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다·호수 3경(境)의 빼어난 자연경관에 삼보향(三寶鄕)의 별칭까지 붙은 보성(寶城)에 들어서면 차분해진다. 넓게 펼쳐진 바다와 먹을 게 가득한 청정해역 득량만, 녹색으로 물들인 차밭에는 자연스러움이 넘쳐흐른다. 인공미가 곁들여지지 않은 남도 향취가 물씬 풍겨난다.

보성군이 한창 조성중인 생태문화탐방로(다향길)도 고즈넉하게 둘러볼만한 여행지가 가깝게 연결되면서 지루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성군은 회천면·득량면 일대에 4개의 명품 걷기 코스를 ‘다향길’이라는 이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4개의 코스 중 2 코스는 보성군 회천면 율포해수욕장∼금광마을∼서당리까지 해안을 따라 7.7㎞가 이어진다. 맨발로 백사장을 걷다가, 바닷가를 따라 만들어진 1.6㎞의 지압보도를 거치고, 바지락과 작은 게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개펄도 걷는다. 일부 구간은 차도와 분리된데다, 어촌 마을을 끼고 도는 길을 연결하면서 교통량도 많지 않고 호젓하다. 보성군은 향후 여행객들을 위해 감자·쪽파캐기 체험 및 경운기 타기 체험 활동을 포함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해안선을 따라 마주보고 늘어선 고즈넉한 어촌 마을의 풍경은 해변길을 걷는 ‘덤’이다.

이 구간은 득량만 뻘밭이 펼쳐진 율포 해수욕장에서 시작된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닌 탓에 이맘때면 터져나갈듯한 해변의 북적거림도 피하면서 멈춘 듯 고요한 득량만 바다를 접할 수 있다.

맨발을 내디디면 적당히 달궈진 해변의 모래가 발바닥을 푸근히 감싼다. 이 느낌은 1시간 남짓 해수욕장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굳이 눈을 지그시 감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파도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도심에서 온 어린이들은 엄마 아빠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갯벌을 뛰어다닌다. 5월이지만 적나라하게 쏟아지는 햇볕을 참아내기 쉽지 않다는 게 다소 흠이다.

해변 백사장길이 지루하다 싶을 때쯤 나타나는 길이 지압보도다. 오돌토돌 잔돌이 깔려있는 지압보도는 해안선을 따라 무려 1.6㎞에 따라 이어진다. 차량이 다니지 않는데다, 오른쪽에는 뻥 뚫린 바닷가가 펼쳐지고 왼쪽으로는 주민들이 심어놓은 감자밭이 보인다. 지금 당장 트랙킹족들을 맞이하기는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을 눈치챘을까.

다향길을 둘러본 보성군 관계자는 “정비 공사가 마무리되는 2012년까지는 해안가를 따라 쉼터, 나무다리 등을 조성하고 종합안내판도 설치하는 한편, 장미넝쿨 조성이 완료돼 누구나 걷고 싶은 명품 걷기 코스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데군데 끊어진 길을 정비하고 전망대 설치 공사도 한창 진행중이다.

바닷가를 따라 호젓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에만 다향길의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길을 걷다보면 금강(金江)·석간(石間)·서당(書堂) 등 바닷가 안쪽에 숨겨져있던 작은 어촌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바다에 기대 사는 소박한 어촌 마을 주민들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접할 수 있는 구간이다. 운이 좋아 인정 많은 주민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도심 식당에서 한 마리당 1만원을 줘야 먹어볼 수 낙지를 3500원에 푸짐하게 살 수 있는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금강마을 앞 방파제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1000개가 넘는 통발을 수선하던 김동준(70)씨도 간만에 만난 낯선 외지인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풀어냈다. “예전에는 낙지가 참 많았는데…”라며 한때 200명이 훨씬 넘던 마을, 온갖 해산물로 ‘풍요롭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말이다.

여행객에겐 낭만적인 바닷가지만 수십년 태를 묻은 주민들에겐 백사장, 개펄, 그 너머 검푸른 바다가 모두 치열한 삶터다. 바닷물이 빠지면 넓게 드러났다가, 바닷물이 들어오면 모습을 감추는 개펄에서 조개와 바지락을 캐고, 배 타고 나가 통발을 던져 낙지를 잡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았다. 나이든 노인의 새까만 이마와 주름살은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생존을 위해 바다에 기대고 살면서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친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마을 뒤쪽엔 으레 손바닥만 한 밭들이 붙어 있고 감자가 자란다. 바다에 나가지 못할 때 주민들이 이렇게 농사일을 하며 새끼들을 키웠다.

이 구간은 3시간이면 넉넉하게 둘러볼 수 있다.

이외 보성군은 차소리문화공원주차장∼봇재다원∼영천제∼정응민생가∼제 2다원∼팽나무외줄기군락지∼명교리해수욕장∼율포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1코스(16.5㎞), 서당리∼공룡알화석지∼선소어촌체험장∼비봉공룡공원으로 이어지는 3구간(9㎞), 공룡공원∼원곡마을∼득량만 방조제로 이어지는 4구간(9㎞) 등을 10억을 들여 2012년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보성군은 또 바다와 사철 푸른 녹차밭, 감자밭이 어우러진 코스(1코스), 공룡생태체험 공간(3코스), 갈대숲과 노을을 감상하고 ‘보성바다 별빛동행’이라는 야간 걷기대회 개최(4코스) 등 구간별 테마를 정해 조성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보성군 환경수자원과 배선봉씨는 “탐방객이 걸으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곳곳에 쉼터를 조성하고 차 만들기, 바지락캐기·소리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다향제, 소리축제 등 지역축제와 연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길 조성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