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장구목 향가리로 이어지는 물길은 섬진강에서도 옛 정취가 살아있는 길이다. 섬진강 문학마을길 2구간인 구미마을∼구암정∼어은정∼적성교∼향가(약 18km)코스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가며 아름다운 풍광과 구수한 이야기를 낳고 있다.

특히 이 구간은 강을 중심으로 구암정, 어은정 등 조선시대의 정자가 산재해 있고, 구릉과 산이 어울러져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강물따라 숨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길=장구목에서 구미마을로 가는 길은 편안하고 호젓한 오솔길이다. 강변을 따라 마을 가는 길에 마음도 차분하게 흘러간다.

천천히 걷다가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눈앞에 논이 펼쳐지고 순창 동계면 구미(龜尾)마을 입구에 이른다. 마을 입구에 거북이 모양의 자연석이 있고, 남근석이 나란히 마을을 지키고 서 있다. 거북바위에는 이 마을의 유래담이 전해온다.

마을 너머에 취함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매일 구미마을에 와서 시주를 해갔단다. 스님이 가만 보니 거북이 꼬리가 마을을 향하고 있어 마을은 잘 살고, 절은 빌어먹는 게 아닌가 생각되어 거북이 꼬리를 홱 돌려서 절 쪽으로 해놓았단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절이 번성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눈치를 채서 거북이 꼬리를 마을 쪽으로 돌려놓으면 밤중에 절에서 또 돌려놓고 자꾸 되풀이 싸움을 하게 되었단다. 그러다 스님이 화가 나서 지팡이로 거북이 머리를 내리치니까 똑 부러져버렸다고. 그 뒤 절은 망해서 없어져 버렸고, 마을은 그럭저럭 잘 살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무량산(650m)이라는 큰 산 아래 분지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남원 양(楊)씨가 600여 년간 집성촌을 이룬 명당이다. 선조들은 이 마을의 터를 풍수상 ‘금귀몰니’(金龜沒泥·금거북이가 꼬리를 감춘 형상)’의 길지로 여기고 수 백 년을 평온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장수마을로 알려진 이곳은 언론에 장수의 원천으로 보고된 630년 넘은 특별한 우물이 소개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정자에 앉아 시주(詩酒)에 취해볼까=강이 만들어낸 풍경은 자연스럽게 정자를 세우게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품어 보려는 마음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구암교 바로 옆으로 난 강둑을 따라가면 구암정이다. 안내판이 따로 없어 지나치기 쉽다. 구암 양배의 학문과 덕망을 추모하기 위해 1898년에 세운 정자라고 한다. 양배는 아우와 함께 이곳에서 평생 고기를 낚으며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섬진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잠시 쉬니 새순이 트는 소리, 꽃이 피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을 듯하다.

강은 다시 길을 열어 어은정 앞에 이른다. 전북 문화재 자료 제132호인 어은정은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해 영광군수, 병조정랑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어은 양사형(1547∼1599년)이 지은 정자이다. 처음에는 영하정이라 이름지었다가, 후손들이 어은정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정작 주변에는 100년은 족히 넘은 듯한 백일홍 수 십그루가 심어져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아름다운 강변을 내려다 보며 시주(詩酒)에 취했을 선연들의 모습이 선하다.

◇꽃여울, 달여울 강가의 아름다운 마을=강은 다시 속도를 내어 작은 들판을 향해 내달린다. 그러면서 점차 폭을 넓히고 유량도 많아진다. 어은정에서 적성교, 유촌대교에 이르는 강변은 연둣빛 버드나무와 청명한 하늘, 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적성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줄곧 책여산(冊如山·330m)을 보며 걷는 길이다. 산의 모습이 책을 쌓아놓은 것 같다고 하여 책여산. 바위들이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