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추억과 그리움 휘도는 ‘시인의 길’
2011년 04월 18일(월) 00:00 가가
〈14 〉 섬진강 문학마을길
임실 물우리∼순창 장구목
임실 물우리∼순창 장구목
섬진강 길은 자연과 하나 되는 길이다. 낭창낭창 휘어진 버드나무, 연둣빛 신록이 가득한 길은 걷다 보면 절로 시인이 될 것같다. /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강은 그리움을 갖고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섬진강은 특별하다. 여느 강물처럼 큰 도시를 지나는 것도 아니고 큰 들을 지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만그만한 들과 산, 작은 마을들을 굽이굽이 흐르고 휘돌아 돈다. 그 어느 강보다 사람들의 마을과 가까이 있으며 숱한 추억과 아름답고 애달픈 전설,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며 흐르는 강이다.
강은 또 길로 이어진다. 장장 223.86㎞에 이르는 강은 육백리(약 240㎞)길과 어깨를 견주며 나란히 흐르고, 마을을 낳고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언제나 그리운 섬진강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제격이다. 전북 임실과 순창, 곡성으로 이어지는 40㎞의 이 길은 ‘섬진강 문학마을길’이라는 이름으로 가꾸어 지고 있다.
이 길의 시작은 회문산 자락 강이 휘돌아가는 지형이란 뜻에서 비롯된 ‘물우리’마을에서다. 바위로 된 천연의 문이 있어 ‘회문’이라고 불리는 회문산(837m)은 4㎞에 걸쳐 뻗어 있는 반석 같은 웅장한 바위들과 항상 구름에 잠겨있는 높고 우뚝 솟은 봉오리가 우람하다. 이곳은 지형적인 요새로 구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였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남부군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옥정호를 빠져나온 섬진강 물줄기는 임실군 일중리에서 회문산 줄기에서 흐른 구림천과 합쳐져 장산리 앞을 지난다.
장산리로 향하는 길은 자연과 하나 되는 길. 매화가 앞 다퉈 꽃망울을 터뜨리고, 낭창낭창 휘어진 버드나무에는 연둣빛 신록이 가득하다. 비 온 뒤끝이라 하늘은 청명했고 강물은 조잘조잘 거리며 걷는 이의 발걸음에 리듬을 맞추어 주었다.
40여 분을 걷으니 ‘섬진강’ 연작시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의 고향 덕치면 진뫼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의 강 건너에 길게 뻗은 산자락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길 장(長) 메 산(山), 긴메를 주민들이 진메라 불러 진뫼마을이 됐다.
마을 앞에 자리 잡은 정자나무가 정겹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제13회 풀꽂상을 받은 늙은 정자나무, 그 옆에 김용택 시인이 30여 년 전에 직접 심었다는 작은 정자나무도 다소곳이 서 있다. 연둣빛 새순을 틔우며 활기찬 ‘희망의 봄’을 선사하는 정자나무는 걷는 이들의 마음을 풋풋하게 해주고 있었다.
◇연둣빛 신록 가득한 시인의 길=진뫼마을에서 강 따라 이어지는 천담마을까지 4㎞ 구간은 김용택 시인이 예전 천담분교(지금은 수련원으로 쓰고 있다)로 출·퇴근 하던 길이다.
시인이 ‘천국의 길’이라며 “눈곱만큼도 지루하지 않고 순간순간 계절계절이 즐거웠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고 극찬했던 그 길이다. 길가에는 김용택 시인의 ‘천담마을 가는 길’이라는 시와 길의 내력이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산굽이를 돌아가는 강물을 따라 여러 사람들이 오래오래 걸으니, 세상으로 가는 길이 생겼더라. 그 길에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겨울 와 다시 봄이 오는 동안 해와 달이 수도 없이 지나갔으니, 길이 아름다워졌더라. 그 길에 다시 꽃과 나무를 심고 그 길을 ‘시인의 길’이라 이름 짓고 시 한 편을 여기 적어 두니, 사람들아! 이 나무와 꽃과 산과 강물과 하늘을 보며 그것들과 한 몸이 되어 이 길을 천천히 걸으라. 시인이 되어 보라! ”
‘시인이 되어 보라’는 권유가 아니더라도 이 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고즈넉한 정취를 접하면 아무리 가슴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시인이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걷는 이의 마음도 시인의 그것처럼 느긋해진다.
