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담양 죽녹원에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푸르다. 1주일 전에 내린 폭설의 흔적이 여전한 속에서도 대나무 빛깔은 푸르다.

담양군이 지난 2003년 5월 담양향교 인근 성인산 자락 16만㎡에 조성한 죽녹원은 ‘운수대통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 등 8개의 주제 길로 구성돼 있다. 입구에 자리한 야외무대에서 출발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환상(環狀) 코스이다.

대밭을 찾은 연인, 가족들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대숲 길을 걷는다. 발걸음을 멈추고 귀기울이면 지나는 바람소리에 휘청이는 대와 ‘쏴아∼’하고 사각이는 댓잎소리가 청량하다. 한 탐방객은 ‘대잎소리도 사진에 담고싶다”며 미소짓는다. 유년시절을 보낸 시골마을 뒤안에는 대밭이 자리했다. 눈이 쏟아지는 새벽녘에는 대나무가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툭툭 부러지는 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담양 죽녹원 대숲과 관방제림 숲길∼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로 이어지는 5㎞의 도보 길을 일컬어 ‘명품숲 가로수길’이라 부른다.

◇ 홍수방지 위해 조성한 나무숲=관방제림(官防堤林)은 담양읍을 가로질러 흐르는 담양천변에 쌓은 제방에 심어진 나무숲으로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돼있다. 1648년 부사(府使) 성이성이 제방을 쌓았고, 1854년 부사 황종림이 관비(官費)로 연인원 3만여명을 동원해 만들었기에 관방제라 불린다. 이때부터 제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많은 나무를 심었다. 현재 2㎞여 길이의 제방에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벚나무 등 15종 200∼300년생 320여 그루의 아름드리 고목들이 자라고 있다.

“며칠 전 폭설이 내려 눈꽃이 피었을 때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꽃도 그런 꽃이 없어”

매일 오후 관방제 숲길을 따라 걷기운동을 한다는 황회목(63·향교리 2구)·한기례(53) 부부는 “봄철 생동하는 신록, 여름철 그늘과 시원함 등 사계절마다 맛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제방 좌우로 아무렇게나 심어진 듯한 고목들은 잎을 모두 떨구었지만 백팔번뇌(百八煩惱)하듯 뒤틀며 하늘로 치솟은 수세(樹勢)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91번 나무 벚나무는 세 줄기 가운데 개천으로 뻗은 한 가지만이 살아 지지대에 힘겹게 의지한채 봄을 기다리고 있다.

방학을 맞아 경남 거창에서 직장동료와 담양을 찾은 김수경(25·교사)씨는 “눈이 많이 와서 별로일 듯 싶었는데 막상 와보니 대나무의 푸르름 등 또 다른 정취가 있다”며 “관방제림은 아무 생각없이 걸어도 너무 좋다”고 말했다.

향교교(鄕校橋) 가까운 곳에 자리한 고목들은 수백 년의 더께가 쌓여 두 아름이 넘기도 하지만 추성경기장을 지나 끝으로 갈수록 나무들은 젊어진다. 찻길을 건너면 또 다른 숲길이 도보객을 맞는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학동 교차로와 금월교차로 사이 1.7㎞ 구간에 원추형을 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사열하듯 좌우로 줄맞춰 시원스럽게 서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손꼽히는 이곳은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이곳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주인공 김상경이 며칠후에 터질 사태를 알지 못한 채 한가로이 택시를 몰고 달리는 장면에 소개되는 등 많은 드라마와 영화, 예능프로그램 촬영지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여름휴가차 광주를 찾은 친구부부는 초등학생인 아들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꼽았다. 결국 빡빡한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서 밤 9시께서야 도착하게 됐는데 친구아들은 예능프로그램 ‘1박2일’ 흉내를 내 컴컴한 가로수 길을 달리며 소원풀이를 했다.

경남 마산에서 고교동창 7명과 함께 온 김송현(28)씨는 “인터넷 여행명소 추천과 여행후기를 본후 대나무 숲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보고, 떡갈비도 먹고 싶어 담양을 찾았다”고 말했다.

죽녹원 대숲길

담양 죽녹원에서 관방제림을 거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 이르기까지 3곳의 ‘명품 숲’을 거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대나무는 물론 느티나무·푸조나무·팽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다양한 나무숲을 1시간 40분 가량 쉬엄쉬엄 걷노라면 머리가 맑아지고 일상에 지친 심신(心身)에도 작은 변화가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송기동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