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주시 동구 충장로 자신이 운영하는 통신업체 판매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신모(25)씨는 무심결에 담배꽁초를 버렸다. 지나가던 경찰관이 이를 목격했으며, 다짜고짜 신씨에게 반말로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했다. 신씨는 자신의 가게 앞을 매일 청소하고 있으며 “곧 치우겠다”고 했으나 경찰관의 고압적인 자세에 반감이 들어 경찰관과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관은 ‘공무집행방해’를 언급하며, 신씨를 압박했으나 신씨는 결국 신분증 제시를 거부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경찰관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신씨를 제지하지 않고 실랑이는 10분 가량 만에 끝났지만, 신씨에게 ‘권위적인 경찰관의 자세’는 지금껏 광주에서 경험한 가장 큰 비민주적인 경험으로 남아있다. 신씨는 “저 자신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이가 적게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반말부터 하는 것에 깜짝 놀랐고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며 “그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계도해도 됐을 텐데 왜 함부로 대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 꽃집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여·23)씨는 각종 공공사업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는 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없는 시스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씨는 “사정은 있겠지만 저수지마다 왜 화려하게 치장만 하는 지, 지난해 새 야구장을 왜 돔구장으로 하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5·18 민주화운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시민들을 위한다면 사업이나 정책을 투명하게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또 “야구를 무척 좋아하는 데 무등야구장의 여자화장실은 불결하고 10여 분 이상 줄을 서야 돼 절대 안 간다”며 “공공시설에 여자화장실을 확충해줬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3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여·45)씨 역시 공무원·교사·경찰 등 일부 공직자들과의 나쁜 기억을 먼저 이야기했다. 이씨는 “어쩔 수 없이 직업상 또는 아이들 때문에 공직자들과 부딪힌 적이 있는데 언제나 너무 권위적이고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마치 시민과 학부모 위에 군림하며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그들은 결국 시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또 이씨는 지역 내 참여의식의 미흡도 우려했다.

이씨는 “지금은 5·18 행사를 하면 외지에서 온 사람의 숫자가 광주시민보다 많다”며 “먹고 사는 문제에 몰입해서 그런지, 이기주의가 만연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주변에 대해 무관심하고 지역정치나 행정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고 강조했다.

4 택시기사인 심모(53)씨는 서구 운천로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수관거설치공사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사전에 공사 정보를 알리지 않는 것은 물론 현장에 가서야 차가 밀려 공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심씨는 “처음에는 사고가 난 줄 알았는데, 가보니 도로를 파헤치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며 “얼마나 화가 나는 지 욕설부터 나왔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해 공사 정보를 도로 진입 전에 미리 알리거나 통행량이 적은 늦은 밤 또는 새벽에 공사를 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심씨는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을 도로에서 보내고 있는 택시기사들에게 광주지역 각 도로의 문제점을 듣고 개선책을 고민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5 아르바이트로 대학 납부금을 마련하고 있는 정모(24)씨는 약자에게 비정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4110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씨는 “물론 서로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지만 편의점이나 PC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의 대부분이 시간당 4000원에 미치지 못하는 대가를 받고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민주도시라면 청소년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6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양모(여·43)씨는 광주가 민주도시라고 생각하지만 지역 정치나 행정에 대해서도 불신하고 있다고 답했다. 양씨는 “관심을 가져봐야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높은 분들이 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하지 않은 것 같아 자신의 일 이외에는 무관심해진 듯하다”고 말했다. 양씨는 선거 때가 되면 서민들과 함께 하겠다고 해놓고 선거 끝나면 태도가 변하는 정치인들의 자세에 실망했으며, 그 이후 꼭 투표를 해야되는 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광주일보는 ‘언제 광주가 비민주적인 도시라고 느꼈나’라는 질문을 동구 충장로 일대 점포주, 종업원, 행인, 택시기사 등 20여 명에게 무작위로 던졌다. 그러나 그 중 2/3 이상이 ‘관심없다’고 답변했다. 광주가 ‘민주도시’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했으나, 그 구체적인 사례를 들 수 없으며, 광주가 ‘민주도시’라는 점과 자신과의 연관성도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다만 의견을 밝힌 6명은 ▲공직자들의 권위적인 자세 ▲불투명한 정책 및 사업 결정과정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미흡 ▲공직자 중심의 정보 제공 등의 점을 들어 광주가 ‘민주도시’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의 이 같은 ‘무관심’과 ‘소극적인 자세’는 시민참여가 전제되는 각종 위원회, 공청회, 설명회 등 제도의 부실 운영, 불법주정차·쓰레기 투기·교통 무질서 등 기초질서 위반 만연, 개인 또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한 민원 속출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정책이나 사업 결정 전에 법적으로 거치게 돼 있는 공청회나 설명회에는 토지소유주나 이익단체, 개발업체 등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골목길까지 파고든 불법 주정차는 대책 없이 고착되고 있다. 전단지나 음란성 유인물 등 쓰레기 불법투기는 거리를 지저분하게 하지만 주체적으로 이를 줍는 시민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면 이를 관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모(35)씨는 “노인들이 거리 청소를 하고 있는 데 그 옆에서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는 담배꽁초를 버리는 곳이 광주”라며 “10대나 20대의 잘못된 행동을 어른들이 제지하지 못하고 어른들도 모범을 보이지 못하며 지역공동체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원형(59)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바른 생각을 갖고 참여에 나선다면 행정이나 정치도 그에 따라 변할 수 있다”며 “모두가 공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미래를 고민해야 하지만 단기적인 이해관계만이 난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현석기자 chadol@kwangju.co.kr