◇매화꽃 장관…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길은 굽이굽이 강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다리(천담교)도 만난다. 왼쪽 다리를 건너면 순창이다.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매화골 섬진강촌 구담마을에 다다른다.
마을회관 옆 느티나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한국전쟁 전후를 다룬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찍었던 곳으로 구릉과 비탈에 핀 매화꽃 풍경은 광양의 매화마을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전형적인 강촌마을의 비경 그것이다.
구담마을은 임실군의 마지막 마을로 본래 ‘안다물’(물이 안쪽으로 굽어 흘러드는)이었으나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자라(龜)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 하고 일설에는 이 강줄기에 아홉 군데에 소(沼)가 있다하여 구담(九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숲을 지나 마을 앞 징검다리를 건너면 하회마을처럼 강이 휘돌아가는 순창의 첫 마을인 동계면 회룡마을이다.
기산(345m)과 용골산(645m) 사이 산자락 밑에 위치해 풍수지리상 장군대좌형의 명당으로 이름났는데 이 부근은 섬진강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기묘한 형상 자연의 예술품 장구목=물소리에 젖은 채 한 발 한 발 걷다가 보니 마을을 지나고, 다시 30여 분 정도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니 순창의 자랑 장구목이다.
강물은 이제 발 아래로 흐른다. 멀리 지난해 지었다는 현수교가 보인다. 현수교에 올라 내려다보니, 강에 만든 ‘자연의 조각품’이 장관이다.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강을 수놓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쓰다듬어야 저런 오묘한 예술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자연의 경이로움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특히 높이 2m, 폭 3m에 무게가 무려 15톤에 달한다는 요강바위는 어른이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로 깊은 웅덩이가 패어 있는 기묘한 바위다. 한 때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도난당했다가, 주민들의 노력으로 되찾아 왔다는데 제자리로 돌아온 뒤로는 다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옆에 있는 거북모양의 바위도 눈길을 끈다.
/김대성기자 bigkim@kwangju.co.kr
언제나 그리운 섬진강은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제격이다. 전북 임실과 순창, 곡성으로 이어지는 40㎞의 이 길은 ‘섬진강 문학마을길’이라는 이름으로 가꾸어 지고 있다.
이 길의 시작은 회문산 자락 강이 휘돌아가는 지형이란 뜻에서 비롯된 ‘물우리’마을에서다. 바위로 된 천연의 문이 있어 ‘회문’이라고 불리는 회문산(837m)은 4㎞에 걸쳐 뻗어 있는 반석 같은 웅장한 바위들과 항상 구름에 잠겨있는 높고 우뚝 솟은 봉오리가 우람하다. 이곳은 지형적인 요새로 구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였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남부군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장산리로 향하는 길은 자연과 하나 되는 길. 매화가 앞 다퉈 꽃망울을 터뜨리고, 낭창낭창 휘어진 버드나무에는 연둣빛 신록이 가득하다. 비 온 뒤끝이라 하늘은 청명했고 강물은 조잘조잘 거리며 걷는 이의 발걸음에 리듬을 맞추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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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강을 수놓은 장구목 바위들. 볼수록 오묘한 모양을 한 요강바위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
40여 분을 걷으니 ‘섬진강’ 연작시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의 고향 덕치면 진뫼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의 강 건너에 길게 뻗은 산자락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길 장(長) 메 산(山), 긴메를 주민들이 진메라 불러 진뫼마을이 됐다.
