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 따라 수천년 선사시대로의 여행
2011년 02월 07일(월) 00:00 가가
〈 5 〉 화순 고인돌 길
지난 1995년 목포대 능주목(牧) 학술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채석장인 ‘감태바위’. 고인돌 덮개돌을 떼어낸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지동(池洞)은 ‘고인돌 마을’이다.
지난 1995년 12월, 목포대 이영문 교수팀에 의해 지동마을 뒷산 기슭에서 청동기시대 고인돌 채석장이 발견됐다. 이를 광주일보에서 첫 보도를 하며 세상에 알려져 전국의 이목이 쏠렸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 대신리에 이르는 4㎞여 길이의 산기슭과 길섶, 논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쉼터였던 시꺼먼 납작 바위들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이곳은 고인돌 채석부터 축조과정을 볼 수 있는 탁월한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9월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10호’로 지정된데 이어 마침내 2000년 12월에는 고창·강화지역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슬금슬금 다가오는 봄기운과 함께 대신리 지동마을과 효산리를 잇는 산길을 따라 ‘선사(先史)시대’로 여행을 떠나보자.
◇ 고인돌 상석 캐내던 ‘감태바위’=선사(prehistory)라는 용어는 문자 등으로 기록된 역사(歷史) 이전을 통칭하는 것으로 돌이나 청동기, 철기 등을 주 도구로 사용하던 시대이다.
지동마을 입구에서 고인돌 채석장인 ‘감태바위’까지는 걸어서 불과 10여 분 거리. 시원스럽게 뻗은 소나무숲 아래 놓인 고인돌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의 ‘감태바위’에 닿는다. 고인돌 덮개돌로 쓸 넓적한 돌을 떼내다 시간이 정지한 듯싶게 바위 하나가 미끄러져 내려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다. 쐐기를 박아 돌을 떼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눈에 띈다. 발굴조사과정에서 나온 무문토기를 이용해 연대를 측정한 결과 3000여년전인 BC 10세기 것으로 나타났다.
고인돌(支石墓)은 선사시대 거석(巨石)문화 구조물이자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양식이다. 대신리∼효산리 일원 9만3000평 넓이에 모두 596기의 고인돌이 밀집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감태바위를 지나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금세 우거진 나뭇가지들이 길을 막는다. 별수 없이 다시 대신∼효산리를 잇는 비포장도로로 내려서면 ‘과연 고인돌일까’ 싶게 큼지막한 ‘핑매바위’와 마주하게 된다. 장축 7.3m·단축 5m·높이 4m에 무게만도 280t에 이르는 국내최대 규모 고인돌이다. 쪼그리고 앉아 바닥면을 살펴보면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과 자그마한 받침돌이 떠받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인들은 이 커다란 돌을 어떻게 끌고 왔고, 왜 이 자리에 세우려 했을까 하는 의문이 이어진다.
‘핑매바위’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고(麻姑) 할머니가 운주골에서 천불천탑을 세우기 위해 돌을 모은다는 소문을 듣고 치마폭에다 싸 가지고 가다가 도중에 닭이 울어 그만 돌을 버리고 가버렸는데, 그중 하나를 발로 차버려 멈춰선 돌이 ‘핑매바위’라고 구전되고 있으며, 어느 소년장군이 돌팔매질하던 곳이라 해 ‘장군바위’로도 불린다. 또한 총각과 처녀들이 지나가다 왼손으로 ‘핑매바위’ 위쪽 구멍에 돌을 던져서 돌이 들어가면 장가나 시집을 낳고, 들어가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못한다고도 전해진다.
‘핑매바위’에서 보검재 또는 보성재로 불리는 구간은 완만한 S자 오르막길이다. 여흥 민씨 재실제각 안내판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효산리로 가는 길이다.
◇ 보성과 나주 연결하던 ‘보검재’ 옛길=절기상 입춘을 지났지만 응달은 여전히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미끄럽다. ‘명감(청미래덩굴) 나무’ 빨간 열매를 탐하는 직박구리나 풀섶에서 ‘후루룩’ 놀라 날아오르는 까투리(암꿩), 공중에서 날개를 펼친 채 호버링(제자리 비행) 하는 황조롱이… 모두가 산길을 홀로 걷는 도보꾼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소리지르며 먹잇감을 뒤쫓는 청동기인들이 무리져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호젓한 산길이다.
