 지정된 황조롱이 한 마리가 날개짓 한번 없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호버링(hovering= 공중 정지비행)을 즐기고 있었다.
하사리 분등마을 일원은 이러한 바람 덕분에 지난 5월 지식경제부 주관의 신재생에너지(풍력) 실증단지(test bed)로 지정됐다. 하사리 간척지는 영광의 대표적인 간척지쌀 생산은 물론 새로운 산업화의 토대로 떠오르고 있다.
분등마을을 지나 제방길을 걷다 보면 워낙 넓은 지역인 까닭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더욱이 직선 제방길여서 제대로 된 안내지도 한장 없이 도보 길에 나서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자기위치에 대한 불안감도 몰려온다. 허허 벌판에서 최첨단 ‘아이패드’를 꺼내들어 3G 상태에서 지도서비스를 켠다. 잠시후 위성사진에서 점멸하는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기 존재감에 대한 안심과 함께 앞으로 가야 할 아득한 길의 거리감에서 새삼 절망한다. 하사리 염전지대는 서해 쪽으로 불쑥 머리를 내민 지형이어서 도보길 중간 중간 안내판이 있으면 도보객들에게 큰 도움이 될 듯 싶다.
하사리 천일염전 지대를 지나 백산교를 건너 염산면 두우리로 방향을 잡는다. 이곳은 2015년께에 백수와 염산을 잇는 ‘불갑천 대교’가 완공될 예정이어서 물류이동과 도보여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백산교 인근 신성리 포도단지는 포도원이 밀집해 있어 포도수확과 와인 만들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염산면 두우리는 백바위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정진삼 백수읍장은 “서해안 칠산앞바다 갯벌은 ‘세계 5대 갯벌’로 손꼽힌다”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오는 7월 30∼31일 백바위 해수욕장 일원에서 ‘제 3회 영광 갯벌 마라톤 축제’를 개최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
/서부취재본부=조익상기자 ischo@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