마을 앞에 자리 잡은 정자나무가 정겹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제13회 풀꽂상을 받은 늙은 정자나무, 그 옆에 김용택 시인이 30여 년 전에 직접 심었다는 작은 정자나무도 다소곳이 서 있다. 연둣빛 새순을 틔우며 활기찬 ‘희망의 봄’을 선사하는 정자나무는 걷는 이들의 마음을 풋풋하게 해주고 있었다.
◇연둣빛 신록 가득한 시인의 길=진뫼마을에서 강 따라 이어지는 천담마을까지 4㎞ 구간은 김용택 시인이 예전 천담분교(지금은 수련원으로 쓰고 있다)로 출·퇴근 하던 길이다.
시인이 ‘천국의 길’이라며 “눈곱만큼도 지루하지 않고 순간순간 계절계절이 즐거웠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고 극찬했던 그 길이다. 길가에는 김용택 시인의 ‘천담마을 가는 길’이라는 시와 길의 내력이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산굽이를 돌아가는 강물을 따라 여러 사람들이 오래오래 걸으니, 세상으로 가는 길이 생겼더라. 그 길에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겨울 와 다시 봄이 오는 동안 해와 달이 수도 없이 지나갔으니, 길이 아름다워졌더라. 그 길에 다시 꽃과 나무를 심고 그 길을 ‘시인의 길’이라 이름 짓고 시 한 편을 여기 적어 두니, 사람들아! 이 나무와 꽃과 산과 강물과 하늘을 보며 그것들과 한 몸이 되어 이 길을 천천히 걸으라. 시인이 되어 보라! ”
‘시인이 되어 보라’는 권유가 아니더라도 이 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고즈넉한 정취를 접하면 아무리 가슴이 메마른 사람이라도 시인이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걷는 이의 마음도 시인의 그것처럼 느긋해진다.
◇매화꽃 장관…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길은 굽이굽이 강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다리(천담교)도 만난다. 왼쪽 다리를 건너면 순창이다.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매화골 섬진강촌 구담마을에 다다른다.
마을회관 옆 느티나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한국전쟁 전후를 다룬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찍었던 곳으로 구릉과 비탈에 핀 매화꽃 풍경은 광양의 매화마을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전형적인 강촌마을의 비경 그것이다.
구담마을은 임실군의 마지막 마을로 본래 ‘안다물’(물이 안쪽으로 굽어 흘러드는)이었으나 마을 앞을 흐르는 섬진강에 자라(龜)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 하고 일설에는 이 강줄기에 아홉 군데에 소(沼)가 있다하여 구담(九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숲을 지나 마을 앞 징검다리를 건너면 하회마을처럼 강이 휘돌아가는 순창의 첫 마을인 동계면 회룡마을이다.
기산(345m)과 용골산(645m) 사이 산자락 밑에 위치해 풍수지리상 장군대좌형의 명당으로 이름났는데 이 부근은 섬진강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기묘한 형상 자연의 예술품 장구목=물소리에 젖은 채 한 발 한 발 걷다가 보니 마을을 지나고, 다시 30여 분 정도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니 순창의 자랑 장구목이다.
강물은 이제 발 아래로 흐른다. 멀리 지난해 지었다는 현수교가 보인다. 현수교에 올라 내려다보니, 강에 만든 ‘자연의 조각품’이 장관이다. 저마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강을 수놓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쓰다듬어야 저런 오묘한 예술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자연의 경이로움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특히 높이 2m, 폭 3m에 무게가 무려 15톤에 달한다는 요강바위는 어른이 들어가도 넉넉할 정도로 깊은 웅덩이가 패어 있는 기묘한 바위다. 한 때 수억 원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도난당했다가, 주민들의 노력으로 되찾아 왔다는데 제자리로 돌아온 뒤로는 다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옆에 있는 거북모양의 바위도 눈길을 끈다.
/김대성기자 bigkim@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