이 고개는 현재 통행이 거의 없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보성, 벌교사람들이 남평장을 가기 위해 넘었던 곳으로 보성과 나주를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어느 시대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옛날옛적 보성원님이 나주목사를 뵙기 위해 고개를 넘어가다 바위에서 휴식을 취할 때 마침 한 백성이 소장(訴狀)을 올리자 앉은 자리에서 즉시 처리해줬다고 해 이름붙여진 ‘관청바위’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보검재(보성재)에서 효산리 구간은 수년전 화순군에서 ‘고인돌 축제’를 열던 곳으로 군데군데 쉼터가 조성돼 있다. 이곳은 그저 보기에는 평범한 바윗돌 같지만 관청바위, 달바위, 마당바위, 구멍바위(성혈바위), 괴바위, 논둑 고인돌 등과 같이 모양새에 따라 재미난 이름들이 붙어있다. 성혈(性穴)바위는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기원하는 선사인들의 신앙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이 구간은 차량이 다니는 비포장 도로 대신 위쪽에 만들어진 탐방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목책과 삼각형, 원형 움집을 갖춘 ‘고인돌 선사마을’과 만난다. (재)동북아지석묘연구소(소장 이영문)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매년 3월과 11월 사이에 다양한 선사체험을 할 수 있다. 탐방로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석실(무덤방)만 남아있는 백제시대 고분흔적도 볼 수 있다. 효산리 입구에 놓인 컨테이너 박스에는 화순군 관광해설사 2명이 상주하며 탐방객과 도보여행객에게 자세한 고인돌 관련 설명을 해주고 있다.
최종채(69)·양해숙(49) 화순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자녀와 동행한 학부모를 비롯해 많은 초·중·고·대학생들이 체험과 답사여행을 오고 있다”며 “대신리∼효산리 산길은 봄철에는 올챙이·도롱뇽알도 볼 수 있는 등 고인돌뿐만 아니라 사계절 거닐면서 역사와 나무, 숲을 관찰하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 길라잡이= 춘양면 대신리나 도곡면 효산리 어느 쪽에서 출발하더라도 좋다. 지동마을에서 시작하는 경우 감태바위 입구까지 6분, 핑매바위까지 10분, 보검재(보성재) 고갯길까지 10분, 관청바위까지 25분, 백제 고분까지 20분 등 총 3.6km 구간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고인돌에 대한 궁금증은 (재)동북아지석묘연구소 홈페이지(www. idolmen.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995년 12월, 목포대 이영문 교수팀에 의해 지동마을 뒷산 기슭에서 청동기시대 고인돌 채석장이 발견됐다. 이를 광주일보에서 첫 보도를 하며 세상에 알려져 전국의 이목이 쏠렸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 대신리에 이르는 4㎞여 길이의 산기슭과 길섶, 논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쉼터였던 시꺼먼 납작 바위들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이곳은 고인돌 채석부터 축조과정을 볼 수 있는 탁월한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9월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10호’로 지정된데 이어 마침내 2000년 12월에는 고창·강화지역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 고인돌 상석 캐내던 ‘감태바위’=선사(prehistory)라는 용어는 문자 등으로 기록된 역사(歷史) 이전을 통칭하는 것으로 돌이나 청동기, 철기 등을 주 도구로 사용하던 시대이다.
지동마을 입구에서 고인돌 채석장인 ‘감태바위’까지는 걸어서 불과 10여 분 거리. 시원스럽게 뻗은 소나무숲 아래 놓인 고인돌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의 ‘감태바위’에 닿는다. 고인돌 덮개돌로 쓸 넓적한 돌을 떼내다 시간이 정지한 듯싶게 바위 하나가 미끄러져 내려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다. 쐐기를 박아 돌을 떼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눈에 띈다. 발굴조사과정에서 나온 무문토기를 이용해 연대를 측정한 결과 3000여년전인 BC 10세기 것으로 나타났다.
‘핑매바위’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고(麻姑) 할머니가 운주골에서 천불천탑을 세우기 위해 돌을 모은다는 소문을 듣고 치마폭에다 싸 가지고 가다가 도중에 닭이 울어 그만 돌을 버리고 가버렸는데, 그중 하나를 발로 차버려 멈춰선 돌이 ‘핑매바위’라고 구전되고 있으며, 어느 소년장군이 돌팔매질하던 곳이라 해 ‘장군바위’로도 불린다. 또한 총각과 처녀들이 지나가다 왼손으로 ‘핑매바위’ 위쪽 구멍에 돌을 던져서 돌이 들어가면 장가나 시집을 낳고, 들어가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못한다고도 전해진다.
‘핑매바위’에서 보검재 또는 보성재로 불리는 구간은 완만한 S자 오르막길이다. 여흥 민씨 재실제각 안내판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효산리로 가는 길이다.
◇ 보성과 나주 연결하던 ‘보검재’ 옛길=절기상 입춘을 지났지만 응달은 여전히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미끄럽다. ‘명감(청미래덩굴) 나무’ 빨간 열매를 탐하는 직박구리나 풀섶에서 ‘후루룩’ 놀라 날아오르는 까투리(암꿩), 공중에서 날개를 펼친 채 호버링(제자리 비행) 하는 황조롱이… 모두가 산길을 홀로 걷는 도보꾼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소리지르며 먹잇감을 뒤쫓는 청동기인들이 무리져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호젓한 산길이다.
이 고개는 현재 통행이 거의 없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보성, 벌교사람들이 남평장을 가기 위해 넘었던 곳으로 보성과 나주를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어느 시대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옛날옛적 보성원님이 나주목사를 뵙기 위해 고개를 넘어가다 바위에서 휴식을 취할 때 마침 한 백성이 소장(訴狀)을 올리자 앉은 자리에서 즉시 처리해줬다고 해 이름붙여진 ‘관청바위’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보검재(보성재)에서 효산리 구간은 수년전 화순군에서 ‘고인돌 축제’를 열던 곳으로 군데군데 쉼터가 조성돼 있다. 이곳은 그저 보기에는 평범한 바윗돌 같지만 관청바위, 달바위, 마당바위, 구멍바위(성혈바위), 괴바위, 논둑 고인돌 등과 같이 모양새에 따라 재미난 이름들이 붙어있다. 성혈(性穴)바위는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기원하는 선사인들의 신앙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이 구간은 차량이 다니는 비포장 도로 대신 위쪽에 만들어진 탐방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목책과 삼각형, 원형 움집을 갖춘 ‘고인돌 선사마을’과 만난다. (재)동북아지석묘연구소(소장 이영문)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매년 3월과 11월 사이에 다양한 선사체험을 할 수 있다. 탐방로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석실(무덤방)만 남아있는 백제시대 고분흔적도 볼 수 있다. 효산리 입구에 놓인 컨테이너 박스에는 화순군 관광해설사 2명이 상주하며 탐방객과 도보여행객에게 자세한 고인돌 관련 설명을 해주고 있다.
최종채(69)·양해숙(49) 화순군 문화관광해설사는 “자녀와 동행한 학부모를 비롯해 많은 초·중·고·대학생들이 체험과 답사여행을 오고 있다”며 “대신리∼효산리 산길은 봄철에는 올챙이·도롱뇽알도 볼 수 있는 등 고인돌뿐만 아니라 사계절 거닐면서 역사와 나무, 숲을 관찰하고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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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된 청동기시대 움집 |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 길라잡이= 춘양면 대신리나 도곡면 효산리 어느 쪽에서 출발하더라도 좋다. 지동마을에서 시작하는 경우 감태바위 입구까지 6분, 핑매바위까지 10분, 보검재(보성재) 고갯길까지 10분, 관청바위까지 25분, 백제 고분까지 20분 등 총 3.6km 구간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고인돌에 대한 궁금증은 (재)동북아지석묘연구소 홈페이지(www. idolmen.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